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사랑을 낳고

어거스트 러쉬

영화는 “들어보세요. 들려요? 음악 말이에요. 저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어요. 바람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빛 속에서도. 음악은 어디서나 항상 우리 주위에 있어요. 마음을 열기만 하면 돼요. 그저 가만히 들어보세요.”라는 속삭임과 함께 너른 밀밭에서 황홀하게 춤을 추는 ‘에반 테일러’(프레디 하이모어Freddie Highmore)로부터 시작한다.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는 커스턴 쉐리단Kirsten Sheridan 감독 작품의 헐리우드 영화로 2007년 11월에 미국에서 개봉한지 1주일 만에 우리나라에도 상영되었고, 22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알려졌으며, 2018년 12월에 우리나라에서 재개봉되기까지 했다. 어거스트라는 에반의 별명은 어린이들을 앵벌이로 부리는 위저드라는 남성(로빈 윌리암스Robin McLaurin Williams)이 지나가는 트럭에 쓰인 ‘August Rush to the Beach’라는 문구를 보고 즉흥적으로 지어주었다. ‘어거스트 러쉬’라는 말은 8월이 되면 많은 사람이 바다로 떼지어(Rush) 놀러 간다는 뜻으로 ‘피서철’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8월의 영화에는 총 40여 곡에 달하는 여러 장르의 주옥같은 음악이 담겼다.(*이미지-netflix)

매력적인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Jonathan Rhys Meyers)와 촉망받는 첼리스트인 ‘라일라’(케리 러셀Keri Russell)는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들고 그날 밤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라일라의 아버지에 의해 둘은 헤어지게 되고, 얼마 후 라일라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아기를 출산하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이를 유산하였다고 거짓말한다. 음악가였던 루이스와 라일라의 아들 ‘어거스트’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특별한 아이로 자란다. 어거스트는 부모만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혼자 뉴욕으로 갔다가, 우연히 낯선 남자 ‘위저드’를 만나면서, 위저드 때문에 길거리에서 자신의 천재적인 연주를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이별 후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했던 라일라는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를 찾겠다는 희망으로 뉴욕에서 다시 첼로 연주를 시작하고, 밴드 가수로서의 삶을 버렸던 루이스 역시 11년 전의 운명적 사랑과 음악에의 열정을 쫓아 뉴욕으로 향한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기타를 바꿔 연주하던 중에 루이스는 에반에게 위저드에게 잡혀 공연에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진정한 음악인은 포기를 안 해.…아무리 나쁜 일이 생겨도 그것을 음악에 담으면 이겨낼 수 있어. 믿음을 가져! 나는 루이스야.” 하고 말한다. 에반이 “나는 어거스트.”라고 답하면서 아빠와 아들은 서로를 모른 채 이름을 교환한다. 지하철 역에서 그날의 수입을 세는 위저드 앞에 용감하게 “나는 가야 해요. 이젠 돌아오지 않아요!”라고 선언하며 친구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 에반은 뉴욕 센트럴 파크의 공연장으로 달려가 ‘음악의 천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는 소개로 마침내 자신의 작곡, 들리는 것들을 따라서 지었던 곡을 지휘하는 공연의 무대에 선다. 자신의 연주를 마치고 쓸쓸히 퇴장하다가 에반의 연주에 돌아서는 라일라, ‘…잊어야 한다지만, 내 가슴 녹여줄 단 한 사람, 머리는 보내라 해도 마음이 허락지 않는 운명…’을 노래하고 공항으로 가던 중에 들리는 야외 공연의 음악 소리와 포스터의 이름들에 이끌려 차에서 내려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루이스, 그렇게 라일라와 루이스가 서로 만나고 부모와 아들이 만나는 장면, 셋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에반이 자기를 찾고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부모 역시 자신들을 찾고 자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재능을 이용하는 위저드, 그로부터 도망하게 해 준 친구, 아이가 지닌 아름다움을 발견해준 쥴리어드 선생님들… 많은 사연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한 아이와 동행하고 동반한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주는 매개는 부모와 에반의 DNA 속에 담긴 음악이다. 음악은 엄마와 아빠를 다시 이어주고 갈라질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되찾게 한다. 영화에는 『음악은 사랑을 만들고, 사랑은 음악을 만든다.』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 『음악은 어디나 가득해요. 그냥 듣기만 하면 돼요. The music is all around us. All you have to do is listen.』라는 명대사들이 담겼다. 『음악은 신과 인간을 하나로 만들어 준다.』라며 위저드도 한마디 거든다.

