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 앞에서

당신께서는 저희 육신이라는 연약하고 불안정한 이곳에 태어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움과 갈증 안에 태어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황량한 곳에 태어나 저희 인간처럼 살기로, 항상 때늦은 시간의 무게만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단편적인 시간 속에 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저희가 살아가는 부질없는 재(灰)의 소용돌이, 불확실과 피곤한 딜레마의 흐름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당신께서 저희를 찾아오신다면 그것은 저희가 당신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저희의 산만함 속에서도 저희가 당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바라보시니 저희가 당신을 볼 수 있고, 들어주시니 저희에게 응답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팔을 펼치시니 저희가 다시 껴안는 법을 배우고, 이처럼 매년 다시 태어나시니 저희가 새로 태어날 수 있나이다.

한없이 무기력한 채로, 그래서 저희는 당신의 구유 앞에서 기도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눈으로 저희의 눈을 높이, 멀리, 넓게 보도록 가르쳐주소서. 여전히 단편적이고 부분적이며 우유부단하기만 한 저희의 시야를 밝혀주소서. 저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구유를 어찌 만들어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 한 손에 다른 손을 맛대어 저희의 이 두 손으로라도 당신을 손에 받아들 수 있는 구유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자비와 용서가 구유를 만드는 나뭇조각임을 가르쳐주소서. 설령 저희가 충분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형제애 속에 피어나는 삶이 성탄의 신비 안에 사는 것임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호세 톨렌티노 멘돈사 추기경(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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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gliesti di nascere qui, in questo precario luogo che è la nostra carne, tra la penuria e la sete provocate dai giorni. Scegliesti di nascere nel piatto abbandono dei nostri paesaggi e di abitare come noi questo umanissimo e frammentario tempo che a volte sembra solo conservare il peso che si è fatto tardi. Non evitasti, per nascere, i mulinelli di cenere là dove noi siamo accampati, o il flusso delle nostre incertezze, dilemmi e stanchezze.

Ma se ci vieni incontro è perché noi camminiamo verso di te e anche nella nostra dispersione possiamo incontrarti. Se guardi verso di noi è perché ti possiamo vedere. Se ci ascolti è affinché sappiamo di essere esauditi. Se stendi le braccia verso di noi è perché di nuovo impariamo ad abbracciare. E se ogni anno nasci, è perché noi possiamo rinascere.

Per questo sostiamo inermi a pregare davanti alla tua mangiatoia. Che i tuoi occhi, Gesù, insegnino ai nostri occhi larghezza e altezza. Che i tuoi occhi sgomberino quella che ancora è la nostra visione: frammentaria, parziale, indecisa. Insegnaci come si costruisce quella mangiatoia dov’è ancora possibile reinventarsi. Insegnaci, per esempio, che sono una mangiatoia due mani che si accostano l’una all’altra. Che la misericordia e il perdono sono le assi di una mangiatoia. E che una vita che si schiude in fraternità abita, anche senza saperlo, dentro il mistero del Natale”

José Tolentino Mendonça

6 thoughts on “구유 앞에서

  1. 주님의 평화가 간절히 필요한 이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다시 찾아오시는 아기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루만이라도 모든이에게 복된 평화가 함께 하기를…

  2. ‘저희가 다시 태어나야 할 구유…’ 깊이 와닿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거룩한 성탄 맞으시기를 기도합니다.^^

  3. 하느님의 선택으로 태어나시는 예수님,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 마리아를 항상 마음에 새기며, 나의 삶도 하느님께서 쥐어주신 삶임을 잊지 않고 살게 해주시기를 다시 감사기도 드리며 해마다 마음깊이 새김을 기도드립니다.
    그렇게 살라고, 좋으신 글 올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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