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사(Ἀναστᾶσα)

루카 1,39은 마리아는 (일어나서)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ναστσα δὲ Μαριὰμ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αύταις ἐπορεύθη εἰς τὴν ὀρεινὴν μετσπουδς εἰς πόλιν Ἰούδα,)”이다. 여기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리아는 … 갔다’라는 사실을 묘사하면서 ‘아나스타사(Ἀναστᾶσα)’라는 말을 문장 서두에 놓는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일어나다, 일어서다(자동사)’ 혹은 ‘일으키다, 세우다(타동사)’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같은 동사가 신약에서 ‘부활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영성적 묵상 안에서는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는 말이다.

루카 1,39에 보이는 Ἀναστᾶσα라는 말은 시간적 부사 분사로서 문장 마지막의 ‘갔다’에 선행하는 마리아의 동작을 보충한다. 새겨보자면, 마리아가 가긴 갔는데, ‘지체하지 않고 일어나 행동으로 옮겨서’ ‘갔다’라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서둘러”와 함께 자의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에 옮겨 이동한 것을 뜻하는 마리아의 태도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성경 번역 구절에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을 담아 “마리아는 (일어나서)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라고 ‘일어나서’를 추가하여 번역해도 의미상 큰 무리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루카 1,39;4,29.38;5,28;6,8;8,54;10,25;15,18.20;17,19;22,45;24,12.33에서도 Ἀναστᾶσα라는 말의 용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안토니오 벨로(1935~1993년) 주교는 이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에 덧붙여 깊은 묵상과 함께 성모님께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기도문을 남긴다. 많은 성인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영혼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간직하였으며, 영적 상상력을 풍성하게 발휘한다. 벨로 주교의 기도문 중 성모님께서 숨진 유다를 찾아가 안쓰러운 마음으로 안아주셨을 것이라는 대목에서도 주교님의 아름다운 영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

「첫걸음의 여인이요 희망 속에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는 온유한 사신使臣이신 성모님, 다시 한번 서둘러 ‘일어나’ 저희를 도와주소서. 저희에게는 당신이 필요하오니 애원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소서. 자비를 구하는 저희 외침을 들어주시고 저희가 시작하는 모든 일을 이끌어주소서.

죄에 넘어져 삶이 온통 마비될 때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도움을 청하기 전에 와주소서. 빨리 오시어 잘못을 저지른 저희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소서. 제때에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진흙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저희 마음에 회개의 샘을 열어주지 않으시면 하느님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성모님, 당신은 이 세상에 사실 때 항상 먼저 용서하심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이웃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당신이 먼저 ‘일어나’ 문을 두드려 걱정거리를 들어주고 감싸주며 마음을 써 주셨습니다. 아들 예수가 배반당한 날 밤에도 깊은 애정으로 ‘일어나’ 쓰디쓴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를 망토로 감싸주었습니다. 유다가 배반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일어나’ 찾아가 용서하며 희망을 주시고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린 후 당신은 유다를 찾아가 나무에서 끌어 내려 시신을 평온히 감싸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비오니 저희가 용서해야 할 때 먼저 다가설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당신처럼 첫걸음을 내딛는 전문가가 되게 하소서. 오늘 저희가 누릴 수 있는 평화를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시고 우유부단하지 않게 하소서. 다른 이가 먼저 행동하기를 바라는 좁은 마음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이번엔 네가 움직일 차례야!’라고 비웃으면서 상대방을 빨갛게 타오르는 장작더미에 올려놓는 일이 없게 하소서.

먼저 움직이는 데 익숙한 여인이신 성모님, 심판 때에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 주소서. 저희가 언젠가 그분 앞에 서게 될 때 당신이 먼저 말씀해주소서. 영화로운 옥좌에서 다시 한번 ‘일어나’ 저희를 맞으러 오소서.

저희 손을 잡고 당신 망토로 감싸주소서. 당신 눈에 자비의 등불을 켜시어 하느님의 자애로운 판결로 용서받게 하소서. 하느님의 가장 큰 행복은 당신의 결정을 승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안토니오 벨로, 성모님과 함께 하는 31일 기도, 최경선 옮김, 바오로딸, 2024년 4쇄, 5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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