영화를 관통하는 ‘음악’은 상징이요 비유이며 은유이다. 이때 ‘음악’은 청소년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살레시안과 청소년 안에 내재한 공통 DNA이며, 서로를 이어주는 관계이고, 서로가 발견해야 하는 희망이자 기도이다. 살레시안은 청소년들과 동행하면서 본능적인 혈연의 이끌림으로 서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느님을 들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청소년들과 살레시안 안에 내재한 고유 계획(음악)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살레시안은 청소년들과 함께 서로의 ‘음악’에 귀 기울이는 것을 운명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음악은 입에서 나오는 소음이 아니라 마음의 절규이고,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이며, 내적 환희의 격동이고 육성의 화음이 아닌 의지의 화음이다.(St. 베르나르도 1091~1153년)』 살레시안은 청소년들과 함께 지상의 음악과 천상의 음악을 들으며, 청소년들이 스스로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게 한다.

음악을 방해하지 마세요!

돈 보스코의 교육학은 그 ‘음악’을 강조하며 그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므로 실제의 음악에도 열중한다. ‘음악’이 없는 살레시오회의 집은 상상할 수가 없다. 『1859년 돈 보스코는 성경 구절 하나를 성악 교실 문에 새겨 넣도록 했다.…‘Ne impedias musicam!(음악을 방해하지 마세요!)’ 돈 보스코는…“음악이 없는 오라토리오는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라며 수차례 이 문구를 사용하였다. 그것은 그가 교육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실제로 실천해 왔던 확신을 이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돈 보스코는 「오라토리오 회고록」에…“이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책을 읽고 성가를 부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시초부터 노래와 재미있는 독서가 없으면 우리의 축일 모임이 영혼 없는 육신과 같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교실은 우리가 언제나 가르쳐 왔던 단순한 성가와 성악으로 활기에 넘쳤다.” 음악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돈 보스코의 관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맞물려 있었다. 처음 몇 년 간은 음악을 예방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이 음악 수업에 참석하였다. 젊은이들을 그들이 처한 종교 및 윤리적인 위험에서 끌어내기 위해 성악과 기악을 가르쳤다.” “우리는 주·야간 학교에 피아노와 오르간 반만 아니라 다른 악기 교실을 추가로 개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성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 일반 성가를 가르쳤는데 이는 종교적인 양성을 위한 그의 동기가 반영된 것이었다. 돈 보스코는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할 때 노래로 사목자를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랐고 그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청소년들이 게으름을 이기게 하려는 것이었다.…우리는 음악에 부여한 특별한 ‘교육학적’ 가치를 명심해야 한다. 체리아 신부는 「살레시오 연감」 1권에서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살레시오 음악이 무엇인지 요약하고 있다. “(음악의) 주된 이유는, 돈 보스코의 말처럼, 음악이 젊은이들의 마음과 상상력에 미치는 건전한 효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젊은이들을 정화하고 기상을 드높여 주며 그들을 더 선량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1]

살레시오회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반의 삶 속에 음악 자체가 갖는 교육학적 가치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음에 제시하는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추론할 수 있다. 돈 보스코가 성인들, 청소년들과 함께 이룬 악단을 이끌고 찍은 사진은 마치 판박이처럼 콜롬비아의 선교사 복자 루이지 바리아라(Luigi Variara, 1875~1923년)와 중국의 선교사 성 루이지 베르실리아(Luigi Versigli, 1873~1930년), 중국과 필리핀의 선교사 주님의 종 카를로 브라가(Carlo Braga, 1889~1971년)를 넘어 우리가 잘 아는 수단의 선교사 이태석 신부(1962~2010년)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살레시오 회원들이 열성을 다해 악단을 만들고자 했고, 돈 보스코처럼 사진까지 찍고자 했다는 사실은 살레시오회의 전통 안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이어질 ‘음악’의 기능과 역할, 가능성과 활용에 관해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한다.

