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2)

3420. 오, 추기물醜奇物이여! 오, 괴물같은 삶이여! 죽음의 심연이여!…아, 참으로 원수같은 우정이여! 납득할 수 없는 지성의 기만이여!

3421. 저는 카르타고로 왔고 거기서는 죄스러운 애욕의 냄비가 사방에서 저를 달구고 튀겼습니다. 아직 사랑하지 못하던 터여서 그냥 사랑하기를 사랑할 뿐이었으며(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무엇이 그 자체로 사랑받지 않는다면 진실로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신념이 있었다) 영문 모를 허전함 때문에 아직 덜 허전한 제가 도리어 미워졌습니다. 오로지 사랑하기를 사랑하면서 사랑할 만한 꺼리를 찾아 헤맸고 그러면서도 안전하고, 올가미가 놓이지 않은 길이면 오히려 혐오했습니다. 저의 하느님, 속으로부터 내면의 음식 곧 당신을 찾는 굶주림이 제게 있었건만 그 주림으로 허기지지도 않았습니다.…(‘사랑이란 달콤한 말이어라. 하지만 사랑의 행위는 더 달콤하여라.’) 이렇게 저는 우정의 물줄기를 불결한 욕정으로 오염시켰고 우정의 광휘를 지옥의 흑암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3-1.1)

3422. 극장 연극이 저를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연극은 제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하여 제 정욕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처럼 눈물겹고 비극적인 일을 당하면 질색하면서도 정작 그런 장면을 무대에서 보고 슬퍼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자기 몸소 겪을 때에는 ‘불행’이라 하고 남들과 함께 겪을 적에는 ‘동정同情’이라고 합니다.(3-2.2)

3423. (불륜의 연인들이 누리는 치정癡情에는 ‘삿된 향락permiciosa voluptas’ ‘불행한 행복misera felicitas’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쓸 만하다.)

3424. (자기가 동정할 만한 불쌍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미묘한 심경을 ‘악의적인 호의malivola benevolentia’라고 했다.)

3425. 그즈음 저는 가련하게도 아파하기를 좋아하였고, 제가 아파할 대상을 찾아다녔습니다.(3-2.4)

3426. 심지어 당신의 장엄한 의식이 거행되는 당신의 성전 담벼락 안에서까지 감히 욕정을 부리고 죽음의 열매를 맺는 사업을 했습니다.…당신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려고 목을 길게 뽑고서 당신 길이 아닌 저의 길을 좋아하고 도망꾼의 자유를 사랑했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행하는 인간의 자유를 선善으로부터 ‘도망하는 자유fugitiva libertas’로 명명하고 악한 행위를 자기 ‘성취per-fectio’아닌 자기 ‘결손de-fectio’이라고 규정한다)(3-3.5)

3427. 자기가 눈 먼 것조차 자랑할 만큼 인간들의 맹목은 참으로 심각했습니다.

3428.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릅니다. 저의 하느님, 지상의 것에서 당신께로 다시 날아오르고 싶어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릅니다.…이 이름이야말로, 주님, 당신 자비에 따라 당신 아드님이요 저의 구세주의 이 이름이야말로, 아직 어머니의 젖에서부터 저의 여린 마음이 경건하게 들이킨 이름이요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던 이름이어서…(3-4.8)

3429.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은 성서 이해가 독자의 성숙에 따라서 ‘자구적字句的 의미’에서 ‘유비적類比的 의미’를 거쳐 ‘도덕적道德的 의미’와 ‘신비적神秘的 의미’로 발전한다고 설명하게 된다)

3430. 눈을 통해서 정신을 기만하는 저 가짜들

3431. 저주스러워라, 저주스러워라! 얼마나 숱한 층층대를 밟아 지옥의 밑바닥까지 끌려갔던 것입니까! 그러면서도 진리에 허덕이며 맘 조리고 애태우면서,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제 가장 내밀한 데보다 더 내밀하게 계셨고 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데보다 더 높이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수수께끼(잠언 1,5-6)에 나오는 저는 저 괘씸한 여인과 마주친 듯했습니다. 슬기가 부족하고 주제넘은 여자, 출입문에서 걸상에 앉은 여자, “몰래 빵을 마음껏 먹어라! 훔친 물이 더 다니 마셔라!”고 지껄이는 여자를 만난 셈입니다.(잠언 9,13-17) 그 여자가 저를 호렸습니다. 제가 밖에, 곧 제 육신의 눈에 머물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제가 무엇이든지 눈으로 삼키고서는 그것을 되새김질하고 있음을 알아챈 까닭입니다.(3-6.11)

3432. 악이란 선의 결핍(신플라톤 사상의 도움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얻은 첫 번째 해답이었다) 외에 다른 것이 아니요 결국 악 자체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모르는 채였습니다.(부패corruptio는 사물이 갖고 있는 선善의 감소이므로 최악最惡은 아무런 선도, 아무런 양태樣態modus도 갖지 못한 비존재omnino non est라는 설명에 이른다)(3-7.12)

3433. 그릇된 판단은 마치 갑옷을 신체 각 부분에 어떻게 맞추어 입어야 할지 몰라서 정강이를 싸매는 각반을 투구처럼 머리에 쓰고 투구를 신발처럼 발에 신고서 몸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과 흡사합니다.(3-7.13)

3434. 어떤 부분이든 자기 전체와 부합하지 못하면 추하기 때문입니다.

3435. 악의 죄종罪宗인데 지배하려는 욕망, 눈으로 보는 욕망, 감각적으로 향락하려는 욕망(세 악덕, 즉 육의 욕망, 눈의 욕망과 생의 오만을 순서를 바꾸어 서술, 1요한 2,16 참조)에서 싹튼 것으로 그중 하나거나 혹은 둘, 때로는 셋이 전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합니다.…(십계명을 현악기 십현금에 비유하고 처음 세 가락은 하느님 섬기는 계명, 나머지 일곱은 인간을 사랑하는 계명으로 설명하는 일은 교부들에게 흔한 일이었다.)…인간들이 당신을 거슬러 죄를 지을 적에, 실은 자기 영혼을 망치는 일을 행하는 것이고, 악행은 결국 당신께서 만드시고 질서 지우신 천성을 썩히거나 일그러뜨림으로써 자체를 기만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이 관점은 후일 ‘모든 죄악은 당하는 자보다 행하는 자를 해친다.magis facienti quam patienti obsit omne peccatum.’라는 명제로 정리된다.)(3-8.16)

3436. 더 갖겠다는 탐욕으로, 죄다 잃어버릴 손해를 무릅쓰면서 저희 자신의 것이라는 선을 만유의 선이신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짓(하느님을 멸시하기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

3437. (교부의 글에서 죄악peccata이 flagitia-음욕에서 오는 범행, facinora-폭력적 범행, iniquitates-불의한 범행 등으로 불린다)

3438. 당신께서는 이렇게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시되 오직 한 사람뿐인 양 돌보시며, 저희 모두를 돌보시되 개별적으로 돌보십니다.(‘한 사람 한 사람을 마치 하나뿐이듯이unumquemque nostrum tamquam solum’, 인간 ‘모두를 개별적으로omnes tamquam singulos’ 돌보신다고 아름답게 서술한다.)(3-11.19)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 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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