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열두 달 어느 달에나 성모님을 기리는 중요한 날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특별히 12월은 가톨릭교회에서 성모님을 기리는 신심으로 중요한 달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에는 먼저 8일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고, 12일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자이신 과달루페의 성모님을 기리는 축일을 지내며, 이어서 16일부터는 성모님과 함께 9일 동안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린다.
성모님을 향한 교회의 신심 안에서, 초대 교회의 교부들이 성모님에 관하여 어떤 생각들을 했는가를 간략하게라도 짚어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다. 옥스퍼드 학자인 켈리(J.N.D. Kelly, 1909~1997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기 위한 성모님의 역할이 교회의 초창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일찍 인식되었다.”(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revised ed. Harper Collins, 1978, 491)라는 점을 지적한다.
교부학의 권위자인 요한네스 콰스틴(Johannes Quasten, 1900~1987년)은 100년대의 순교자 성 유스티노께서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견주어 구세사를 설파했듯이(참조. 로마 5장;1코린 15,22.45) 성모님과 하와를 견주어 피력하고 있다.”라고 말한다.(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1, The Beginnings of Patristic Literature: From the Apostles Creed to Irenaeus, Christian Classics/Ave Maria Press, 1995, 211)
성 유스티노(St. Justin Martyr, 100~165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주님께서는 동정녀를 통해 사람이 되셨다. 동정이었으며 아직 깨끗하였던 하와는 뱀의 말을 잉태함으로써 불순종과 죽음을 낳았는데, 이는 뱀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파멸에 이른 불순종이었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기쁜 소식을 전하였을 때 믿음과 기쁨을 잉태하셨다. 동정녀께서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어 주실 것이다.”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심으로써 말씀이신 분께서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시게 되었으니, 하느님께서 바로 그 말씀을 통해 뱀을 파멸시키신 것이다.」(트리포와의 대화, 100)
*참고: 사도 바오로가 로마 5,13-21에서,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범죄와 인간에게 내려진 죽음을 제2의 아담인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신학을 발전시켰듯이, 성 유스티노는 하와와 마리아를 같은 구도 안에 도입하여 구세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부각한다. 이것이 교회 역사 안에 나타난 최초의 마리아론이라 할 수 있으며, 후에 성 이레네오는 같은 맥락에서 이 마리아론을 더욱 발전시킨다.(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교부학자료)
성 이레네오(St. Irenaeus, 130~202년)는 성 유스티노의 개념을 더욱 확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하와의 불순종이 지었던 매듭이 마리아의 순명으로 풀어지게 되었다. 처녀 하와가 불신앙으로 묶었던 것을 처녀이신 마리아께서 신앙으로 푸신 것이다. 인간이라는 족속이 한 처녀 때문에 죽음의 속박에 빠졌었는데, (다시) 한 처녀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처녀의 불순종이 다른 처녀의 순종으로 저울의 반대쪽에서 균형을 잡게 된 것이다.」(앞의 책, 298-299)
성 아타나시오(St. Athanasius, 296~373년)는 아리안이라고 하는 이단의 재앙에 맞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성모님을 주저 없이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όκος, the Theotokos, Mother/Bearer of God)”라고 불렀다.(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III, The Golden Age of Greek Patristic Literature: From the Council of Nicaea to the Council of Chalcedon, Christian Classics/Ave Maria Press, 1995, 75) 이렇게 하면서 성 아나타시오는 그의 전임자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Alexander of Alexandria)의 모범을 따랐던 것인데, 이 용어는 당시 상당히 널리 퍼져 있어서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라는 이가 “그리스도인들이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라고 조롱할 정도였다.(Kelly, Early, 494)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St. Cyril of Alexandria, 376~444년)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라는 이단에 맞서 당연히 이 호칭을 고수하셨으며, 431년 초교파적인 에페소 공의회가 이를 분명하게 판명하기에 이른다.
