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Jane Goodall)

<다큐멘터리 ‘제인 구달의 희망’>을 보고 *글 – 김연기(라파엘라, 방송 작가, 문화 기획자, 성가 가수,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와 TV에서 여러 문화선교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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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성가대에서 지휘할 때마다 성가대원들을 ‘알람 기도’에 초대한다. 알람을 맞춰 놓고 매일 같은 시간에 기도하는데, 대체로 새로운 대원을 보내 달라는 청원 기도가 많다. 기도를 듬성듬성 빼먹다가도 갑자기 모두 의욕이 솟을 때가 있다. 기도의 응답처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다.

생태계를 공유하는 동물과 인간

동물행동학 박사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는 침팬지가 연한 나뭇가지를 구멍에 집어넣어서 거기 붙어 나오는 흰개미를 잡아먹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사람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당시의 통설을 완전히 뒤엎었다. 동물행동학 역사에 굵직한 성과를 여럿 남긴 제인 구달은 이런 명성을 즐기지 않고 지금도 탄자니아 곰베(Gombe) 숲에서 침팬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세상은 그를 영향력 있는 환경운동가, 사회운동가라고 부른다. 그는 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을까?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이 서식지를 잃고, 밀렵꾼들의 총에 맞고, 새끼 침팬지들이 각종 연구 시설과 애완동물 중개인에게 팔려 가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과 숲을 보전할 방법을 의논했다. 흔히 환경을 위해서는 인간이 무조건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접근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공감을 얻어 내기 힘들다.

제인 구달은 오히려 주민들의 필요에 먼저 귀 기울였다. 그들은 교육, 식수, 보건 문제를 토로했고, 제인 구달은 이걸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사람만이 아니라 숲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침팬지를 보호하려고 사람들을 무조건 밀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이 환경을 보호할 때 자신들의 삶도 좋아진다고 느껴 더 적극적으로 환경보호에 참여하고, 그 결과로 숲이 되살아나면 동물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사람들은 제인 구달이 침팬지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침팬지와 생태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자 그를 받아들였고 선순환이 시작됐다. 그의 이름을 딴 ‘제인 구달 연구소’는 이렇게 처음에는 침팬지 보호를 위해 일하다 차츰 서식지 보호 운동을 하게 됐고, 그러다 곧 전 지구적인 인류의 복지 문제로 활동 분야를 넓혔다.

대립하기보다 마음으로 공감하자

제인 구달의 환경운동에는 남다른 면이 있다. 그는 평소 사냥을 즐긴다는 정치가나 숲이 사라지는 데에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는 석유 회사와 협력한다. 심지어 동물실험을 해 온 과학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차를 마신다. 몇몇 동물보호 단체에서는 동물을 괴롭히는 이들과 교류한다고 제인 구달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차분히 대답한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겠어요?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말다툼은 소용없고 마음이 닿아야 합니다.”

제인은 동물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잔인한 괴물이라고 비난하는 대신 곰베에서 자유롭게 사는 침팬지의 삶을 보여 주고, 침팬지를 우리에 가두는 것이 사람을 가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며 울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마음에는 생각의 싹이 하나씩 심겼다. ‘정말 이게 필요한가? 다른 대안은 없나?’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실제로 많은 실험용 침팬지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석유 회사는 콩고에 침팬지 보호구역을 만들었다.

흔히 악당이라고 생각될 만한 사람이라도 대화로 변화를 이끌어 선한 일을 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 대화는 모든 사람이 내면에 하느님을 닮은 선을 품고 있고 그걸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할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멀리 볼 수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무려 40년이나 광야를 걷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신명 1,37)이라고 선언하신 대로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죽는다. 그는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억울하고 참담했을까? 아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우직하게 걸어온 ‘주님의 종’이라면 분명 ‘나는 주님을 충실히 따랐고 내 자손들은 저곳에서 하느님 은총을 듬뿍 느끼며 평온하게 살아가겠지.’ 하고 안도했을 것이다.

제인 구달이 젊은이들을 보는 눈빛에서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는 1991년 탄자니아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뿌리와 새싹 운동’을 시작했다. 많은 젊은이가 이전 세대가 자연에 끼친 해악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절망하자 제인이 말한다.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뿌리와 새싹’에선 모든 사람이 중요하고 모든 동물도 중요하죠.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지구에 영향을 미치며 그 변화를 선택할 수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제인에게서 받는 영감, 바로 ‘희망’이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자연을 아끼고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하자 제인 구달은 더 큰 희망을 느낀다.

내가 성가대와 함께 알람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는 것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 1,440분 가운데 단 1분을 쓰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나? 이런 마음으로 성가대원 열 명이 기도를 바치면 10분이 되고, 그 기도가 일 년이 모이면 3,650분이 된다. 처음엔 응답 없는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응답이 즉각적으로 있든 없든 우리는 지치지 않고 기도한다. 이 기도가 우리를 하느님과 계속해서 이어 준다는 희망을 보았으니까.

자연도, 성가대도, 내 삶도,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들이 모여 언젠가 좋은 것으로 열매 맺으리라 믿으며 제인 구달의 모토를 소리 내어 외쳐본다.

“Together we can, Together we will!”(우리는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할 것이다!)

※ 다큐멘터리 ‘제인 구달의 희망’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특별히 교육의 대안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글이어서 옮겨온 글임-출처.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경향잡지, 2023년 6월호, 제115권 제6호, 통권 1863호, 110-113쪽, 이미지-영문과 한글 구글, 제인 구달의 저서 <Reason for Hope희망의 이유> 오리지널 표지와 한국말 번역본 표지)

One thought on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Jane Goodall)

  1. 요 며칠 전 “고통 중에 우리는 차마 내가 전에 알지 못한 것을 알 수 있게 깨우치게 된다” 묵상과 함께 회개기도 시간을 감사하게도 갖게 되었다. 오늘은 “희망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게한다”는 연이은 묵상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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