돈 보스코와 악대

루이지 바리아라-사진 우측

카를로 브라가-사진 앞줄 중앙

루이지 베르실리아

이태석 신부와 수단의 악대

이태석 신부 선종 얼마 전 마지막 후원자들의 모임
        (* 사진들의 검색과 수집을 위해서는 신태흥 라우렌시오 형제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음악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또 다른 언어

살레시오회를 넘어 ‘음악’이 없는 교회 역시 생각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래와 음악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언어, 교회나 신앙에서 멀어진 이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닿는 언어이다.…타인을 향해서,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작은 이들을 위한 복음’을 그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공동체와 가족 안에서 타인들을 환대하는 것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 그들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음악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들을 전염시키고 끌어당기는 능력이다.…‘노래는 마음의 일치로 인도하는 언어’이고, (우리는) 성가대에서 기쁨과 다성음악(poliphony)의 매력을 체험한다. (우리 모두) ‘다성음악적’ 존재가 되기를…』[2]라며 깊은 묵상을 전해준다. 음악은 신앙과 묵상의 표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중 한 분 역시 영혼의 언어이고 힘인 『음악은…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고귀한 감수성의 현현顯現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 신비를 예배하는 영혼이 다른 영혼들과 하나 되게 하는 수단입니다.』[3]라는 말씀을 주신다.

이사야서는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땅끝에서부터 그분께 찬양을 드려라. 바다와 그를 채운 것들, 섬들과 그 주민들은 소리를 높여라.…나는 오랫동안 조용히 입을 다물고 참아 왔다. 이제 나는 해산하는 여인처럼 부르짖으리라. 헐떡이며 숨을 내쉬리라.””(이사 42,10.14)라고 기록한다. 온 세계는 해를 거듭하면서 코비드 충격으로 숨조차 마음 놓고 쉬기 어려운 무거운 분위기 안에서 찬양을 멈추었고, 노래와 음악을 잃고 침묵에 빠졌으며, 숨을 내쉬기 위해 헐떡이고 있다. 이러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침묵이 그저 공허한 침묵으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듣는 경청의 침묵으로 남을 것인지, 듣고 있다면 무엇을 듣고 있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잘 들으면 좋은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우리는 침묵과 소리의 교차 속에서, 멈춤과 표출 속에서, 말씀과 소리 속에서, 텍스트(The Text=성경, 말씀)와 콘텍스트 속에서, 양심과 지성을 자극하고 보편적인 형제애로 이끄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담은 새로운 음악이 터져 나오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다시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추고 싶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년)는 자신의 작품 「돈키호테」에서 『음악이 있는 곳에 나쁜 것이 있을 수 없다.Where there is music, there can be nothing bad.(제2권, 34장)』라고 말한다. 거리를 둔답시고 멀어진 마음들을 다시 모아야 한다. 『마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목소리들의 일치로 더욱 심오하게 이루어진다.』[4] 목소리들과 악기들이, 노래와 음악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교향곡’으로 인도하는 현재의 콘텍스트 안에서 계속 이루어지기를![5] (* 이 글은 원래 지금은 고인이 되신 뉴욕의 백운택 신부님께서 주관하신 <선교지 청소년들에게 악기 보내기 운동>을 위해 썼던 글인데, 2021년 9월 <살레시오가족>에도 게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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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에트로 브라이도,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 491-492쪽(매끄러운 서술을 위해 다소 첨삭하였음 [2] 교황 프란치스코, ‘알룬니 델 첼로Alumni del Cielo’ 멤버들에게 하신 연설, 2018년 11월 10일 [3] 성 요한 바오로 2세, 1992년 4월 4일 [4] 거룩한 악기들에 관한 가르침Instruction Musicam sacram, 제5항 [5] 이 문단의 서술을 위해서는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2021년 2월 4일부터 5일까지 교황청 문화위원회 주관으로 ‘교회와 음악 : 텍스트와 콘텍스트’라는 주제로 열린 제4차 국제 음악 모임에서 행한 비디오 메시지를 참조하였다

One thought on “음악은 사랑을 낳고

  1. 북아현동에 있었던 중앙여중에서는 수련회가 있어, 초빙된 인사분들의 좋은 말씀을 듣는 시간이 넓은 실내 학교 강당에서 전통처럼 지켜졌었다. 사오십 년 전, 지금의 TED Ed라고 말할 수 있었던, 정말 그 당시 인성교육을 중요시하고 참 교육을 중요시한 앞선 교육의 현장으로 기억한다. 3년의 중학교 시간에 초빙된 다양한 인사들의 눈 맞춤 강연을 들었다. 처음 1학년 여중생이었던 나는 살레시오 수련관에서의 기억도 뚜렷하다. 촛불, 음악 그리고 기타 든 삼촌의 진행에 한순간 모든 여학생들을 눈물 바다로 만들고, 마음을 열게 하고, 또 웃음 바다를 만들며, 새로운 마음가짐에 활기를 불어준 기억들이 있다. 살레시오+음악+청소년,마음을 열고 깊은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 선물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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