카파도키아의 교부(Cappadocian Father)인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St. Gregory of Nyssa, 335~395년)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하와에 빗대어 “새로운 하와”로, 그리고 예수님을 “새로운 아담”으로 불렀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때에 이르러 아담으로부터 그때까지를 지배하고 있던 죽음이 성모님께 다가오자 성모님의 (굳센) 바위와도 같은 동정성의 열매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바람에 힘을 잃고 말았다.」(Quasten, Patrology, vol. III, 289 – St. Gregory of Nyssa)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서는 데에 결정적 도구가 되었던 성 암브로시오(St. Ambrose, 339~397년) 역시 성모님을 하와에 빗대어 말한다. 성인은 성 힐라리오(St. Hilary, 310~367년)나(Joseph J. Tixeront, History of Dogmas, vol. II, Athanasius to Augustine, ebook format, Lex de Leon Publishing, 2015, Ch. IX, §11) 성 예로니모 등이 헬비디우스(Helvidius)라고 부르는 아리안이라고 하는 이단에 맞서 성모님의 영원한 동정성을 옹호했던 것처럼(Jean Gribomont, “The Translations. Jerome and Rufinus,” Ch. IV of 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IV, trans. Placid Solari, O.S.B., Christian Classics, 1995, 239) “라틴계나 희랍계를 막론한 신학자들이나 교회의 저술가들과 함께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출산 동안이나 출산 후(in partu [during the birth] and post partum [after the birth of Jesus])에도 동정이심”을 선언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토모(St. John Chrysostom, 347~407년)도 성모님의 영원한 동정성을 강조하였다.(Quasten, Patrology, vol. III, 476)
개신교나 가톨릭을 막론하고 어느 쪽에서나 칭송을 받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년)는 성모님에 관한 많은 교의를 설파한다. 성인은 성모님의 “신적 모성(divine maternity)”과 “영원한 동정성(perpetual virginity)”을 넘어 “죄에 물듦이 없음(immunity from all sin)”을 확인한다.(Agostino Trapè, “Saint Augustine,” Ch. VI of Quasten, Patrology, vol. IV, 432)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Mother of the Church)”요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mother of the members of Christ)”로 지칭하기까지 한다.(같은 책, 433)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St. John Damascene, 675~749년)은 성모님을 향한 깊은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호칭하는 성인은 성모님의 영원한 동정성을 옹호하고, 성모님의 절대적인 거룩함을 칭송하면서 심지어 성모님 “육신의 승천(bodily assumption into heaven)”까지도 기록한다.(Joseph J. Tixeront, History of Dogmas, vol. III, The End of the Patristic Age, ebook format (Lex de Leon Publishing, 2016, Ch. XI, §5) 앞서 언급한 켈리(J.N.D. Kelly)에 따를 때, 성모님 신심은 시리아에서 특별히 불타올랐는데, 시리아의 성 에프렘(St. Ephrem the Syrian, 306~373) 같은 성인은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처럼 어떤 죄에도 물듦이 없으신 분”이라고 기록한다.(Kelly, Early, 495)
모든 교부가 성모님에 관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교리나 교의를 가르치신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과장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원후 100년경 사도들의 교부로부터 기원후 800년경의 위대한 희랍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성모님께서 특별한 역할을 하신다고 하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형제들과 함께 우리는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하고, 언젠가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성인들의 무리에 들기를 희망하면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한다.
*번역글 – <The Early Church Fathers’ Understanding of Mary by Dr. Richard DeClue> 글쓴이 리차드 데클루 박사(Richard G. DeClue, Jr., S.Th.D.)는 미국 ‘Word on Fire’ 연구소 신학 교수이다. 벨몬트 대학을 거쳐 미국 가톨릭대학에서 3개의 교회 학위를 취득했다. 조직 신학을 전공한 그는 죠셉 라칭거(베네딕토 16세)의 사상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STL 논문에서 그는 동방 교회의 신학자인 존 지지울라스(John Zizioulas)와 비교하면서 라칭거의 성체 신학을 다루었으며,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라칭거의 하느님 계시 신학을 다루었다. 그는 또한 앙리 데 루박의 교회론이나 자연과 은총에 관한 논쟁, 자원(Communio, ressourcement) 신학과 토미즘 사이의 화해에 관심이 깊다.(*삽화 및 번역 원문 출처- https://www.wordonfire.org/articles/the-early-church-fathers-understanding-of-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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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ly Church Fathers’ Understanding of Mary
Dr. Richard DeClue
December 11, 2024
December is a big month for Catholic devotion to Mary. On December 9 this year, the Catholic Church celebrated the Solemnit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and December 12 honors Our Lady of Guadalupe (a solemnity in Mexico, a feast day in the USA, and an optional memorial in other countries). Most obviously, Mary is a central figure in the Nativity of the Lord celebrated on December 25.
Relatedly, Word on Fire recently released a new book called The Mary Pages: An Atheist’s Journey to the Mother of God by Sally Read. Also, on December 2, Word on Fire launched the sale of a new book: Early Church Fathers Collection. As it happens, I recently wrapped up a series of lectures on the Church Fathers for the Word on Fire Institute’s “Theology for Evangelists Community.”
Combining the themes of devotion to Mary and study of the Church Fathers, I thought it would be fitting to write an article discussing the early Church Fathers’ understanding of Mary. This article cannot be exhaustive, of course, but I hope it will introduce the theme sufficiently and perhaps pique the interest of some readers to do further study.
