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어디서·누구에게나 돈 보스코-반려동물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돈 보스코

​돈 보스코에게는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신비스럽게도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던 큰 개가 한 마리 있었다. 돈 보스코는 마지막 장을 이 개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 자신의 회상록을 마감한다. 개의 이름은 이탈리어나 영어의 grey(회색)를 연상하게 하는 ‘그리죠Grigio’ 였다. 이 개는 돈 보스코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에 나타났고, 돈 보스코를 아는 많은 이들은 이 개가 돈 보스코를 지켜주기 위해서 변장하여 나타난 돈 보스코의 수호천사라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도 5천만 전 국민의 적어도 5분의 1인 1천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참조.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548078)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그 가치를 조명하거나 정치적이거나 다른 이용 가치나 사용 가치만을 따지는 이들은 반려동물의 가치를 그렇게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반려동물은 외로운 인간의 삶을 동반하고 지켜주며 서로 도와주고 의지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동물들이다. 성인의 전언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도록 <돈 보스코의 회상> 우리말 번역(E. 체리아 엮음, 돈 보스코 미디어, 1998년, 초판) 전문을 옮겨 싣는다.

​『그리죠 : 그리죠라는 개(*각주. 신비스러운 동물은 털 색깔이 회색이라 ‘그리죠’라고 불렸으며 그 이름은 역사에 남아있다. 학생 때부터 오라토리오에 다니면서 그리죠를 보았던 미술 선생 카를로 토마티스는 레뮈엔 신부에게 그 개를 이렇게 묘사했다. “모양이 정말 무시무시했어요. 맘마 말가리타께서는 그 개를 볼 때마다 ‘오! 흉칙한 짐승’이라고 부르짖곤 하셨지요. 얼굴은 거의 늑대 같고 입, 코부분은 길쭉하고, 귀는 똑바로 섰으며 털 색깔은 회색이고 높이는 1m였어요.”)는 많은 논의와 추측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분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개를 보았고 쓰다듬어 주기까지(*각주. 돈 보스코는 이 마지막 장을 1875년 이후에 썼다. 그리죠를 보고 쓰다듬어 주었던 오라토리오의 몇몇 소년들은 미켈레 루아와 주세페 부제티처럼 살레시오 회원이 되었다) 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이 개에 대해서 떠도는 여러 이상한 말들을 흘려 버리고 진실만을 열거해 보기로 하겠다. 자주 일어나는 나쁜 사건들 때문에 나는 혼자서 토리노 시를 오가지 않기로 했다. 그 당시에 오라토리오 쪽으로 나 있는 건물 중에서 제일 마지막 건물은 정신 병원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잡목과 아카시아로 덮인 들판이었다.(*그림출처-aleteia.org)

어느 어두운 저녁, 좀 늦은 시각에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큰 개가 옆에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개는 나를 향해 으르렁거리지도 않았고 마치 내가 자기 주인이나 되는 양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개는 오라토리오까지 나를 따라왔다. 그날 일어난 일이 그 후에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리죠는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중 몇 가지 사실을 이야기해 보겠다.

