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듣는 소리’의 시대로부터 ‘보는 소리’의 시대로 넘어와 살고 있다. 집집마다 집의 중심이었던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작별한지는 모두가 아주 오래전이다. 뒷면에 복잡한 선들이 오가고 둥글고 긴 여러 개의 진공관이 신비스럽게 붉은 반점을 품고 있던 부잣집의 진공관 앰프, 손으로 태엽을 돌려주어 일정 시간을 돌던 축음기, 바늘이 미세한 금을 긁어 음반의 마지막이 되면 자동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던 소위 신식 레코드…이런 모든 것이 일부 마니아들 손이나 박물관으로 사라진 것이 불과 20, 30여 년 전이다.

이렇게 넘어온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도 우리가 소리를 듣는 위젯(widget), 가젯(gadget), 기즈모(Gizmo)는 해가 다르게 더 작고, 더 가볍고, 더 강력하고, 더 유연해지면서, 각양각색의 모양과 디자인, 색상, 배열, 그리고 싼 가격으로 내달려 이제는 ‘보는 소리’조차 넘어서 ‘입는 소리(wearable)’라는 새로움이 된 지도 이미 오래다. 어른들만을 위하고 집안의 가보처럼 간직하던 문화생활의 낭만이 이제는 일부 어른들의 ‘붐붐 박스(boombox)’를 넘어 자기만의 앱으로 치장한 모바일 스마트 기기가 되어 모든 아이들, 아니 온 세상 동서고금 남녀노소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에워싼 각양각색의 소리와 소음의 와중에서 우리는 소음이 아닌 한낮 여름의 매미와 여치 소리, 볕이 사그라진 다음 어둑어둑해질 무렵의 귀뚜라미 소리,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 새들이나 동물들이 내는 여러 소리를 듣고 있을까? 바쁘게 일하는 벌의 날개가 내는 웅웅 소리,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온갖 곤충들이 리드미컬하게 연주해내는 합주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고요함과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엘리야 예언자는 산을 할퀴고 지나가는 강한 바람에서도, 불과 지진 속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없었으며,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에서 그분을 뵈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엘리야는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참조. 1열왕 19,9-18) 고독한 메시아 예수님께서도 ‘고난 받는 종’의 소명을 위해 산에 가시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자주 가지셨으며 때로는 조금 더 있고 싶어 하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이미지출처-네이버 블로그 : 풀대로 만든 여치 집)

4 thoughts on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1.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혼자만의 조용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름 보내겠습니다.
    그럼 이 여름 끝나면?

    감사합니다.
    조용한 집에서 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들리는
    오후입니다.

  2. 오늘 유난히 매미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습니다. 여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는 듯~
    내면으로 초대하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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