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축일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신약 성경에서 열세 번(소제목 포함) 등장하는데, 거의 예수님의 수난이나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된 맥락에서 등장한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여인으로, 그리고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그녀를 묘사한다. 네 복음서에서 그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목들은 ***표 아래와 같다. 요한복음 20장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그녀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특별히 사도들이나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장면까지도 수록한다. “사도 중의 사도”였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1) 감실을 지키는 성체불처럼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을 조용히 지키고 있던 여인 2) 예수님을 사랑하였으나 더 사랑하지 못하여 많이 울었던 여인 3)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는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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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55-56)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마르 16,9)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1-3)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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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접적인 full name으로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외에도 복음의 다른 대목에서 “마리아”라는 이름으로만 등장하는 여인, 또 간음하다 잡힌 여인, 예수님께서 소생시킨 라자로의 누이 중 마리아 등이 과연 마리아 막달레나인지 아닌지는 성경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라고 하는 루카복음의 구절이 그녀가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회개한 창녀’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던 그녀를 “사도들 중의 사도(Apostle of the Apostles)”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나 프란치스코 현 교황님께서도 그녀를 똑같은 표현으로 부르신다. 가톨릭교회는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매우 사랑받는 성녀로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공경하는데, 그녀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들만 보아도 이는 자명하다.
역사와 전설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의 생활에서 회개하여 성녀가 되었다는 내용은 실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데, 이러한 오해는 아마도 중세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이러한 시작을 보여주는 한 예로, 그레고리오 1세 교황님의 591년 부활절 강론을 들 수 있다. 이 강론에서 교황님은 베타니아에 살던 라자로의 누이들인 마리아와 마르타(참조. 루카 10,38-42), 향유와 눈물,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린 죄 많은 여인(참조. 루카 7,36-38),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를 모두 같은 여인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하여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아울러 이름도 알지 못하는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까지도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교회의 문학이나 예술에서 죄인인 여자요 창녀였다는 식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교황님들이나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고, 7월 22일 축일의 전례 복음 역시 요한복음 20장에서 취하면서, 그녀를 부활의 증인으로 이해하려 한다.
역사학자인 케더린 루드빅 얀센Katherine Ludwig Jansen은 그레고리오 교황님의 오해에서 비롯된 강론 내용을 두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거나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크나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되고 만다. 교황님의 강론은 게르만족의 침략이나 역병, 기근 등 로마 제국이 붕괴되고 있었던 당시 역사적 상황에 바탕을 두고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에 “죄인이더라도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되어야만 하는 이들”,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이들이 희망의 아이콘으로 요청되는 시대에서 취해진 강론이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교황님의 강론으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잘못된 대중 인식은 성인 공경을 못 마땅해하는 개신교에 대하여 가톨릭교회가 성녀는 회개한 죄인으로서 충분히 공경을 받을 만하다는 식으로 잘못 강조하면서 굳어진 측면도 있다.
영지주의적(Gnostic)인 주장이나 뉴 에이지(New Age)적인 사고
많은 유사 소설이나 영지주의적인 주장을 담은 소위 ‘문서’들은 정통 복음을 벗어나 예수님이 마리아 막달레나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거나 심지어는 예수님의 부인이었다거나 적어도 연인 사이였던 것처럼 묘사하는 내용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복음서보다도 훨씬 후에 작성되었을 영지주의적인 문건들은 논의할 가치가 없다. 영지주의자들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고, 영지주의 복음이라고 알려지는 소위 ‘필립보가 전하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특별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대목도 예수님을 통하여 영지주의의 교리를 제시하기 위한 맥락에서 사용될 뿐이다. 경솔한 이들이 예수님께도 여성의 동반이 필요했다거나 아내가 있어야만 했다는 식의 생각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성경이 전하는 바에 따를 때, 예수님께서는 독신생활을 하셨으며,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 중 특별한 위치를 지녔었다고 하는 사실만이 분명하다.
프랑스 남부와 마리아 막달레나
중세 시대 프랑스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하여 강한 신심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때부터 많은 전설이 생겨난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그녀를 기린 많은 성당이 봉헌되었고, 13세기에는 프로방스에 그녀의 무덤이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그러나 9세기 이전의 프랑스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많은 전설이 창작일 뿐이다. 중세 시대에는 라자로와 그의 자매들인 마리아와 마르타가 프랑스에 왔었다는 전설도 생겨났지만, 그 마리아는 베타니아의 마리아이지 막달레나의 마리아가 아니다. 3세기 초까지 프랑스 남부에는 그리스도교의 흔적이 없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라자로가 되었든 어떤 마리아가 되었든 그 누구도 그곳에 도착한 적은 없다. 프랑스에서 알려진 성 라자로는 3세기 출신이며 요한복음에 나오는 라자로와도 다르다. 아마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프랑스에 있었다는 전설은 중세 시대의 창작이었을 것이다. 이슬람의 침공에 직면하면서 여러 지역에서는 자기들이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는 내용을 퍼트려 자신을 보호하는 한편 특별한 취급을 받는 지역이고자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곤 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유럽 전역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신심 운동이 세기를 넘어 전승되기도 하였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현대 교회
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회개한 창녀나 죄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세 시대부터 퍼진 이러한 생각들을 대중의 머릿속에서 지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현대에 들어서까지 많은 그리스도교 영화나 심지어 교리 서적에서조차 여전히 그녀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1969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적용하였던 ‘회개한’ 혹은 ‘죄인이었던’이라는 접두어들을 전례력에서 삭제하였고, 전례 복음 역시 그러한 내용이 아닌 부분에서 취하게 되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1988년에 발행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이라는 사목서한집을 통해 그녀를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 곁에 머무르며 사도들보다 강했던 여인 중 하나로 소개하고, 초 세기 교회의 교부들로부터 사용되었던 호칭으로서 비공식 사도이자 “사도들 중의 사도”임을 밝힌다. 2016년 6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신성사성을 통해 교회의 공식적인 로마 전례력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하였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님의 관계를 묘사한 영화를 보고
성녀를 알게되었습니다. 최근에. 전 그분의 용기와 굳은
신념과 믿음에 탄복했답니다.
내일 22일이 그분 축일이군요.
이 더운 날이.
감사합니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예수님을 향한 열정과 믿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에 대한 교회의 역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창녀가 아니었다고요? 음… ” 막달레나를 봐라 . 창녀에게도 희망이 있다.하물며 …. ” 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래도 큰 어려움중에 있는 여인들에게 여전히 성녀의 회심이 좋은 모범 되어 주시기를,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