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요한 3,16-18)

이번 주부터 주일 복음 강해를 다른 양식으로 바꿉니다. 이번 주부터 연재되는 양식은 보시는 바와 같이 전례에 따른 제1독서, 2독서, 복음 순으로 해설과 함께 묵상 및 말씀을 간결하게 종합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맨 밑에 3년 전 강해 링크를 첨부해 놓았으니 기존의 상세한 강해 내용은 필요하실 경우 찾아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 강해와 함께 하시는 모든 분에게 말씀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벤지 올림

————————

지난주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고 교회는 이제 연중 시기로 들어섰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신앙의 근본을 다시 한 번 붙들게 하듯,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고, 이어서 다음 주에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통해 우리가 믿는 신앙이 어떤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를 드러낸 다음 비로소 연중 제11주일을 지내도록 할 것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읽을 수 있다. 곧, 하느님의 이름이 계시되고(제1독서: 탈출 34,4ㄱㄷ-6.8-9), 사도 바오로는 그 이름으로 인사하며 그 이름대로 사는 코린토 교회가 되라고 권면하며(제2독서: 2코린 13,11-13), 마침내 복음(복음: 요한 3,16-18)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이 세상 안에 온전히 드러난 신비임을 밝혀준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신다.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계시이며 동시에 그분과 맺는 관계로의 초대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알려 주셨다는 것은, 인간을 당신과의 친교 안으로 불러들이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모세는 단순히 알게 된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저희와 함께 가 주십시오.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십시오.” 하고 청한다. 이름의 계시는 곧 관계의 시작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곧 그분을 부를 수 있게 되고, 그분과 함께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계는 제2독서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바오로 사도는 매 미사의 시작 때 사제가 전하는 인사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로 코린토 교회에 인사한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교회가 이미 삼위일체의 생명 안에 들어가 있음을 드러내는 신앙 고백이다. 우리는 성부의 사랑 안에서, 성자의 은총으로, 성령의 친교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의 권고 –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며,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요청 – 는 단순한 윤리적 당위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삼위일체의 삶에 합당한 모습이다.

복음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응축한다. “하느님(성부)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성령)하신 나머지 외아들(성자)을 내주셨다.” 이 짧은 구절 안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담겨 있다. 사랑하시는 분이신 성부, 내어주어지신 성자, 그리고 그 내어줌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 자체이신 성령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 이 구절을 두고 삼위일체의 신비가 담긴 ‘작은 복음’이라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복음의 요약이라 한다.

교부들의 전통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으로 이해된다. “사랑하신”이라는 말 안에서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의 역동성을 읽어낸다. 삼위일체는 닫힌 신비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랑의 사건이다. 이 신비를 두고, 성 아우구스티누스(354년~ 430년)는 “사랑하시는 분, 사랑받으시는 분, 그리고 그 사랑”이라고 말하였고,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년)는 “입 맞추시는 분과 입맞춤을 받으시는 분과 그 입맞춤 자체”라고 노래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이 드러내는 진실, 곧 하느님의 내적 생명이 곧 사랑이며, 그 사랑이 세상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이해해야 할 대상이기보다,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삶이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 이미 들어와 있으며, 그 사랑을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며, 사랑 안에서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주신 권고를 따라 기뻐하고, 자신을 바로 잡으며, 서로 격려하고, 서로 뜻을 같이하여 평화롭게 사는 삶이다. 아멘.

***

–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고백하는 이들인가?

– 우리는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며,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인가?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다.”(요한 3,16)는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자.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요한 3,16-18)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