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코미디언들과의 만남

지난 2024년 6월 14일 바티칸 문화교육부와 커뮤니케이션부 주관으로 15개국에서 온 유명 코미디언들 107명과 교황님 간의 만남이 있었다. 다음은 이날 코미디언들에게 주신 교황님의 연설 전문의 번역이다.(*사진과 연설 원문 출처-바티칸 공식 사이트) 이 말씀에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과 아름다운 기도문이 담겨있다. 말씀의 뒷부분에는 이 모임에 참석하였던 그래피티 전문가요 길거리 예술가로 유명세를 탄 마우팔Maupal(Mauro Pallotta)이라는 분이(※참조-길거리 예술가와 교황님 http://benjikim.com/?p=8561) 교황님께 증정한 “인텔리전스(Intelligence)”라는 새로운 작품과 그 작품에 관한 작가 자신의 해설내용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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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를 환영하며 이러한 만남을 주선해주신 문화교육부와 커뮤니케이션부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장관님께서 이탈리아에서는 “웃음이 혈액순환에 좋다.(a smile is good for the blood)”라고 하신다는데, 과연 그런가요?

저로서는 코미디와 유머, 그리고 아이러니(풍자)라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예술가이신 여러분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언어에 얼마나 많은 지혜가 담겨있는지요! TV와 영화, 극장, 인쇄 매체, 노래, 소셜 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전문가 중에서 여러분들이야말로 가장 사랑받으며 인기가 있는 분들입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하시는 일들을 잘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재능을 지니고 이를 계발해나가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울한 뉴스가 넘쳐나며,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비상 상황에 빠져 있는 와중에 여러분은 평화와 웃음을 전파하는 힘을 지니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다양한 세대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모든 유형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십니다.

웃음은 전염성이 있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혼자 웃는 것보다는 함께 웃기가 더 쉽습니다. 기쁨은 나눔으로 이끌고, 이기심이나 개인주의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입니다. 또한 웃음은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 간의 유대를 형성하며,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고, 문화의 나눔을 구축하며 자유 공간을 확보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일 뿐만 아니라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유희遊戲의 인간)임을 생각하도록 해줍니다. 재미있는 놀이와 웃음은 자신을 표현하고 학습하며 여러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생활의 중심입니다.

여러분의 재능은 소중한 선물입니다. 함께 웃으면서 우리 마음과 다른 이들 사이에 평화를 퍼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며 일상의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아이러니 안에서 안도감을 찾고, 유머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저는 “오, 주님! 저에게 훌륭한 유머 감각을 허락하소서.”라는 성 토마스 모어의 말씀으로 매일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40년 이상을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런 기도문을 아세요? 마땅히 아셔야만 하지요! 제가 부처의 관계자들에게 모든 예술가들이 이 기도문을 아시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이 기도문은 저의 사도적 권고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Exhortation Gaudete et Exsultate)” 제126항의 각주 101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매일 이 은총을 구하는 까닭은 이 기도가 모든 일에 올바른 정신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이나 문제를 처리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을 웃게 하는 또 다른 기적을 이루는 데 성공하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권력의 남용을 고발하고, 잊힌 상황에 목소리를 내며, 남용을 의식하게 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지적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유형의 커뮤니케이션들이 (요란하게) 경보를 울리거나 테러, 공포의 조장을 해대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이 웃고 미소 지으면서도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유도하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진짜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러분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현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문제에 관해 말씀하시는 분들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세상이 시작할 때 모든 것이 창조되는 동안 신성한 지혜는 그 누구도 아닌 역사의 첫 번째 관객인 하느님 자신을 위해 여러분들이 하는 것과 같은 예술 행위를 발휘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잠언 8,22.30-31)라고 묘사하는 그대로입니다. 단 한 명인 관객의 입술에라도 미소 짓게 하는 법을 안다면 – 이것은 이단이 아닙니다 – 여러분은 하느님을 웃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술가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 형태와 스타일로 유머러스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이러한 유머의 언어는 어느 것이나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느끼는” 데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유머는 다른 이를 기분 나쁘게 하거나 굴욕감을 주지 않으며 억지로 끌어내리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은 종종 갈등을 유발하지만, 여러분은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현실까지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유머의 웃음은 그 누구도 결코 “적대시”하는 법이 없고, 항상 포용적이며 지향이 있고 개방성, 공감, 안쓰러움을 담습니다. 유머 감각을 달라고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부처의 책임자들에게 토마스 모어의 아름다운 기도가 여러분에게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년 이내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여느 여인들처럼 호기심이 많았던 사라는 자기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마도 나중에 남편을 꾸짖어줄 요량으로……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다음 해에 돌아올 때까지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속으로는 씁쓰레하게 “내 나이에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라는 그 늙은 나이에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때에 잉태하여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때 사라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 이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주겠지.”(창세 21,6)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 노부부가 아들 이름을 ‘그는 웃는다’라는 뜻으로 이사악이라 지은 까닭입니다.

