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사도(7월 3일)

Hendrick ter Brugghen – The Incredulity of St. Thomas, 1622년

전례복음(요한 20,24-29):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오늘날도 여전히 가난하고, 목마르며, 벌거벗고, 굴욕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며, 감옥에 갇히거나 병원에 아파 누워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몸에 예수님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인간의 길을 택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살피면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당신을 보여 주셨을 때, 어떤 이들을 기뻐했고 어떤 이들은 의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에게 당신을 보여 주신 지 여드레가 지나도록 토마스는 여전히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하실지를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토마스에게 여드레를 허락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깨끗하고 매우 아름다우며 빛으로 가득하셨지만, 여전히 당신 몸에 있는 당신 수난의 그 상처를 그대로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토마스 사도가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그처럼 고집이 셌지만, 예수님께서는 더욱 위대한 것을 설명하고자 그처럼 아둔하고 완고한 그(a pig-headed man)를 원하셨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자기 손을 주님의 상처에 넣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하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불신(의심)에서 출발하여 부활에 대한 그의 믿음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주님의 신성神性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도록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토마스 사도가 보았던 것처럼 그 상처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자비의 행위를 통해, 몸을 내어주는 일을 통해, 곧 상처 입은 우리 형제들, 굶주리고 목마르며 벌거벗거나 노예가 된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 병원에 누워있는 이들의 몸과 영혼을 보살피고 어루만지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자선 활동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직접) 예수님의 상처를 만져야 하고, 그를 쓰다듬어 보살펴야만 합니다. 부드럽게 예수님의 상처를 낫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상처들에 말 그대로 입을 맞춰야만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나병 환자를 껴안으면서 자기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성인은 나병 환자를 껴안으며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질 수 있었고 그분을 경배하여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의 행위를 통해 요청하시는 것은 “네 손가락을 대보고…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하고 토마스 사도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7월 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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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ust come out of ourselves, we must take human routes if we are to discover that Jesus’ wounds are still visible today on the bodies of all our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hungry, thirsty, naked, humiliated or slaves, in prison and hospital. By touching and caressing these wounds “we can adore God alive in our midst”.

The Feast of St Thomas the Apostle enabled Pope Francis to return to a concept dear to him: placing our hands in the flesh of Jesus. Concelebrating with the Holy Father among others were Cardinal Jean-Louis Tauran, President of the Pontifical Council for Interreligious Dialogue, who had accompanied staff of the dicastery.

Referring to the Readings (Eph 2:19-22; Ps 116[117] Jn 20:24-29), the Pope reflected on the disciples differing reactions “when Jesus made himself visible after the Resurrection”. Some rejoiced, others were filled with doubt. Thomas, to whom the Lord only showed himself eight days after he had shown himself to the others, was even incredulous. “The Lord”, the Pope said, “knows when and how to do things”. He granted Thomas eight days; and he wanted the wounds still to be visible on his body, although they were “clean, very beautiful, filled with light”, because the Apostle had said he would not believe unless he put his finger in them. “He was stubborn! But the Lord”, the Pope remarked, “wanted a pig-headed man in order to explain something greater. Thomas placed his fingers in the Lord’s wounds. But he did not say: “it’s true, the Lord is risen”. He went further; he said: “My Lord and my God”. Starting with his disbelief the Lord led him to profess not only his belief in the Resurrection, but above all, his belief in the divinity of the Lord.

“How can I find the wounds of Jesus today? I cannot see them as Thomas saw them. I find them in doing works of mercy, in giving to the body — to the body and to the soul, but I stress the body — of your injured brethren, for they are hungry, thirsty, naked, humiliated, slaves, in prison, in hospital. These are the wounds of Jesus in our day”.

Mere philanthropic actions do not suffice, the Pope added. “We must touch the wounds of Jesus, caress them. We must heal the wounds of Jesus with tenderness. We must literally kiss the wounds of Jesus”. The life of St Francis, he said, changed when he embraced the leper because “he touched the living God and lived in adoration”. “What Jesus asks us to do with our works of mercy”, the Pope concluded, “is what Thomas asked: to enter his wou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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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성 토마스

사도 성 토마스는 아마도 갈릴래아 출신인 듯하며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성 토마스는 12사도 중 한 명이지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라자로가 죽음에서 부활할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요한 11,16),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는 말씀을 들었다.(요한 14,5-6)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발현하셨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24-27) 이때 그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최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되었다. 또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발현하셨을 때도 그 현장에 있었다.(요한 21,1 이하)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토마스는 나중에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의 왕국)에서 설교하였고, 또 다른 옛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에 순교하여 마드라스(Madras) 교외 밀라포르(Mylapore)에 묻혔다고 한다. 성 토마스는 건축가의 수호성인이고, 1972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인도의 사도로 선언되었다. 6세기부터 그의 유물을 에데사(Edessa)로 옮긴 것을 기념하는 축일을 7월 3일에 지내왔다.(*출처-굿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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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이야기 사도 성 토마스

사도 성 토마스는 갈릴래아 출신으로 겐네사렛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하나로 뽑혀 사도의 반열에 올랐다.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성 토마스는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기 위해 베타니아로 가려고 하자 다른 사도들이 바리사이파의 음모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모두 극구 만류하였으나 토마스만은 “우리도 함께 가서 그분과 생사를 같이합시다”라고 말하였다.(요한 11,16)

최후의 만찬 때에도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이별을 고하자 다른 사도들이 비통에 잠겨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토마스만은 예수님의 말에 “주님 저희는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라고 솔직히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하셨다.(요한 14 5-6)

그리고 토마스는 다른 사도들과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갔지만, 예수께서 병사들에게 사로잡히자 다른 사도들과 같이 예수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인도에 7개 교회 세우고 선교 활동

이후 토마스는 자신이 없을 때 예수께서 부활하여 다른 사도들에게 발현하셨다는 말을 듣고 믿지 못하며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라고 말하였다. 여드레가 지나고 사도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24-27) 이때 그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최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였다.

