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1-3) 첫 시편 첫 구절에 나오는 인간의 행복은 돈 보스코에게 악에 물들지 않은 청소년의 행복이다. 청소년의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를 두고 어떤 형제가 “남은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요한 6,13)하다 하는데, 도대체 그 광주리라는 것이 느닷없이 어디서 등장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말 성경에서 “광주리”로 번역하는 것은 대나무나 대나무 껍질 같은 것, 싸리, 버들 따위로 엮은 일종의 용기로서 속이 깊으냐 얕으냐의 정도와 크기로 구분하여 ‘채반, 소쿠리, 바구니, 광주리’ 등으로 불린다. 영어에서는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6) 새해 첫날이나 설날 아침 미사의 독서에서도 듣는 이 축복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평화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백성이 드리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임을 보여준다. “주 하느님 말씀을 내 듣고 싶사오니, 정녕 평화를 말씀하시나이다 당신의 백성과 성도들에게, 그 마음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게.”(시편 84,9 최민순 역) 하시는 말씀 그대로
3611.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만유 안에 현존하시지만 인간 영혼 특히 기억에 현존하신다.-De ordine 2,2,4-5 ‘하느님과 함께 있음esse cum deo’은 인간이 기억을 더듬어 하느님께 지향을 돌릴 적에 의식적으로 실현된다.) 3612. Late have I loved you, O Beauty ever ancient, ever new, late have I loved you. You called, you shouted and you shattered my deafness.(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무일도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그동안 ‘죽음’을 두고 썼던 오래된 글들을 뒤적여 한 자리에 모으는 ‘짓’을 한다. 청승일까? 생의 시작에서는 한참 멀어져 이제는 훌쩍 가까워져 버린 죽음이 무의식 속에서 두려워서일까? 세상은 참 스마트해져서 이런 검색도 가능하고, 이런 모음도 가능한데, 이렇게 항상 죽음을 달고 살면서도 무서운 줄 모르고, 죽는 날까지 생의 정산定算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더운 여름 지방으로만 알려진 미국 플로리다에서도 계절이 나름 변한다. 9월 말이나 10월쯤 되면 사람들이 ‘지옥 끝, 천국 시작’이라고 부르는 좋은 시절에 들어간다. 신기하게도 이때만 나오는 과일들을 보면서 이를 실감한다. 반대로 천국이 끝나고 지옥처럼 더운 여름이 될 때면 ‘아, 또 그때가 왔구나!’ 싶다. 거의 같은 뜻으로 쓰는 것 같아도 계절이나 사물, 혹은 상황이나 사실이 A에서 B로,
지난주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들은 교회는 이번 주에 루카복음의 마지막 장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듣는다. 지난주 복음인 요한 20,19-31과 대동소이하지만, 서로 보충하고 보완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만져보라고 하셨다 하는데, 루카복음은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만져보라 하셨다 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난주에는 토마스 사도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오늘은 토마스 사도가 아닌 열한
유다인의 역사 안에 많은 예언자가 있었으나 그 중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활약한 예언자들로 이사야(기원전 745~695년 50년간 활동), 예레미야(기원전 627~586년 40년간 활동), 에제키엘(대략 기원전 593년~기원전 571년 활동, 560년경 사망)과 같은 예언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엇나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당신을 향한 믿음을 절대 잃어서는 안 되고, 그래야만 죽지 않고
간략한 역사: 「성경독서」, 「거룩한 독서」, 「성독聖讀」,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렉시오 디비나」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오래된, 성경을 읽는 태도와 자세, 영적 체험이자 영성 수련 및 방법론을 망라한다. 교부 오리게네스(185~253년경)와 카르투시오회의 귀고 2세Guigo II(?~1188년)에 의해 체계화되고 집대성되었다고 일컬어진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얼마간 잃어버린 듯한 교회의 소중한 유산인 렉시오 디비나가 본격적으로 교회 안에서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은
백 년도 넘는 세월 전에 샤를 페기Charles Péguy(1875~1914년)라는 작가가 “현대 사회는 그 어떤 것보다도 훼손하기 어려운 유일무이한 것마저도 훼손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죽음이라는 존엄성이다.(The modern world has managed to debase the thing that is perhaps more difficult to debase than anything else, because it has a singular dignity: death.)”라는 통찰을 이미 내놓은 바 있다.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