1854년 11월 말, 안개가 자욱이 끼고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저녁에 나는 시내에서 혼자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인적이 없는 길을 피하기 위해 콘솔라타 성당에서 코톨렌고를 향해 뻗은 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이 나를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걸음을 빨리 하면 그들도 걸음을 빨리 했고 내가 걸음을 늦추면 그들도 걸음을 늦추었다. 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들은 잽싸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뒤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내게로 성큼 달려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겉옷으로 내 얼굴을 뒤집어씌웠다. 나는 말려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헛수고였다. 한 사나이는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를 치려고 했지만 더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리죠가 나타나 곰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두 발로 한 사나이의 얼굴을 덮쳤고 입으로는 다른 사나이를 물고 늘어졌다. 이제 그들은 나보다 먼저 개를 생각해야 했다. “이 개를 불러 주시오.” 그들은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나를 가만히 가게 내버려 둔다면 개를 부르겠소.” “당장 불러 주시오.” 그들은 애원했다. 그리죠는 성난 늑대나 곰처럼 계속 으르렁거렸고 그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 그리죠는 내 곁에 붙어서 코톨렌고 병원까지 따라왔다. 놀란 나는 병원으로 들어가 코톨렌고 수도자들이 친절하게 대접해 주는 음료수로 기운을 차린 뒤 든든하게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혼자서 건물을 지나 나무 사이로 들어가는 저녁이면 언제나 그리죠가 길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오라토리오의 젊은이들은 여러 번이나 그 개를 보았다. 어느 날 개는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큰 구경거리였다. 어떤 아이는 막대기로 개를 때리려 했고 어떤 아이는 돌을 던지려고 했다. 그러자 주세페 부제티가 말렸다. “돈 보스코의 개를 못살게 굴지 마.” 그러자 그들은 개를 쓰다듬고 환영하면서 내게로 데리고 왔다. 나는 식당에서 몇몇 사제, 신학생들과 나의 어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 모두가 기겁했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나의 그리죠입니다. 그냥 오게 내버려 두십시오.” 그리죠는 식탁 둘레를 한 바퀴 크게 돌고 나서 기쁘게 내게로 다가왔다. 나도 개를 쓰다듬어 주면서 수프와 빵과 반찬을 주었지만 개는 모든 것을 사양했고 냄새조차 맡으려 들지 않았다. “그럼 뭘 원하지?” 나는 덧붙였다. 개는 귀를 쫑긋거리고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먹지 않으려거든 그럼, 가만히 있거라.” 나는 말했다. 개는 계속 기쁜 낯으로 무슨 말이나 저녁 인사(*각주. 토리노의 노사제 필립보 두란도는 1920년 살레시오 선교 신부인 알리베르티 신부에게, 돈 보스코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리죠가 또다시 나타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돈 보스코의 전기 제18권 869면에 실려 있다)를 하려는 양, 내 식탁보 위에 머리를 기댔다. 소년들은 감탄하고 즐거워하면서 개를 문밖으로 배웅해 주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친구가 데려다 주는 마차를 타고 늦게 집에 돌아왔다고 기억한다.

내가 그리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이 글을 쓸 때를 기준으로 해서 말이다. 신비스러운 개는 1883년 어두운 밤에 벤티밀리아에서 발레크로시아로 돌아올 때 다시 나타났다.-돈 보스코의 전기 제18권 8. 그는 그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여러 번 했다. *각주) 1866년, 모리알도에서 몬쿠코에 있는 내 친구 루이지 몰리아의 집으로 갈 때였다. 부틸리에라의 본당 주임은 나를 얼마간 배웅해 주었다. 길을 반쯤 갔을 때 밤이 되었다. ‘만일 여기 나의 그리죠가 있다면 아주 많이 안심하겠는데…….’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나는 마지막 빛줄기를 의지 삼아 가파른 풀밭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그리죠가 아주 기쁜 모습으로 나타나 남은 길, 즉 3㎞를 동반해 주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몰리아의 집에 이르자, 그들은 내 개를 보고는 집 뒤로 오라고 했다. 그리죠가 마당에 있는 두 개들과 맞붙어 싸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갈갈이 물어뜯을 겁니다.” 루이지 몰리아는 내게 말했다. 나는 온 가족과 오래 이야기를 나눈 뒤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고, 나의 그리죠는 방 한구석에 쉬게 놔두었다. 식사가 끝나자 루이지는 말했다. “그리죠에게도 저녁을 주어야겠어요.” 우리는 음식을 얼마간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다 찾아보았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놀랐다. 문도 창문도 닫혀 있었고 마당에 있는 개들도 그리죠가 나갔다는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층에 있는 방들도 둘러보았지만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많은 탐색과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죠라는 개와의 마지막 만남이다. 나는 한 번도 그 개의 주인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 동물이 내가 큰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정말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 회고록은 여기서 끝난다-편집자 주)』

* 맘마 말가리타께서 그리죠를 두고 “오, 흉측한 짐승!”이라고 하셨다는 위의 번역을 테레시오 보스코의 돈 보스코 전기(돈 보스코 미디어, 2014년 407쪽) 번역에서는 “아이고 흉측도 해라.”라고 하셨다는 말로 바꾸는데, 원래의 la brutta bestiaccia라는 이탈리아 말을 옮긴 것이다. 일부에서 맘마 말가리타께서 동물을 혐오하는 표현을 사용하셨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아휴, 못생긴 녀석!’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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