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3)

3439. (어머니가 꾸신 꿈 이야기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신 뒤로)…그 꿈이 있은 뒤로도 거의 아홉 해나 걸렸고(373년경부터 382년까지에 해당한다.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란 세월 동안 온갖 욕정으로 인해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면서 살았습니다.’-제4권 1.1), 허위의 어둠 속에서 일어나보려고 간간이 용을 써 보았지만, 그때마다 변을 당하면서 나뒹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정숙하고 경건하고 침착한 과부는 희망으로는 더욱 생기를 얻으면서도 통곡과 신음에도 뒤지지 않았으며, 자기의 기도를 바치는 모든 시간에 저를 두고 당신께 눈물 짓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이(어머니)의 간구가 당신 앞에 이르고 있었으나 당신은 여전히 그 어둠 속에서 엎치락 뒤치락 뒹굴도록 저를 내버려두셨습니다.(3-11.20)

3440. (어느 주교를 통해서 모니카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대답) “그러니 거기 그냥 내버려 두시오. 다만 그를 위해 주님께 매달리시오. 스스로 읽어가다 자신이 어떤 오류에 빠졌는지, 얼마나 큰 불경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나한테서 그만 가시오. 잘 될 겁니다. 그렇게나 많은 눈물 바람을 받은 자식이 망할 리 없습니다.”(3-12.21)

3441. ※ 19세, 373년~28세, 382년 : 온갖 욕정 / 30세, 384년 : 암브로시오 만남 / 32세,

386년 : 밀라노의 정원, 로마 13,13-14 / 33세, 387년 : 세례 → 지성의 회심에서 의지의 회심으로 나아가던 시기

3442. 정작 저는 정욕에는 굴복하면서도 소송에서는 이기는 말솜씨를 팔아먹고 있었습니다.…속임수를 안 쓰면서도 그들에게는 속임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3443. 허상에다 염원을 바치는 영혼은 당신을 떠나 사음邪淫을 행하고 거짓에다 믿음을 두며 바람을 먹고 사는 짓이 아니겠습니까?…바람을 먹고 산다 함이 무슨 뜻입니까? 악마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오류를 범함으로써 그들에게 쾌감과 비웃음이 된다는 것 말고 무엇입니까?(pascere ventos, 호세 12,1 “에프라임은 바람을 먹고 온종일 동풍을 쫓아다니며 거짓과 폭력을 늘려간다.”에 의하면 ‘허황한 기대를 갖는다’는 뜻이지만 거짓을 일삼는 자들은 악마의 먹이가 된다는 의미도 덧붙이고 있다.)(4-2.3)

3444. 복수의 하느님이신 동시에 자비의 샘이시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도망자들의 등 뒤를 바싹 쫓으시고는 묘한 솜씨로 저희를 당신께 돌이키십니다.(4-4.7)

3445. (우정에서 아첨과 아부 그리고 무조건 추종보다 해로운 장애가 없다 – 치체로)

3446. 제 자신이 제게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었고(ipse mihi magna quaestio, ipse est languor meus-제가 저에게 의문점이 되고 말았으니 제 자신이 곧 제 번뇌입니다. 제10권 33.50), 왜 슬퍼하는지, 왜 자신을 이토록 심하게 괴롭히는지, 스스로 물엇지만 저의 영혼은 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줄 몰랐습니다.(4-4.9)

3447. 불행한 사람들에게 어째서 울음이 달콤해지는지(세네카가 말하는 ‘아파하는 쾌감voluptas dolendi’나 ‘눈물의 쾌감’을 연상시킨다) 진리이신 당신한테서 들을 수 있겠으며, 제 마음의 귀를 당신 입 가까이 댈 수 있겠습니까?(4-5.10)

3448. 제 속에는 사는 데 대한 지독한 권태도 있고 죽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더라는 말입니다.(‘삶의 권태taedium vitae’와 ‘죽음의 공포mortique metus’, 살기 싫으면서도 죽기는 두려운 감정은 오비디우스가 피력한 전형적인 우수憂愁였다)…누군가 자기 친구를 가리켜 ‘자기 영혼의 반쪽’이라고 한 말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저는 저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두 몸 속에 깃든 한 영혼이라고 느꼈습니다.(‘두 영혼으로 이루어진 한 영혼unus animus ex duobus’,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una anima in duobus corporibus’ – 오비디우스) 그래서 반쪽으로 살기가 싫었고 살아있는 것이 가증스러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죽기 또한 몹시 두려웠으니 그의 반쪽인 저마저 죽으면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혹시나 온 채로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해서였습니다.(4-6.11)

3449. 제가 품고 있던 것은 당신이 아니시고 텅 빈 허상이었으며, 저의 오류가 곧 저의 하느님이었던 까닭입니다. 저의 영혼이 그런 허상 따위에다 짐을 맡기고 안식을 얻고자 노력하였으나, 그 짐은 허공에서 미끄러져 다시 제 위로 굴러떨어지곤 했습니다. 제가 저에게 불행한 터전이 되어버렸으니, 저는 그 터전에 있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저의 마음을 피해 어디로 도망가겠습니까? 제 자신을 피해 제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인간은 도망친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자기와 씨름하는 자신을 안고 간다’는 표현은 교부 선대 문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었다) 어디인들 제가 저를 따라오지 않겠습니까?(4-7.12)

