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예전에는 이날을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고 하였는데, ‘영보’(받을, 옷깃, 거느릴 영/령領, 갚을 보報)라는 말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천사에게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굳이 한자에 맞게 풀어보자면 주님의 탄생에 관한 천사의 ‘보도報道’를 성모님께서 ‘수령受領’하신 날이라 하겠다. 3월 25일이 주님 탄생일인 12월 25일로부터 정확히 9개월 전(아기의 태중 임신 기간)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이날을 ‘수태고지受胎告知’라고 풀어 부르기도 한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의 기원은 4세기 또는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 자료들 안에서 탄생 예고 대축일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증언은 530~550년 사이 에페소의 아브라함이 했던 강론으로 기록되고(가톨릭신문, 2011년 3월 20일자), 이후 교회의 여러 교부나 교회의 문헌 등에서 발견된다. 이날에 우리 교회는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자 성모님께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루카 1,38) 하고 응답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이루어지기를”에 해당하는 문장의 첫마디 말에 따라 ‘성모님의 fiat을 기념’한다고도 하고 우리 신앙인이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fiat 정신’을 살도록 노력하자고도 하는데, 이를 단순하고 알아듣기 쉽게 영어식 표현으로 한다면 ‘성모님의 Yes’를 기념하고, 우리 신앙 안에 ‘성모님의 Yes 마음을 살도록 노력하자’라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겠다.(*그림 출처-Wikipedia, by Paolo de Matteis)

성모님의 덕을 칭송하면서 우리 신앙인의 삶에서 하느님께 ‘Yes’하는 삶을 잘 살기 위한 영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섯 가지 Yes’이다.

1. 신뢰의 ‘Yes’

마리아의 Yes는 수동적인 포기나 항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하느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능동적인 기쁨의 포기요 갈망이다.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전해 들은 마리아는 처음에 무척 혼란스러워하였으며 당황하였고 두려워하며 “몹시 놀라”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하고 반문하면서도 하느님을 믿는 신뢰로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Yes’ 하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성모님의 이야기를 전하기 전, 즈카르야가 천사로부터 아들 세례자 요한을 얻을 것이라는 예고를 받으면서 어떻게 응답하였는지를 성모님과 견주어 보라는 듯이 기록한다.(참조. 루카 1,8-25) 천사의 예고에 대한 즈카르야의 반응은 시종일관 의심과 의혹이다. 그러나 성모님의 반응은 신뢰와 수용이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주님의 탄생 전부터 당신의 승천 때까지의 삶에서 겪은 온갖 시련을 넘길 수 있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매사에 하느님의 뜻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한다.

2. 신앙의 ‘Yes’

마리아는 천사의 예고에 그 말들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 그렇게 얻은 아들 예수님의 탄생에서는 목자들이 “전한 말에 (다시)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8-19) 이처럼 마리아는 신앙으로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믿음이 깊어가며 튼튼해지도록 매일 기도하셨다.

힘들고 어려운 인생살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강력하고도 기적적인 힘이 우리를 붙들고 있음을 감사한다.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 길을 걸으셔야만 했던 그 옆에서 까무러칠 정도의 고통과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묵묵히 하느님의 뜻만을 단단히 붙잡고 계셨던 성모님을 생각해야 한다.

3. 희생의 ‘Yes’

천사의 예고를 받았을 때 마리아는 이미 요셉과 약혼하였었다. 이해가 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마리아의 임신으로 요셉은 꿈과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개입 때까지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 1,19) 그러나 이것은 마리아가 맞닥트려야 할 고통의 시작에 불과했다. 아기 예수의 봉헌 때 성전에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며 살던 시메온은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한다. 예루살렘의 잔인한 종교 엘리트들이 아들 예수에게 가해오는 잔혹함으로 마리아의 영혼은 실로 칼에 꿰찔렸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희생과 아픔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작은 희생과 함께 ‘기도와 단식과 자선’(참조. 마태 6,1-18)을 산다. 성모님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생각하며 우리도 기꺼이 이웃과 주변을 위한 희생을 살아야 한다.

4. 순명의 ‘Yes’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한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마리아의 온전한 순명이다. 성 이레네오께서는 “마리아는 순명으로 자신과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라고 풀이한다. 성모님께서는 순명으로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한 삶을 사셨다.

현대 문화는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라는 유혹을 곳곳에서 가해온다. 이러한 유혹에 감염되었을 때 해독제는 하느님의 섭리만을 추구하는 온전한 자기 포기이다. 마리아의 순명 ‘Yes’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우리의 순명이 되게 해야 한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겸손하게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따름으로써 구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유혹, 나 자신을 위한 유혹을 거부하면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깊어진다.

5. 기도의 ‘Yes’

루카가 전해 주는 성모님께서 받으신 주님 탄생 예고는 임신한 마리아께서 출산이 임박한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대조를 이룬다. 마리아의 방문에서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1-42)

이러한 엘리사벳의 인사말과 선포 후에 이에 대하여 마리아께서는 그 유명한 노래, 이른바 ‘성모님의 찬가’요 ‘마니피캇Magnificat’이라고 불리는 노래로 응답한다. Magnificat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성모님의 노래 첫 구절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Magnificat anima mea Dominum”(루카 1,46)라 하므로 라틴어의 그 첫마디 말이 Magnificat이기 때문이다. 마니피캇은 주님을 찬송하고 하느님의 뜻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겸손이 담긴 노래이며 마리아의 온전한 기쁨이 담긴 기도이다.

*마니피캇(루카 1,47-55)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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