하느님을 웃길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것은 신성모독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놀고 웃기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유다인의 지혜와 문학적 전통은 이러한 소산입니다! 신앙인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종교적 감정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예술을 축복해주시기를 빕니다. 사람들을 계속 응원해주십시오. 특별히 희망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힘든 이들에게 그렇게 해주십시오. 모순적인 현실을 웃음으로 바라보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부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도록 청합니다. 부디 저에게 미소를 지어주시고 반대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제 축복 전에 성 토마스 모어의 아름다운 기도를 들었으면 합니다.

루치아나 리티제토Luciana Littizzetto: 먼저 저와 저의 동료들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늘 장례식장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루치아노 리티제토의 기도문 낭독)

주님, 제가 소화를 잘하게 해주시고, 아울러 소화하기 좋은 음식도 내려주소서. 저에게 건강한 육신을 주시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좋은 성향도 주소서. 저에게 단순한 영혼을 주시어 모든 좋은 것을 잘 간직하고, 악을 보고 쉽게 겁먹지 않으며, 모든 일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방도를 찾도록 도와주소서. ‘나’에게만 집착하여 생기는 권태, 불평, 한숨, 과도한 스트레스를 알지 못하는 영혼을 주소서. 오 주님, 저에게 훌륭한 유머 감각을 허락하소서. 제가 농담을 받아들이고, 삶 안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며 다른 이들과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소서. 아멘!(Grant me, O Lord, good digestion, and also something to digest. Grant me a healthy body, and the necessary good humour to maintain it. Grant me a simple soul that knows to treasure all that is good and that doesn’t frighten easily at the sight of evil, but rather finds the means to put things back in their place. Give me a soul that knows not boredom, grumbling, sighs and laments, nor excess of stress, because of that obstructing thing called ‘I’. Grant me, O Lord, a sense of good humour. Allow me the grace to be able to take a joke and to discover in life a bit of joy, and to be able to share it with others. Amen!)」

교황님: 제가 이미 축복을 드렸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인간적인 축복으로 작별 인사를 전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코미디언으로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매우 아름다운 이 소명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코미디언보다는 슬픈 사람 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더 쉽고 말고요. 사람들을 웃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웃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고맙습니다.

“Intelligence” by Mau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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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팔: 이 작품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G7에 참석하시어 인공지능(AI)에 관하여 말씀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여러 의미를 담아 만든 작품입니다. 그림에서 교황님은 하느님과 고백자 사이에 필터 역할을 하시면서 고백성사를 듣고 계십니다. 한쪽 귀로는 고백자를 들으시면서 다른 귀는 헤드셋으로 삼각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린 삼각형은 디지털 표현을 연상하게 하는 작은 노란색 삼각형입니다. 그래서 보는 이가 인공지능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인공적인 신神을 표현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신이 만화에서 후광이 있는 삼각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그리기로 하였고, 공간도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황님과 하느님과의 관계였고 그것이 첫 번째 영감이었습니다. 고백하는 여인은 딱히 누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황님께서는 성경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있지도 않은 마우팔의 도록을 들고 계십니다.(ㅎㅎㅎ) 이 작품을 교황님께 드렸을 때, 교황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이 작품이 아이러니임을 즉시 알아차리셨습니다. 그리고 “왜 항상 나를 그렇게 뚱뚱하게 그립니까?” 하고 말씀하셨고, 저는 “아니에요. 아마 흰색 때문일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기사와 그림 출처-aleteia.org)

3 thoughts on “교황, 코미디언들과의 만남

  1. ㅎㅎ 웃음은 만병의
    치료약이네요.
    빙그레 웃었어요.
    마지막 대화가 인상깊어요.

    오호
    이사악이랴는 뜻이 그는 웃는다.
    라고
    부끄럽지만 지금 알았습니다.
    재미있습니다.

  2. 마지막 그림에서 노란 삼각형이 삼위 일체의 상징인줄 알고… 좀 더 정신적인 여유를 갖기를 청하며 토마스 모어의 기도를 바쳐봅니다

  3. 유머 감각이 부족하고 항상 진지하게만 생각하는 저의 습관적인 방식에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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