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

(마르 4,35-41마태 8,23-27 루카 8,22-25 *연중 제12주일 ‘나’해)

29세의 렘브란트(1606~1669년)는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에 관한 그림을 그린다. 영어로는 통상 ‘갈릴래아 바다의 폭풍A storm on the sea of Galilee’이나 ‘갈릴래아 호수의 폭풍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Christ in the Storm on the Lake of Galilee’라고 알려지는 그림이다. 과거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에 있었으나 1990년에 도난당한 뒤 아직 실종 상태로 알려지는 그림으로서 렘브란트가 바다를 배경으로 그린 유일한 그림이라 한다. 이 그림은 공관복음이 전하는 대로 베드로의 배가 바람과 파도에 요동을 치는 장면을 주제로 삼았다. 렘브란트의 주된 관심은 언제든지 우리 인생에도 풍랑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나아가 그 풍랑에 임하는 우리의 대응을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림을 보면서 먼저 배에 탄 사람이 몇 명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흘깃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이겠거니 하면서 열셋일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꼼꼼히 숫자를 세어보면 배에 탄 사람은 열넷이다. 렘브란트는 배에 탄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이런 내용은 교회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관습을 반영한다. 즉, 성경의 장면에 자신을 그려 넣고 그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를 묻는 방식이다. 그 순간에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하며, 또 어떤 것을 듣고 있고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것을 묵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1491~1556년) 성인께서 주창하셨던 놀라운 ‘영신수련’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세 그룹의 제자들이 눈에 뜨인다. 배 뒤쪽에서 폭풍우 속에서도 예수님 앞에 모여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는 작은 그룹이 있다. 거대한 고요함이 이 그룹을 에워싸고 있다. 사실 그림은 빛으로 빛나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빛을 묘사하면서 그리스도 주변에 모여든 이들이 그 빛에 참여하고 있음을 그린다. 이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배의 끝에는 어둠이 있다. 그리고 이 어둠이 지배하는 곳에 두 번째 그룹의 제자들이 어둠의 그늘에 숨겨져 있다. 일명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렘브란트의 대조적인 빛의 모습 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다. 어둠 가운데 비치는 그리스도의 겸손한 빛이 있고, 그리스도를 주시하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나누며 고요한 평온 속에 있는 것과는 달리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지 않은 제자들은 엉뚱한 곳만 바라보면서 바람과 파도에 크게 흔들리고 어둠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세 번째 그룹의 제자들도 있다. 아마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어부 제자들일 것이다. 폭풍과 싸우면서 배가 폭풍에 휩쓸리지 않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제자들이다. 그 제자들 한가운데에 베드로가 있다. 베드로는 온 힘을 다하여 폭풍우와 싸운다. 우리는 우리 인생 가운데서도 우리 인생에 벌어지는 온갖 문제를 나름대로 통제해 보려는 시도 속에 있는 베드로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해본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우리 식대로 정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우리 자신을 일종의 펠라지우스Pelagius(355?~425년?) 식 베드로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에 빠지게 하는 셈이 된다. 펠라지우스 이단은 인간의 능력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인간이 본래 원죄에 빠지지 않았고, 우리도 무엇인가 제대로 된 선善을 행하도록 선택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4세기의 이단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었던 이단이었다.

렘브란트는 폭풍이 끝나갈 것을 암시하듯 구름을 뚫고 비치는 빛을 묘사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베드로는 이 빛에 등을 돌리고 있다. 우리 인생의 폭풍 속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벌어진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폭풍우를 헤쳐나가려고 싸우다 보면,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어둠만 보고, 희망을 보지는 못하면서 절망만 본다. 미래를 보지는 못하면서 현재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런 식의 느낌이 들 때는 사도 요한을 생각하면 유익할 것 같다. 그는 배 뒤쪽에서 예수님과 함께 빛을 바라보며 배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손을 짚는다.

크나큰 폭풍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사도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참조. 병행구) 하고 다시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폭풍이 있었던 갈릴래아 바다는)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6-27 참조. 병행구) 이렇게 놀랍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20220201 *그림-wikipedia)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