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있지 않으나 262년에 교회가 확인한 삼위일체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바로 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핵심적인 신비이다. 이는 하느님 자신의 내적 신비이므로, 다른 모든 신앙의 신비의 원천이며, 다른 신비를 비추는 빛이다. 이는 “신앙 진리들의 서열”(성직자성, 「교리 교육 일반 지침」, 43: AAS 64(1972), 123면.)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교리이다. “구원의 역사[救世史]는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이신 참되고 유일한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고, 죄에서 돌아서는 인간들과 화해하시고 그들을 당신과 결합시키시려는 길과 방법의 역사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이 아니다.”(성직자성, 「교리 교육 일반 지침」, 47: AAS 64(1972), 125면.)[가톨릭교회교리서 234항]』 *그림은 안드레이 류블레프Andrei Rublev(1360/70~1427/30년)가 창세기 18장을 주제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제외하고 <삼위일체Trinity>를 묘사하려 했다고 알려지는 1425년 추정 작품, 모스크바 Tretyakov 갤러리 소장, 구글 이미지 검색

‘삼위일체’는 ‘하느님 자신의 내적 신비’이니 그저 신비를 신비로 남게 해야 할까?

마태오 복음은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라는 임마누엘 예언으로 첫 장을 시작하고,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영원히, 시간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ㄴ)라는 내용으로 1장의 예언이 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아들”이 곧 “하느님”이심을 밝히면서 복음을 마감한다.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을 약속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ㄱ)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이 곧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계시하신다. 이에 따라 가톨릭 신자들은 매일 십자 표시를 통해 이를 고백하고 그분의 “명령”을 되새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6-17)에서와 같이 성경에서는 여러 곳에서 삼위이신 하느님의 모습이 구별되어 묘사되지만(참조. 요한 16,13.15 1코린 12,4-6 에페 1,3-5.7.13-14;4,4-6 1베드 1,2 유다서 20-21), ‘삼위일체’라는 말마디 자체는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는 교황 디오니시우스Dionysius(259~268년 재위)에 의해 분명하게 기록되고 선포되었다. 그는 서기 262년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한 분 안에 각기 다른 3위의 권능으로 하느님께서 존재하심을 선포하느니…(몇몇 이단은) 하나이신 하느님을 서로 다른 실체로 나누어 분리하면서 마치 하느님이 셋인 양 선포하므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니체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를 통하여 확정된 교의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어렵사리 이단과 싸워 보존한 거룩한 교회의 전통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이는 하느님께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는 우리가 문자적으로 성경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교회의 무류성無謬性을 드러나게 해 주는 뛰어난 예가 된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한 권의 책만이 아니라 교회를 남겨주셨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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