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덕으로 교만을 이기자(복오伏傲)

‘칠죄종과 네 가지 종말’, 히에로니무스 보스, *이미지-구글

사나운 사자를 복종시키려면

「칠극」의 제1권은 ‘복오(伏傲)’다. 교만을 눌러 항복시킨다는 뜻이다. 1권은 전체 일곱 권 중 분량이 가장 많다. 그만큼 비중이 크다. 글의 서두는 “교만은 사자의 사나움과 같아서, 겸손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로 시작된다. 교만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으로 막을 수 있나? 교만을 복종시킴을 책의 첫 자리에 세운 데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책을 따라가며 읽어 보기로 하자.

모두 열 개 단락으로 갈라 단계를 두어 살폈다. 교만을 극복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육신의 행복이 어떻게 교만을 부추길까?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닌가?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것이 큰 죄의 출발점이다. 거짓 선으로 이름을 낚으려는 생각,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 귀한 것을 좋아하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교만의 덫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처방은 겸손뿐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 겸손으로 지켜야 교만에서 헤어날 수가 있다.

칠죄종 중 어째서 교만을 가장 앞세웠을까? 질투와 탐욕, 성냄과 식탐, 나태와 같은 욕망은 상대가 되는 덕과 일대일로 상대한다. 성냄은 인내로, 질투는 용서와 맞겨루면 된다. 하나가 무너져도 다른 것은 건재하다. 그러나 교만은 그렇지가 않다. 하나가 무너지면 나머지도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와해된다.

집회서 10장 13절의 말씀은 이렇다. “오만의 시작은 죄악이고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뿜어낸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를 받아 말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임금이다.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온갖 죄악이 따라온다. 이와 함께 온갖 덕도 같이 떠나가 버린다.” 겸손이야말로 덕의 뿌리다. 뿌리가 교만으로 말미암아 망가지면 모든 죄악이 한꺼번에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다.

교만을 빚는 행동과 막는 방법

교만은 어떤 행동으로 나타날까? 제게 없는 것을 제 것인 줄 알고 뽐낸다. 남을 우습게 본다. 남 이기기를 좋아하고, 명예를 탐내며, 장난삼아 남을 모욕한다. 죄를 꾸며 선행처럼 속인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높아지기만을 원하므로 모든 사람을 업신여겨 발아래 두려고만 든다. 질투는 남을 빼앗고 분노는 나를 앗아가나 교만은 내 안에서 주님을 빼앗아 간다.

누가 묻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교만한 자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합니까?” 베르나르도 성인이 대답한다. “네가 단계를 밟아 올라가더라도, 떨어질 때는 벽력처럼 빠르게 내려오게 될 것이다. 높이 들어 올린 것은 영예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떨어짐을 무겁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교만이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변한다. 정의와 공정이 사라지고, 남의 선한 행동이 다 미우며, 내가 한 것은 모두 기쁘다.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면서, 저의 공은 과장하여 부풀린다. 교만은 부끄러움을 잊게 만든다. 영예롭게 여기기까지 한다. 그래서 물들기는 쉽고 없애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교만’(Superbia), 대 피터르 브뤼헐, 1558

다른 욕망은 육신을 공격하나 교만은 정신을 공격한다. 다른 욕망은 죽을 때가 되면 그치지만, 교만은 죽은 뒤에도 바뀌지 않는다.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딱 붙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식탐이나 탐욕은 늙으면 쇠해도 교만은 줄지 않고 그대로다.

교만을 어떻게 막을까? 베르나르도 성인은 말한다. “네가 온 곳을 생각해라. 너무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것이다. 지금 있는 곳을 생각해라. 몹시 탄식하며 통곡하고 싶어질 것이다. 앞으로 갈 곳을 생각해라. 심히 두려워 떨게 되리라.” 이 세 가지 생각을 잊지 않는 것이 마음에서 교만을 몰아내는 영약이다.

교만한 사람은 늘 자기가 특별하다고 믿는다. 산꼭대기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마치 까마귀처럼 보인다. 그들은 하찮고 속물이며, 나만은 특별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산 아래 사람들이 멀리 산 위에 앉은 나를 보고 ‘웬 까마귀 한 마리가 산에 있군.’ 하고 말할 줄은 생각지 못한다. 교만의 맹점이다.

안셀모 성인이 말했다. “선행으로 명예를 구함은 새는 술잔을 채우는 것과 같다. 남는 것은 덕을 행한 노고와 덕을 무너뜨린 죄뿐이다.” 그레고리오 성인도 말한다. “교만한 사람은 제게 덕이 없음을 알면서도 남이 칭찬하면 기뻐한다. 뜬 이름 얻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겸손한 사람은 반대로 한다.” 그래서 잠언 27장 21절은 말한다. “은에는 도가니, 금에는 용광로 / 사람은 그가 받는 칭찬으로 가려진다.”

