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식사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런저런 아픈 사연 속에서 딸과의 갈등을 살아내는 중에 답답할 때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전시된 ‘베드로의 부인否認’이라고 알려지는 이 작품 앞에서 눈물 글썽거리는 베드로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노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카라바지오의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행운을 누렸다고 했다.(MET에는 카라바지오의 1597년 작품인 ‘음악가들-The Musicians’과 함께 ‘베드로의 부인’이 영구 전시되어 있으며, 디트로이트, 뉴욕, 샌디에고, 애틀란타, 코네티컷, 클리브랜드, 시카고 등 미국에만 10여 점 작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라는 작품은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년)의 말년 그림으로서 원제는 ‘La negazione di San Pietro di Caravaggio’ 영어로는 ‘The Denial of Saint Peter’라고 한다. 관련된 성경 대목은 마태 26,69-75 마르 14,66-72 루카 22,55-62 요한 18,15-18.25-27이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 등에게 영향을 주었던 미켈란젤로 메리시는 출신지의 이름을 따서 카라바지오라고 불려왔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를 때 실제로는 밀라노 태생이다. 그는 빛과 어둠의 대조를 강조하면서 배경을 어둠으로 처리하고 작중 인물에만 빛을 비추는 식의 일명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을 사용하여 사실주의적 묘사를 한다. 로마에서 유명한 화가로 활동을 했던 그의 작품은 로마의 여러 곳에 있으며,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설치된 마태오 관련 3부작(부르심, 천사, 순교)을 비롯하여,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에만도 6점이나 되는 작품이 있다. 지난주 기회가 닿아 일부러 나보나 광장 옆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3부작을 보러 갔으나 내부의 보수 공사 중이라 섭섭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베드로의 부인’이라는 작품은 카라바지오가 죽던 해의 작품으로서 나폴리에서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래전 나폴리에서 그린 이 작품은 원래 파올로 사벨리Paolo Savelli라는 추기경의 소유였다가, 스위스의 어떤 귀족에게 팔려 갔으며, 헤르만 시크만Herman Shickman이라는 이의 개인 소장품이 되었다가 1997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기증되어 영구 전시되는 내력을 지녔다.
이 작품은 예수님이 붙잡힌 이후 현장에 있던 베드로가 자신을 알아보는 어떤 여인을 통해 고발을 당하자 붙잡혀 자신도 죽을까 두려워 “내가 예수님과 한패라고?” 하며 예수님과는 천부당만부당 일면식도 없다면서 부인하는 장면을 담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체포 이전에 이미 일찍이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당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바 있다.(참조. 마태 26,75과 병행구) 작품에는 단호하게 예수님을 모른다며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우측에 보이고, 중앙에는 베드로를 위험인물로 판단하여 베드로가 예수님의 일행이라는 확신에 차서 베드로를 가리키며 눈을 부릅떠 의심의 눈초리로 고발하는 여인이 등장하며, 여인의 고발에 똑바로 말하라는 듯이 당장이라도 베드로를 체포할 듯 겁박하며 소리치는 경비병이 있다. 카라바지오는 다른 작품에서도 늘 그렇듯이(예를 들어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작중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표정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인다.
by I.H. KO
카라바지오의 생애를 읽다 보면 전혀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그가 1609년 10월 나폴리의 한 선술집에서 시비에 휘말려 시력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베드로의 부인’이라는 작품이 그 이후에 그려진 그림이라면 카라바지오로서는 대단한 주의를 기울여 그림의 세부적인 내용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거나 미세한 묘사를 자신의 의도대로 할 수 없어 대충 그렸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다. 후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본다면 그림의 전반적인 내용이 세부적인 묘사를 피하다시피 그려진 것은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표정이나 신체의 부분을 다소 과장하듯 강조하여 세밀하게 묘사하려는 카라바지오의 다른 그림에 견주어 이 그림에서 베드로의 손 부분이 너무 젊게 표현되고 있다거나 경비병의 얼굴이 옆모습으로만 그려진다든가 여인의 얼굴이 너무 매끄럽게 묘사되고 있는 부분을 예로 들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서는 베드로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의 묘사가 압권이다. 사고로 시력을 잃어가는 자신의 눈을 생각해서였을까? 자세히 확대해서 보면 아래 눈꺼풀에 고인 눈물이 보인다. 그 눈물은 배반자 베드로를 통해 카라바지오가 자신의 인생을 투사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겉으로는 감출 수 있으나 속으로는 결코 감출 수 없는 자신의 비겁함을 때로는 과대 포장해서 주변에 역설적인 공격성으로 드러내든, 거룩함으로 치장하여 변장하기도 한다. 스승님을 배반한 베드로 역시 돌아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참조. 루카 22,61)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에 배반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불현듯 기억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속으로) 슬피 울었다.” 사랑은 밖으로 나가 기억과 함께 혼자 속으로 우는 눈물이다.
그렁이는 눈물속에 벌써 회개의 마음이 숨어있음을! 다가오는 위령성월에 좋은 묵상거리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어떤 미술관련 책에서 카라바지오에 대한 내용을 읽고 잎으로 유심히 보고 싶은 화가로 눈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눈물의 의미
그 때 배신을 했음에도 본인의 과오를
참회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 할 거라는 것까지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욱 공고해진 베드로의 믿음에
경의를 표하며.
얼마나 눈물이 날지…
항상 함께 같이했던 예수님을 …
이 모든걸 미리 아신 예수님은 또한 베드로가 얼마나 슬플지도 회개할지도 아셨기에 믿음과 사랑으로 미리 함께하며 말씀도 해 주셨거늘..
뒤늦게 알아차리는, 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