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학자들은 이 책이 한 권의 책이지만, 앞의 머리말과 뒤의 부록을 빼고 나면 ‘표징의 책’과 ‘영광의 책’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표징의 책에서는 공생활부터 예루살렘 입성 때까지를 일곱 가지 표징의 내용으로 담았고, 영광의 책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내용을 담았다.
요한 복음사가가 천지창조의 일곱 날처럼 ‘표징의 책’에서 기록하는 일곱 개의 표징을 끌고 가는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도대체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오신 분이신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표징의 책을 읽어가는 중요한 열쇳말 중 하나가 “어디에서?”라는 의문부사라고 할 수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1-9장 사이에서 5장을 제외하고는 매 장章에서 이 부사를 사용한다. 이때 “어디에서?”는 희랍말로 ‘Πόθεν, póthen’이라는 부사로서 영어로는 ‘whence?, from where? / from what source? / wherefore?, why?, how?, for what reason?, how come?’ 등의 뜻을 지닌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함께 있고 싶었던 첫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요한 1,38)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을 알지 못했던 과방장은 그 좋은 포도주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지 못한다.(요한 2,9) 위대한 스승이라고까지 알려진 니코데모가 찾아온 밤중에 마주 앉은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어디에서” 그 바람이 오는지를 그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요한 3,8) 한낮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은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아해하며 생수를 “어디에서” 어떻게 주시겠다는 말씀인지를 알지 못한다.(요한 4,11) 계시의 자리인 산 위에 오르시어 군중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전 군중의 배고픔을 먼저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줄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필립보에게 물으신다.(요한 6,5) 군중은 메시아께서 진정 “어디에서” 오실지는 알지 못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오신 곳은 안다는 듯이 말한다.(요한 7,27.28.35)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의 빛”이심을 밝히시며 그 증언의 유효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말씀하신다.(요한 8,14) 날 때부터 눈먼 이는 치유의 은총을 입고 자기 눈을 고쳐주신 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오셨는지 분명하게 알았는데도 바리사이들은 끝까지 이를 몰랐다.(요한 9,29.30)
요한복음에는 ‘Πόθεν, póthen’과는 정확히 같은 부사가 아니면서도 ‘where? / how?, in what manner?’라는 뜻을 지니면서 어근이 같은 ‘ποῦ, poû’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일곱 번째 표징인 라자로의 부활 전에 라자로의 주검이 묻힌 곳이 “어디”냐고 물으신다.(요한 11,34) 빈 무덤 앞에서 예수님을 찾으며 슬피 울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만나는 이마다 붙들고 도대체 예수님을 “어디에” 모셔갔느냐고 묻는다.(요한 20,2.13.15)
이처럼 요한복음의 “어디에서?”, “어디에?” “어디?”는 첫 제자로부터 마리아 막달레나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예수님이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그리스도이시오,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나가던 베드로 사도가 길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Κύριε, ποῦ ὑπάγεις? 라틴어-Quo vadis, Domine?)”(요한 13,36) 하고 여쭙자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께서 “네가 떠나는 저 로마로 간다.”라고 대답하시니, 베드로 사도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로마로 돌아가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모양대로는 감히 죽을 수 없어 거꾸로 매달아 죽여달라는 말을 남기며 그렇게 죽었다는 전설에서도 ποῦ는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