사해(死海) 바닷가의 나무는 열매의 빛깔이 너무 곱다. 그런데 사람들이 따면 손에 닿는 대로 문드러진다. 거짓 선행으로 빈 칭찬을 얻는 것이 이와 같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아무것도 없다. 누가 나를 칭찬하거든 헐뜯는 중임을 알아야 한다. 면전에서 기리는 것은 거울과 같아서 비슷해 보여도 모든 것이 반대로 비친다. 그들은 네게서 구할 것이 있는데 얻지 못하였거나, 너를 속일 수 있는 바보로 여겨 면전에서 칭찬한다. 그래서 너에게 어리석음을 얹어 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을 가져간다. 한번 얻고 나면 그때부터는 교만하다 나무라고 어리석다 비웃는다.

그들은 아첨으로 들어와, 나중에는 그 아첨을 받아 주었다고 비난한다. 벌은 주둥이가 달아도 꼬리에는 독이 있다. 꿀을 취하려다 침에 쏘이고 만다. 그레고리오 성인이 또 말한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자는 많아도 칭찬과 기림을 만나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자는 드물다.”

교만을 극복하는 길

지혜로운 임금 라디슬라오의 덕을 어떤 이가 찬양했다. 그러자 왕이 그의 따귀를 때렸다. “기렸는데 왜 그러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내가 받은 것을 그대로 되갚아준 것이다. 그가 칭찬으로 먼저 나를 때렸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다.”너를 기리는 자가 몇 사람인지 논하지 말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만 따져 보아라.”교만을 극복하는 길이 이렇게 힘들다.

베르나르도 성인이 한 나라의 임금을 훈계하며 말했다. “당신은 지위가 높아 뭇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겠지요. 이와 함께 당신의 몸이 재와 같아 뭇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점도 생각하십시오. 이 두 가지 생각을 합치면 절로 자신이 존귀하다는 것을 잊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부귀를 엿처럼 달게 여긴다. 누구나 이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미 얻고도 욕심은 날로 더 커진다. 마치 소갈증에 걸린 사람이 물을 마시면 잠깐은 갈증이 덜해도 조금 있다가 더 심해지는 것과 같다. 물이 도리어 불쏘시개가 된 셈이 아닌가? 부귀를 좋아하는 사람은 얻지 못했을 때는 얻으려고 마음이 근심스럽고, 얻고 나서는 누가 훔쳐 갈까봐 더 걱정스럽다. 잃은 뒤에는 더 큰 근심에 휩싸인다.

사람은 높은 지위를 영예롭게 여긴다. 하지만 소인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도리어 욕이 될 뿐이다. 높은 지위는 소인을 영예롭게 할 수 없고, 그가 지극한 소인임을 보여 줄 뿐이다. 높은 지위에 있지 않았더라면, 누가 그가 소인임을 알았겠는가?

결국은 다시 겸손이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말한다. “덕을 쌓을 때 겸손으로 하지 않는 것은 가벼운 재를 쥐고서 회오리바람에 맞서는 것과 같다. 붉게 달아오른 화로의 숯도 재로 덮어 주지 않으면 잠깐만에 꺼지고 만다. 가득 찬 덕도 겸손으로 덮어 줘야 오래 간다.”

교만이 산이라면 겸손은 골짜기다. 산은 비와 이슬이 내려도 흘러가 버려 언제나 메말라 퍼석하다. 골짜기는 비와 이슬을 머금어 흘려보내지 않아, 오곡을 길러내는 기름진 밭이 된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덕을 지녔더라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교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교만한 자는 죄가 있어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욕됨을 두려워해서다. 하지만 덕과 죄는 저절로 드러나는지라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덕을 닦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것을 경계할 뿐 아니라, 스스로 알아주는 것을 더욱더 경계한다. 감추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아예 잊어버리는 것을 더 귀하게 친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향해 가자!(정민, 경향잡지, 2023년 3월호, 통권 18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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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복오伏傲-교만을 누름, 교만은 사자의 사나움과 같아 겸손으로 복종시켜야 하므로, <복오>를 짓는다.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

1.16 …네가 온 곳을 생각한다면 너무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워할 만하다. 지금 있는 곳을 생각한다면 몹시 탄식하며 통곡할 만하다. 앞으로 갈 곳을 생각하면 심히 두려워 떨 만하다.… (…爾思所從來, 甚可愧祉. 思今所在, 甚可嘆哭. 思所從徃, 甚可戰慄…)

1.18 …아래쪽을 생각해보자. 아래에는 지옥이 있어 죄가 있으면 벌을 주니 몹시 두려워할 만하다. 마귀가 내 마음에 미혹을 부추겨 내 몸을 해칠 경우, 천주께서 나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나는 이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짐승은 나보다 용감하고, 새는 나보다 민첩하다. 초목만 하더라도 꽃은 혹 볼 만한 구석이 있고, 열매는 먹을 수가 있어 저마다 나에게 쓸모가 있다. 나는 사물에게 쓸모가 없다. 사물은 모두 내가 굳이 필요 없지만, 나는 사물이 필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또 겸손해야 한다. (…想下, 下有地獄, 以罰有罪, 甚可畏. 有鬼魔能煽惑我心, 殘害我身, 非天主祐我, 我不能防之. 獸勇於我, 禽捷於我, 草木或花可視, 實可食, 各有用於我. 我不 能有用於物, 物皆能無用我, 我不能無用物, 我又謙矣.)

