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볼 때는 누구나 마음이 흐뭇하다. 가정 공동체가 함께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가족임을 서로 확인하는 순간은 기쁨이고 그러한 기억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오래 남는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하느님의 품을 잠시 떠나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고 살게 하며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고야 말게 만든다.
미국 최초의 가톨릭 학교는 적어도 1606년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현재의 플로리다 세인트어거스틴에 학교를 세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1782년 필라델피아에 설립한 세인트 메리는 미국의 첫 번째 본당 부설 학교이다. 1800년대에 미국에서 가톨릭 교육의 전통이 확산되었고, 1965~1966학년도에는 가톨릭 학교의 확산이 정점을 이루면서 전체 초중등 교육(K-12)의 10%를 넘어서는 5백 7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1만 2천여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우리가 안정과 전통보다는 변동과 변화로 점철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미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공중 보건을 관리하는 이들의 대응에 따라 2020년부터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되었고, 이에 따라 부모들은 초중고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녀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엄격한 코로나 마스크 착용과 함께 진보적이면서도 반-미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복음에서 거의 3분의 1은 비유이고, 성격과 패턴이 다른 요한복음을 제외하더라도 공관복음에만 40여 개의 비유가 전해진다. 비유는 우리를 옭아매고, 깜짝 놀라게 하고, 흔들어 의문을 품게 하고, 빠져들게 하고, 관심사를 살아 있게 하고, 생각에 거듭 몰두하게 하고, 뭔가 채워 넣어야 할 열린 페이지로 남게 하며, 조바심 나게 하고 깨어있게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총을 청하는
돈 보스코 성인은 아이들과 함께 모이던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3년) 성인의 이름을 붙였고, 이는 그대로 훗날 그가 설립한 ‘살레시오회’의 명칭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돈 보스코를 따르는 이들은 스스로 ‘살레시안’이라 칭한다. 돈 보스코는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살레시오 성인의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우리의 오라토리오를 두 가지 이유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라고 부르게
살레시오회원이라면 누구나 프랑스 남동부에 자리한 알프스 자락, 스위스 제네바로부터 35km 떨어져 있으면서 아름다운 호수와 강의 도시, 프랑스에서 ‘알프스의 진주’이자 ‘알프스의 베니스’라고도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St. Francis de Sales(1564~1622년)의 도시, 안느시(안시 혹은 앙시, Annecy)라는 도시를 순례하고 싶어 한다. 돈 보스코께서 수도회를 설립하시고 수도회의 명칭을 딴 성인이자 주보로 모신 ‘애덕의 박사’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께서 <신애론神愛論(Traite de L’amour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 전문가들은 2024년 동안 대화와 분위기에 영향을 준 6개의 후보 단어 목록을 선정하고 2주 간의 논의와 37,000명이 넘는 대중 투표, 그리고 언어 데이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2024년의 단어로 ‘뇌 부패(brain rot)’라는 단어를 선정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이를 「‘뇌 부패’란 사람의 정신적이거나 지적 상태가 악화된다고 여겨지는 것, 특히 사소하면서도 도전적이지 않은 자료의 과도한 소비의
2020년 봄에 갑자기 들이닥친 COVID19가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쯤이면 그래도 수그러들겠지 하였고 뭔가 백신 같은 해결책도 나오려니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다시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사람들은 지쳐가고 당황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이제는 정신적 질환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하던 무렵 사람들은 인류가 맞이한 생소한 현실 앞에서 여러
돈 보스코께서 살레시오회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발도코에서 아이들과 함께 드린 첫 번째 성탄 미사는 1846년이다. 돈 보스코는 열악한 피나르디 헛간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여 이 청원이 수락되자, 아이들에게 영성체와 성체조배에 관하여 설명하고 성가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준비시켰다. 돈 보스코의 전기 작가 레뮈엔 신부는 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살레시오회에서는 죠반니 바티스타 보렐 신부(1804~1873년)를 공식적으로 ‘살레시오회 협력자’로 호칭한다. 그는 실제로 돈 보스코의 가장 충실한 친구이자 조언자였으며 첫 협력 사제였다. 서품 후 5년여가 흐른 1846년 돈 보스코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던 중병에 걸려 고향 집에서 어머니의 간병을 받으며 4개월여 요양을 해야 했을 때, 돈 보스코는 자기의 오라토리오를 보렐 신부에게 맡겼으며, 이는 살레시오회의 초기 정착 과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