3450. 시간이란 쉬지 않으며 하릴없이 저희 감관을 거쳐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다 기기묘묘한 작업을 해놓습니다. 날에 날을 이어 오고 가고 하였으며, 그렇게 오고 가고 하면서 또 다른 색다른 희망 또 색다른 기억을 제게 심어주었습니다.…저의 영혼을 모래밭에 쏟아버린 탓(부질없이 치정癡情에 몰두함을 형용하여 쓰이던 표현, ‘이런 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모래밭에 다 모래를 쏟고 곡식더미에 알곡을 쏟는 셈이어서 제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다.’ – 오비디우스)이 아니라면 어디서 그 고통이 그토록 쉽게 또 내면 깊숙이 사무쳤겠습니까?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의 위안이 저를 크게 북돋았고 소생시켰습니다.(세네카의 표현 ‘소생하지는 못하더라도 북돋아지기는 하리이다’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입을 거쳐서, 혀를 거쳐서, 눈을 통해서, 그밖에 사랑스러운 천 가지 동작을 통해서 마치 불씨처럼 마음들을 한데 불사르고 그것들을 다수에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4-8.13)

3451. 친구를 사이에서 사랑받는다 함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랑으로 갚는 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되갚지 않는다면 인간 양심이 저절로 마치 죄인처럼 되는 일, 바로 이것이 사랑받는 것입니다. 호감의 표시 외에는 그의 육체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키케로의 ‘우정’에 관한 정의)…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당신을 잃지 않습니다. 또 당신을 저버린다 한들 어디로 도망하겠습니까? 달아난다 한들 너그러우신 당신에게서 달아나 노하신 당신께로 가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4-9.14)

3452. 육체 감관이 지음을 받은 본래 목적에는 그 자체로 충분하지만, 정해진 시점에서 정해진 종점을 향해 내달리는 사물을 붙들고 있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3453. 거기서는 사랑이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사랑이 버림받는 일 없다.…내 영혼아, 적어도 거짓에 속고 속아 지친 영혼아, 네가 지닌 것은 무엇이든지 거기에 맡겨라. 진리로부터 연유해서 네게 있는 온갖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진리에게 맡겨라. 그리하면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 네 썩은 것들이 다시 꽃피어날 것이고, 네 병약함이 모조리 나을 것이며, 네 허약함이 바로잡히고 쇄신되고 너 자신에게도 돌아가 확고해지리라.(‘내가 창조했으니 내가 재창조하리라. 내가 빚었으니 내가 다시 빚으리라.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바로 잡으리라. 네가 스스로 너를 만들지 못했는데 무슨 수로 너를 바로 잡을 수 있겠느냐?’)(4-11.16)

3454. 내 영혼아 무엇 때문에 거꾸로 네 육신을 뒤따라가느냐? 그 육신이 돌이켜 너를 따라와야 한다.(4-11.17)

3455. 하느님 안에서 사랑할 일이요, 너와 함께 영혼들을 힘껏 사로잡아 하느님께 이끌어 가거라.(4-12.18)

3456. 우리더러 당신께 돌아오라고 소리 높이 외치신다. 또 눈앞에서 떠나가셨으나(사도 1,9) 우리더러 마음속으로 돌아가서 당신을 찾아내라 하심이다. 물러가셨으나 보라, 여기 계신다. 우리와 함께 오래 계시려고 하지 않으셨으나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다. 저리로 물러가셨으나 거기서 우리와 헤어지시는 일은 결코 없다.(그리스도의 죽음과 승천을 ‘가버리다cedo’라는 동사의 합성어 ‘떠나가다dis-cessit’ ‘물러가다abs-cessit’ ‘헤어지다re-cessit’로 고조시키고 있다.)(4-12.19)

3457. (‘아름다움과 적합함’이라는 책을 쓰다) 우리를 사로잡아 우리가 사랑하는 사물과 결속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에 ‘맵시’와 ‘고움’(‘아름다움pulchrum’은 그 자체로 고찰되고 예찬되는 것으로 추하고 흉한 것이 그 반대다. ‘적합함aptum’은 그 반대가 부적합이듯이 자체와 연관되지 않고 연관되는 상대와 결부되어 판단된다. ‘맵시’는 ‘전체로 본 어울림quasi totum’을 ‘고움’은 부분이 자기 전체와 갖는 어우러짐pars ad universum suum으로 설명한다)이 없다면 절대로 자기에게로 우리를 잡아끌지 못할 텐데…(4-13.20)

3458. ‘사랑의 중력重力’(pondera amorum ‘인간 실존의 중력은 사랑pondus meum amor meus – 제13권 9.10’이라고 믿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선수나 배우를 좋아하면서도 자기가 그 직업을 갖기는 싫어하는 심리-사랑의 중력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인 경우-가 퍽 신기했다)(4-14.22)

3459. 제가 당신께 배척을 당했고, 당신께서는 허세 부리는 저의 목덜미를 역겨워하셨으며, 저는 여전히 당신을 두고 물체적 형상을 상상해내는 데 그쳤고, 살덩이로 살덩이를 탓하는 데 그치면서 바람처럼 떠돌며 당신께 돌아가지 않았으며(시편 78,39), 허망한 영상들 주변을 서성이며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제 오류의 목소리 때문에 바깥으로만 끌려 나갔고, 제 오만의 무게로 인해서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4-15.26-27)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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