또 이외에도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발현하셨을 때도 그 현장에 있었다.(요한 21,1 이하)

전승에 따르면 성령강림절 이후 사도들은 어디로 가서 선교를 할 것인지 제비를 뽑았는데 토마스는 인도에 가도록 뽑혔다고 한다. 그런데 토마스는 그렇게 먼 곳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아 거부하였는데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시어 인도의 서남단 지방인 마드라스 교외의 말라바르(Malabar)를 통치한 군다포르 왕의 궁전을 짓는 목수로 가도록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토마스는 인도로 갔으며 그곳에서 군다포르 왕의 궁전을 짓는 일을 하게 되는데 왕궁 건축 기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써버려 왕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기적적으로 탈출한 후 말라바르 지방으로 내려와서 7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본격적으로 선교 활동을 벌여 많은 인도인에게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기원후 72년경 마드라스(Madras)시 교외 밀라포르(Mylapore) 근처에서 힌두교 사제들에 의해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한다. 이후 토마스의 유해는 4세기에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오늘날 터키의 우르파)로 옮겨졌고 나중에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 지방 키에티 주의 오르토나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전승 즉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토마스는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의 왕국)에서도 선교했다고 전하고 있기도 한다.

성모님께서 승천의 징표로 토마스에게 허리띠 주셔

오늘날에도 인도 서남부 케랄라 주에는 말라바르 전례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토마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 교회의 기원이 토마스 사도에게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하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인 1972년에 사도를 인도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고 이를 기념하여 토마스가 인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라는 크랑가노어에서는 성 토마스 순교 19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6세기부터 그의 유해를 에데사(Edessa)로 옮긴 것을 기념하는 축일을 7월 3일에 지냈기에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7월 3일에 동방 정교회에서는 10월 6일에 그의 축일을 지내고 있다.

성 토마스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목수로 일한 적이 있다는 전승에 기인하며 건축가, 예술가, 목수, 측량사, 재판관, 건축업자, 조각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고 그로 인해 목수들이 사용하는 직각자를 들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긴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묘사하는데 이는 창에 꿰찔려 순교하였기에 그렇게 묘사하기도 한다.

한편 토마스는 성모님이 세상을 떠나려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으나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이미 성모님의 장례를 치른 지 사흘이나 지났다고 한다. 토마스는 성모님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뵙고자 무덤 문을 열어 보니 그녀의 시신은 없고 시신을 쌌던 천만 남아 있었고 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어머님을 하늘에 모시고 올라가셨다고 믿었지만, 토마스는 이를 온전히 믿지 못하였다. 이에 성모님은 토마스에게 나타나 자신이 예수님에 의해 하늘로 승천했음에 대한 징표로 지상에서 두르고 다니시던 자신의 허리띠를 주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오늘날 그리스 아토스의 바토페디 수도원에는 바로 그 성모님의 띠라고 전해지는 유물이 보존되고 있기도 하다.(장긍선 신부, 레지오 마리애, 2015년 7월)

※참조: 무지개 홍虹http://benjikim.com/?p=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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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빠져 있던 사도는 토마스뿐이었습니다. 그는 돌아와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 더 오시어 이 의심하는 제자에게 늑방과 손을 내보이시고 거기에 남아 있는 상처에 손을 대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 상처의 흔적이 토마스의 불신앙이라는 상처를 고쳐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사건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뽑힌 제자가 그 자리에 없다가 돌아온 후 그동안 생긴 일에 대해 듣고 그것을 의심하며 또 의심하면서 늑방에다 손을 대보고 이렇게 대어 본 후 믿게 되었다는 것이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놀랍게 역사했습니다.

그 의심하는 제자가 스승의 육신이 받은 상처에 손을 대었을 때 우리 하느님께서는 불신앙이라는 상처를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토마스의 불신앙은 믿는 제자들의 신앙보다 더 유리했습니다. 사도 토마스가 주님의 상처에. 손을 대보고 믿게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우리 영혼은 온갖 의심에서 벗어나 신앙이 견고하게 됩니다. 의심하면서 주님의 상처에 손을 대는 이 사도는 부활의 참된 사실을 보여 주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토마스가 손을 대어 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외치자, 예수께서는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했습니다. 신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보이는 것은 신앙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마가 자기 눈으로 보고 손을 댈 때, 왜 주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하고 물어보십니까? 그가 눈으로 본 것과 신앙으로 믿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마라는 사람은 자기 눈으로 하느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눈으로. 한 사람을 보고 신앙으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고백하였습니다. 눈으로 보고 믿었습니다. 인간을 보고 자기가 보지 못한 하느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다음에 따라오는 말씀은 크나큰 기쁨을 샘솟게 합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우리를 특별히 염두에 두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도 영으로 믿는 사람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에 행위가 뒤따르도록 해야만, 여기서 주님께서 우리를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상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만이 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 성 바오로는 “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는 하느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야고보는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덧붙입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복음서에 대한 강론, 성무일도 독서기도 제2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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