위쪽을 생각해보자. 위에는 천사가 있어서 그 성정이 나를 신령케하니, 내가 항상 그 보호에 힘입어 세상의 근심을 피한다. 또 위에는 천주께서 계시니, 사람이 그 권능을 능히 빼앗지 못하고, 그 지혜를 가릴 수 없으며, 그 의로움을 어길 수가 없고, 그 어짊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 누가 이것을 벗어날 수 있으며, 또 그 누가 이보다 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또 겸손해야 한다. (想上, 上有天神, 其性情靈於我, 我恒賴其保護, 以避世患. 又上有天主, 人不能奪其能, 不能晦其智, 不能違其義, 不能稿其仁. 孰得外之, 又孰得强之? 我又 謙矣.)

나란히 마주한 것을 생각해보자. 나와 함께하는 무리는 너무도 많아서 이런저런 셈법이 밀려들고, 근심 걱정이 어지러이 모여든다. 이것과 만나면 반드시 다치게 되고, 도망가려 해도 방법이 없다. 그러니나는 또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이 그 어떤 것에 미치더라도 오히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간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想平等對境者, 我儔類甚多, 計算沓至, 憂患紛集. 遇之必傷, 逃之無術, 我又謙矣. 想及諸種種, 猶不去傲存謙乎? 未想耳.)

1.20 헛되이 빼기는 데는 세 갈래가 있다. 가만히 혼자 좋아하는 것이 첫째다.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것이 둘째다. 그 말을 듣고서 받는 것이 셋째다. 앞의 두 가지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왔고, 나머지 하나는 밖으로부터 왔다. (虛伐有三端. 隱而自喜, 一也. 顯而自譽, 二也. 遇其言受之, 三也. 兩自內出, 一自外來.)

1.59 원숭이는 개처럼 지킬 수도 없고, 말처럼 짐을 질 수도 없으며, 소처럼 밭을 갈 수도 없다. 그저 사람들을 웃고 기쁘게 할 뿐이다. 면전에서 남을 칭찬하는 사람은 실다운 행동이나 유익한 일은 중시하지않고, 빈 칭찬만 바쳐서 사람으로 하여금 웃고 기쁘게 할 뿐이니, 원숭이와 무엇이 다른가? (猴也, 不能守如犬, 負如馬, 耕如牛, 使人笑悅而已, 面譽人者, 不重實行有益之事, 而獻虛譽, 使人笑悅而已, 與猴何異?)

1.83 귀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웃을 만하고, 증오할 만하며, 부끄러워할 만한 구석이 있다. 미약한 공과 힘으로 높은 자리의 고귀함을 구하니, 웃을 만하다. 그것을 요행으로 얻으려 하니, 가증스럽다. 정신을 온통 다 쏟고 지혜를 다 기울이고도 끝내 얻지 못하고 혹 문득 잃기까지 하니, 참으로 부끄러워할 만하다. 높은 데로 올라가는 길은 높은 것을 가볍게 보는 것보다 빠른 것이 없다. (好貴人, 有可笑, 有可憎, 有可愧. 以微功力求尊高, 可笑矣. 其得之爲僥倖, 可憎矣. 若窮神盡智, 而終不得, 或旋失焉, 適可愧矣. 陟高之路, 莫捷於輕高也.)

1.85 …원숭이가 지붕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높아져서 영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의 웃음을 사게 되는 것과 한가지다. (…如猴屋而坐, 非尊榮也, 第令人笑之.)

1.88 …덕을 쌓을 때 겸손으로 하지 않는 것은 가벼운 재를 쥐고서 회오리바람에 맞서는 것과 같다.… (…積德不以謙, 如持浮灰而逆飄風.…)

※ 어제는 수치와 부끄러움. 오늘은 탄식과 통곡. 내일은 두려움. 아래는 끔찍한 소름. 위는 빼앗을 수도, 가릴 수도, 어길 수도, 저버릴 수도, 벗어날 수도 없어 고개를 들 수 없는 아득함. 옆은 어지러운 근심. 혼자 짓는 웃음, 자랑질, 그 대가를 받아 누리는 헛된 뻐김. 짖어 지키지도 못하는 개, 힘이 없어 짐도 지지 못 하는 말, 땀 흘려 밭을 갈지도 못하는 소, 제멋에 미친 지붕 위 원숭이, 가소(可笑) 가증(可憎) 가괴(可愧) 회오리에 맞서는 가벼운 재(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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