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과 돈 보스코

끊어야 할 사슬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음모를 꾸미는구나. ‘저들의 오랏줄을 끊어 버리고 저들의 사슬을 벗어 던져 버리자.’”(시편 2,2-3) 이 시편은 묶여있는 사슬을 끊으려는 원수들에 맞서 주님께서 당신의 메시아를 구하시리라는 확신을 표현한다. 새로운 처지에 있는 신약의 백성들은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묶여있는 올가미에서 자기들을 풀어주시라고 주님께 청한다. 돈 보스코께서 가톨릭 신자들을

베네치아에서 보낸 교황님의 하루

2024년 4월 28일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사목 방문을 겸하여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에서 개최되고 있는 ‘베네치아 비엔날레(The Venice Biennale)’의 교황청 전시관을 둘러보시기 위해 베네치아를 찾았다. 이번 비엔날레 동안 교황청 전시관은 여성들을 위한 쥬데카 교도소(Giudecca’s women’s prison) 시설 내에 설치되었다. 교황님의 첫 번째 일정은 자연스럽게 교도소에 있는 여성들을 위한 말씀으로 시작되었는데, 교황님께서는 “인간은 누구나 상처가 있게 마련”이라면서 소위

요한 15,9-17(부활 제6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마지막 만찬 때의 ‘고별 연설’(요한 13,31-16,33)이라 알려지는 대목 중 한 부분으로서 지난주 복음인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내가) 너희를” 우리 인간이 “사랑”이신 하느님의 심연을 도저히 헤아릴 길 없지만,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8) 하신 말씀대로 인간은 오직 예수님께서

성녀 카타리나(4월 29일)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 성녀 카타리나의 본명은 카테리나 베닌카사Caterina Benincasa(1347~1380년)이다. 교회의 신비가요 박사이며 이탈리아와 유럽의 수호 성녀이다. 성녀는 5세나 6세 무렵 첫 환시를 본 이후 순결 서약을 하였고, 이후 환시 체험을 자주 하였으며 1375년에는 오상五傷의 은혜까지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환시에서 받은 지시에 따라 여러 곳을 직접 다니거나 편지로 고위 정치 지도자들이나 성직자들, 수도자들, 예술가들이나 평범한 이들에

성 마르코(4월 25일)

성 “마르코”를 파악하기 위해 읽을 수 있는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사도 12,12)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사도 12,25)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다.(사도 15,37)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사도 15,39) 나와

요한 15,1-8(부활 제5주일 ‘나’해-생명 주일)

부활 시기를 지내는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서시어”(요한 20,19.26), 우리의 중심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듣는다. 지난주 예수님께서 “나는 ~이다.”라는 식으로 당신을 선포하시는 대목 중 “나는 착한 목자다.” 하는 말씀을 들었던 교회는 오늘 부활 제5주일을 맞아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하시는 이른바 예수님의 자기 선언에 관한 내용 하나를 더 듣는다. 당신을 “참포도나무”로 선언하신 예수님께서는

양의 다리를 부러트리는 목자?

사제를 목자라고 부르면서 “잃은 양”(마태 18,12-14 루카 15,3-7)을 들먹이며 자신은 길을 잃은 불쌍한 양이니 사제인 당신은 끝까지 나를 찾고 붙들어줘야 할 것인데도 왜 울타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에만 정신이 팔려있느냐고 ‘들이대는’ 신자들을 지금까지 여럿 만났다. 그런 이들 앞에 서면 할 말이 없어져 괜히 고개가 숙어진다. 혹 어떤 신자가 결국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면서도 마을의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기본법칙들(The Basic Laws of Human Stupidity)

by Carlo M. Cipolla(1922~2000년), 1976년 · 제1기본법칙: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우리는 하나같이 주위에 있는 어리석은 개인들의 수를 과소평가한다.(Always and inevitably, everyone underestimates the number of stupid individuals in circulation.) a) 우리가 과거에 합리적이고 지적이라고 판단한 개인들도 나중에는 돌변하여 명명백백한 구제불능의 어리석은 자들인 것으로 드러난다. b) 우리는 매일같이 지겹게도 적절치 않은 장소와 순간에 뜻밖에도 느닷없이 나타나는

“있는 나”·“야훼”·“I AM”·“LORD”(하느님의 이름)

지금이야 사람들이 “하느님”을 “하느님”이라 부르지만, 옛사람들은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또 감히 하느님의 이름을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입에 올린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몹시 궁금해했다.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물음에 답을 제시한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느님께서

요한 10,11-18(부활 제4주일 ‘나’해-착한 목자 주일, 성소주일)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불리는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성소聖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뜻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사제나 수도자 성소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셨는지를 듣고 기념하는 부활시기를 지내오는 중에 교회는 벌써 네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