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시민과 착한 신자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1776년 7월 4일 영국령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의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2차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56명이 서명하면서 시작된 독립기념일이다. 그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니,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라고 시작하는데, 거의 모든 미국인은 이를 암송하고, 이는 미국 시민권 심사에서 단골로 제시되는 시험 문항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이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내며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안부를 서로 나누며 시가행진을 하고 야외 바비큐 파티를 하며 가족 나들이를 하고 불꽃놀이를 하며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하거나 각종 연주회나 기념 공연이 열리고 정당별 모임에서 국가를 위한 나름의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가족 외식을 하는 등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날을 즐기고 기념한다.

초자본주의 국가이면서도 그리스도교적 바탕으로 시작된 미국은 전 국민의 60% 이상이 그리스도교인이면서 온 세상에 미국 시민임을 자랑스러워한다. 대단히 많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안고 있는 국가이면서도 주류를 이루는 국민은 건전한 사회의 시민이기를 지향하고 착실한 그리스도교인이고자 한다.

그처럼 ‘건전한 시민, 착한 신자’를 표방한 가톨릭교회의 성인이 있다. 바로 돈 보스코이다. 돈 보스코는 1800년대 이탈리아의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근대 사회의 초입에 등장하여 도시로 몰려들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 청소년을 만나면서 이를 자신의 소명으로 삼아 평생을 바쳤고, 청소년의 친구이자 아버지, 스승으로 살면서 ‘건전한 시민, 착한 신자Honest Citizens and Good Christians’를 자신이 살았던 교육적 삶의 표어로 삼았다.

이를 위해 돈 보스코가 제시했던 교육적 삶을 5가지의 열쇳말로 정리하면;

1. ‘정직한 시민, 착한 신자’ 되기 –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의 들판과 운동장의 놀이로부터 당시 오라토리오라 부르는 거대한 기숙학교와 같은 시스템을 통하여 지상 시민이자 천상 시민으로서 기초 교양 학습과 지적 계발, 생업이 될 수 있는 기술 연마, 스포츠와 놀이, 예술적 자기 표출과 감성 교육, 종교를 통한 초월적 가치 등을 두루 도모하고자 했다.

2. 자존감과 타인을 향한 신뢰 구축 – 성공적인 교육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믿을 만하고 훌륭한 인격적 존재가 될 것인가를 향해 나아간다. 실패가 오더라도 이를 극복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자 하는 교육은 결국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신뢰로 요약된다. 돈 보스코는 “사랑과 믿음이 없이는 신뢰가 생기지 않고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3.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하십시오.” – 돈 보스코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게끔 사랑하라 한다. 이는 결국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4. 재미와 놀이를 소홀히 하지 말기 – 놀이와 게임은 현실 감각, 규칙 준수의 태도 형성, 사회화의 과정이다. 돈 보스코는 이를 위해 “안전하게 맘껏 뛰고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합니다. 체육관이나 운동장, 연주와 합창, 연극, 야외 나들이 등은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도구들입니다.”라고 말한다.

5. 은총에 대한 가르침은 필수 – 타인, 특별히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은총 안에 살고 있음을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영원성이 빠진 현실적인 가치 추구는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그리고 이기주의로 남고 만다. 좋은 교육과 교육의 아름다운 모델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요 열매이다.

***

시민’, 혹은 ‘시민 정신’은 민주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이 살아내야 하는 소속감과 신분을 뜻한다. 이는 각자가 지닌 차이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다.

선량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하고 건강한 시민이 된다는 것은?

1.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께서 개인적이고도 상대적인 관계들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더불어 살도록 하셨음을 믿는다. 우주의 마음 안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는 이 사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성부·성자·성령 삼위로서 온전한 상호 의존으로 하나이신 분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이다. 이는 성경의 첫 대목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하고 묻는 하느님 앞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10)라고 대답하는 카인의 불만 섞인 토로에서부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9;22,39 마르 12,31 루카 10,27)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의 중심을 이루면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류 공동체를 구성하려고 하는 열망은 그리스도교에서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기본 DNA이다.

2. 그리스도교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신성불가침의 존엄성을 가졌다고 하는 믿음을 지킨다. 이는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하며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지어주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인권과 그에 따른 책임, 건강한 시민 정신의 뿌리 역시 이러한 내용에서부터 나온다. 그러한 인간의 기본권을 위한 자녀의 양육과 보호,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사회의 기초 구성단위인 가족을 위해서도 필수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3. 그리스도교는 서로 바르고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칫 잘못하면 배타성과 편협한 민족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고 있다.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탈출 22,20;23,9 등)라는 구약의 소극적 의미의 이방인 ‘환대’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 종교와 문화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평화와 일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범세계적인 적극적 신약의 교회관으로 발전하였다. 그리스도교의 건전한 시민은 보편적인 인류애를 지향하고 포용한다.

4. 그리스도교의 성경 신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시민 정신은 “샬롬”이라는 개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흔히 ‘평화’로 번역되는 ‘샬롬’이라는 히브리 말은 개인적·공동체적·사회적 치유, 통합, 전체성, 원만하고도 조화로운 관계를 모두 담고 있다. 그런 의미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만난 제자들에게 첫마디로 “살롬!(=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26)이라고 거듭 말씀 하셨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죄와 악이 이 “샬롬”을 위협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악과 죄의 형태는 사회 안에서 종종 소비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욕망으로 나타나고, 사회 전반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구원과 조화의 복을 위하여 사회에서 가난한 이, 소외된 이, 난민과 이방인 등 사회 구성원 중 가장 취약한 계층에 있는 이들에 관한 관심을 지속한다. 진정한 시민 정신은 이러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5. 끝으로, 시민 정신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추구는 종말론적인 차원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빛과 소금”(참조. 마태 5,13-16), 그리고 “누룩”(마태 13,33)으로서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람직하게 구성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반드시 오리라는 희망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든 이의 정의와 평화, 그리고 공동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회의 역할에 기여한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신들을 낮추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회복시켜 주겠다.”(2역대 7,14)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착한 신자와 정직한 시민은 아름다운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기도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