The Oxford scholar J. N. D. Kelly (1909–1997) notes that Mary’s “role in the working out of God’s redemptive plan was relatively early recognized.”[1] As the Patristics scholar Johannes Quasten (1900–1987) notes, St. Justin Martyr (100–165), in his Dialogue with Trypho, “adds a counterpart to the Pauline parallel, Christ-Adam, by contrasting Mary with Eve.”[2] St. Justin writes: “He [the Son] became man by the Virgin, in order that the disobedience which proceeded from the serpent might receive its destruction in the same manner in which it derived its origin. For Eve, who was a virgin and undefiled, having conceived the word of the serpent, brought forth disobedience and death. But the Virgin Mary, received faith and joy, when the angel Gabriel announced the good tidings” (Ch. 100). St. Irenaeus (c. 130–c. 202) expands upon this notion: “The knot of Eve’s disobedience was loosed by the obedience of Mary. For what the virgin Eve had bound fast through unbelief, this did the virgin Mary set free through faith”; “and thus, as the human race fell into bondage to death by means of a Virgin, so it is rescued by a virgin; virginal disobedience having been balanced in the opposite scale by virginal obedience.”[3]
We pay special honor to Mary, Mother of God, and we ask for her intercession, hoping that—along with her—we will one day be counted among the saints.
For his part, St. Athanasius (c. 296–373), who played a key role in overcoming the scourge of the Arian heresy, does not hesitate to call Mary the Theotokos (Mother/Bearer of God).[4] In doing so, he followed the example of his predecessor, Alexander of Alexandria; this term was used so widely that “Julian the Apostate mocked Christians for their incessant use of it.”[5] Of course, St. Cyril of Alexandria (c. 376–444) defended the title against Nestorius, the former’s views being confirmed at the Ecumenical Council of Ephesus in 431 A.D. and the latter’s position being found heretical.
In addition to calling her “Mother of God,” the renowned Cappadocian Father, St. Gregory of Nyssa (c. 335–c. 395) also saw a parallel between Mary as the advocate of Eve and Jesus as the new Adam. He also wrote, quite strikingly: “‘In the age of Mary, the Mother of God, he [death] who had reigned from Adam to her time, found, when he came to her and dashed his forces against the fruit of her virginity as against a rock, that he was shattered to pieces upon her.’”[6]
St. Ambrose (c. 339–c. 397), who was instrumental in St. Augustine’s conversion to the Catholic faith, also saw a parallel between Mary and Eve. He, along with “theologians and ecclesiastical writers in the Latin as well as in the Greek Church, proclaimed her virginity in partu [during the birth] and post partum [after the birth of Jesus],” as did St. Hilary (c. 310–c. 367)[7] and St. Jerome, who wrote in defense of 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 against an Arian named Helvidius.[8] St. John Chrysostom (c. 347–407) likewise asserts Mary’s perpetual virginity.[9]
St. Augustine (354–430), who is admired by Protestants and Catholics alike, taught many doctrines about Mary. He held to her “divine maternity,” “perpetual virginity,” and even “affirms Mary’s immunity from all sin.”[10] Augustine also refers to Mary as the Mother of the Church or “‘mother of the members of Christ.’”[11]
St. John Damascene (c. 675–749) likewise had a profound devotion to Mary. He affirmed her title as “Mother of God,” defended her perpetual virginity, spoke of her absolute sanctity, and even wrote of her bodily assumption into heaven.[12] According to J. N. D. Kelly, devotion to Mary was “particularly fervid” in Syria and there, “we find Ephraem [c. 306–373] delineating her as free from every stain, like her Son.”[13]
Not all of the Fathers taught every one of the Marian doctrines as we know them today. To claim as much would be an overstatement. However, it is certainly the case that from the earliest Apostolic Fathers (circa 100 A.D.) to the last of the great Greek Fathers (circa 800 A.D.), we encounter recognition that Mary has a special role in God’s plan of salvation. With our Orthodox brethren, we pay special honor to Mary, Mother of God, and we ask for her intercession, hoping that—along with her—we will one day be counted among the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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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revised ed. (HarperCollins, 1978), 491.
[2] 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1, The Beginnings of Patristic Literature: From the Apostles Creed to Irenaeus (Christian Classics/Ave Maria Press, 1995), 211.
[3] Ibid., 298 and 299, respectively, but these are quotes from Irenaeus himself.
[4] See 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III, The Golden Age of Greek Patristic Literature: From the Council of Nicaea to the Council of Chalcedon (Christian Classics/Ave Maria Press, 1995), 75.
[5] Kelly, Early, 494.
[6] Quasten, Patrology, vol. III, 289, quoting St. Gregory of Nyssa.
[7] Joseph J. Tixeront, History of Dogmas, vol. II, Athanasius to Augustine, ebook format, (Lex de Leon Publishing, 2015), Ch. IX, §11.
[8] See Jean Gribomont, “The Translations. Jerome and Rufinus,” Ch. IV of 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IV, trans. Placid Solari, O.S.B. (Christian Classics, 1995), 239.
[9] See Quasten, Patrology, vol. III, 476.
[10] Agostino Trapè, “Saint Augustine,” Ch. VI of Quasten, Patrology, vol. IV, 432.
[11] Ibid., 433.
[12] See Joseph J. Tixeront, History of Dogmas, vol. III, The End of the Patristic Age, ebook format (Lex de Leon Publishing, 2016), Ch. XI, §5.
[13] Kelly, Early, 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