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낳으라는 소명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탄생하신 것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은 거듭 태어나셔야만 한다.

예수님을 낳는다(giving birth to Jesus)’라고 하는 이 개념은 교회의 초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 이레네우스St. Irenaeus는 인간이 “운반”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인간이 자신 안에 말씀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성 히폴리투스St. Hippolytus는 로고스께서 성인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태어나고자 하시며, 그에 따라 성인들이 그분을 낳을 수 있도록 허용하신다고 설명한다. 히폴리투스는 이 과정에서 교회가 중심적인 임무를 수행한다고 강조한다. 즉 교회는 세상 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태어나시도록 노력하고, 교회는 각 구성원이 그렇게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사하게 성 메토디우스는 교회가 “아이와 함께” 있으며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을 출산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는 이 개념을 위한 성경의 주요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는 마태 12,46-50의 해설(참고. 설교 25,7-8)에서 예수님의 출산을 논한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은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셨는데, 누군가가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하고 전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냐?”라고 되물으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 세례로 그리스도의 형제요 자매가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적어도 두 가지 방식, 곧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면서, 그리고 다른 이들을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성원이 되도록 이끌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확장하는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가능한 많은 이들을 세례성사의 샘으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가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났을 때 그리스도의 아들이 되었고, 이제 다른 이들을 같은 방식으로 이끌어 다시 태어나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4백여 년 전,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St. Teresa of Avila께서는 <그리스도께서는 몸이 없으시다(Christ Has No Body)>”라는 시를 썼는데, 이 시는 세상에 예수님을 낳으라는 우리의 소명을 설득력이 있게 묘사한다:

「그리스도는 몸이 없으시나 여러분에게는 그 몸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손도 없고 발도 없으시나 여러분에게는 그것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자비로 바라보는 여러분의 눈이 그분의 눈입니다. 선을 행하려고 걸어 나가는 여러분의 발이 그분의 발입니다. 온 세상을 축복하는 여러분의 손이 그분의 손입니다. 여러분의 손, 발, 눈, 몸이 그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몸이 없으시나 여러분에게는 그 몸이 있습니다.」

시인 샤를 페기Charles Péguy는 <신비로운 두 번째 덕의 문 앞에서(The Portico of the Mystery of the Second Virtue)>라는 시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이 헤아릴 수 없는 책임의 크기와 소명의 깊이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행운, 신비, 위험, 비참, 하느님의 은총, 유일한 부르심, 끔찍한 책임, 우리 인생의 고귀함과 가련함, 한낱 보잘것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한없이 약한 우리, 영원한 음성이 다시 울려 퍼질지 사라질지가 우리에게 달렸다.」

*https://www.wordonfire.org/가 발행하는 온라인 잡지(2024년 12월 24일) 내용 중 Dr. Richard Clements의 <The Ongoing Birth of Jesus>에서 부분 발췌, 이미지-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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