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6,15-20(주님 승천 대축일 ‘나’해-홍보주일)

암브로시안 전례력을 따르는 곳이나 미국의 Boston, Hartford, New York, Newark, Omaha, Philadelphia 교구들은 부활 제7주일을 지내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많은 곳에서는 부활 후 40일째에 지낸 주님 승천 대축일(목요일)을 주일로 옮겨 지낸다. 부활 시기 안에서 ‘부활 대축일’이나 ‘성령 강림 대축일’은 ‘가, 나, 다’ 해 어느 해를 막론하고 모두 같은 복음을 낭독하지만 ‘주님 승천 대축일’만큼은 각 해의

요한 15,9-17(부활 제6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마지막 만찬 때의 ‘고별 연설’(요한 13,31-16,33)이라 알려지는 대목 중 한 부분으로서 지난주 복음인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내가) 너희를” 우리 인간이 “사랑”이신 하느님의 심연을 도저히 헤아릴 길 없지만,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8) 하신 말씀대로 인간은 오직 예수님께서

요한 15,1-8(부활 제5주일 ‘나’해-생명 주일)

부활 시기를 지내는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서시어”(요한 20,19.26), 우리의 중심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듣는다. 지난주 예수님께서 “나는 ~이다.”라는 식으로 당신을 선포하시는 대목 중 “나는 착한 목자다.” 하는 말씀을 들었던 교회는 오늘 부활 제5주일을 맞아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하시는 이른바 예수님의 자기 선언에 관한 내용 하나를 더 듣는다. 당신을 “참포도나무”로 선언하신 예수님께서는

요한 10,11-18(부활 제4주일 ‘나’해-착한 목자 주일, 성소주일)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불리는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성소聖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뜻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사제나 수도자 성소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셨는지를 듣고 기념하는 부활시기를 지내오는 중에 교회는 벌써 네 번째

루카 24,35-48(부활 제3주일 ‘나’해)

지난주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들은 교회는 이번 주에 루카복음의 마지막 장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듣는다. 지난주 복음인 요한 20,19-31과 대동소이하지만, 서로 보충하고 보완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만져보라고 하셨다 하는데, 루카복음은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만져보라 하셨다 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난주에는 토마스 사도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오늘은 토마스 사도가 아닌 열한

요한 20,19-31(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나’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Divine Mercy Sunday)’로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린다. 이 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 하게 된 것은

마태 28,8-15(천사의 월요일)

* ‘작은 부활절’이라고도 부르는 부활 팔일 축제의 첫날은 ‘천사의 월요일(Lunedì dell’Angelo)’이라고도 불린다. 이날에는 복음으로 항상 마태 28,8-15를 읽는다. 아래는 2023년 천사의 월요일에 있었던 교황 프란치스코의 부활 삼종 기도 훈화 번역문이다.(*이미지-구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절 아침, 부활하신 예수님과 여인들의 만남을 다시 되새기면서, 주님을 맨 먼저 보았고 만났던 여성 제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요한 20,1-9(주님 부활 대축일 ‘나’해)

주님 부활 대축일의 복음은 ‘가, 나, 다’ 해 모두 같다. 오늘 복음은 다른 복음에서는 볼 수 없고 제4복음서 저자만이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이들에 관해 묘사하는 세 장면(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심 /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 예수님과 토마스)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여인은 루카복음에 따를 때,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마르 16,1-7(파스카 성야)

지난 3일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무덤 안장까지의 여정을 따라왔다. 이제 우리는 오늘 밤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불가능하며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 앞에 서게 된다. 이 거룩한 파스카 성야의 이러한 사건 앞에서 우리 각자는 우리가 들은 이야기를 두고 신앙과 불신의 갈등 속에서 의심스러운 심장의 박동을 체험한다. 지금 우리가

요한 18,1-19,42(주님 수난 성금요일 ‘나’해)

오후 3시라고 알려지는 시각, 십자가의 시간에, 온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키리오스’(κύριος, Kýrios), 곧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에서 상대적으로 너무 길다 싶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분을 오늘 우리는 제4복음서, 곧 예수님의 십자가 밑까지 따라갔던 제자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알려진 제자의 증언을 통해 듣는다. 이 증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