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주교로 서품되거나 나중에 추기경으로 서임될 때는 공식 문장紋章을 채택하게 된다. 추기경에서 교황이 될 때는 이 문장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교황으로서 문장을 변경할 수도 있다. 전임 3명의 교황은 이미 추기경 시절에 사용했던 그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 바 있었고, 교황 레오 14세 역시 그가 추기경으로서 사용했던 문장을 계속 사용한다. 방패 문장의 상단에 있는 청색 바탕에
교황 프란치스코는 2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 <희망>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입니다(I am just one step)”라는 마지막 장에서 교황은 교회에는 항상 희망이 있고, 교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역설하면서 교회와 교황직의 본질이 ‘섬김’에 있음을 언급한다. 이때 교황은 교회가 자칫 ‘경직성(rigidity)’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 그렇다고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며,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조건 다 좋은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한 인간의 생명을 이 땅에 허락하시고, 그 생명 안에 세우신 고유 계획이다. 어떤 이는 이를 쉽고도 분명하게 찾고, 어떤 이는 고통 속에서 찾아가며, 또 어떤 이는 못내 찾지 못하기도 한다.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지으신 생명이 감히 함께 써 내려가는 성소聖召 이야기는 세상의 사랑 이야기나 인생이 다 그렇듯이 자기만의 사연이 있고, 극적이며 감동적이고, 반전의 연속이다.
(1963년 12월 13일에 저는 서품을 받았습니다. 제가 서품을 받던 날 저의 할머니, Rosa Margherita Vassallo, 1884~1974년) 로사 할머니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서품식을 위한 작은 선물을 마련해 두셨더랬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최소한 6년 전부터 이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고 합니다. 외아들이셨던 제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신 뒤로는 당신들도 이 뜻깊은 날을 볼 수 있을지
제11장 우리의 영혼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서로 어떻게 되어가는가? 테오티모여, 우리는 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이 영혼이란 본래 나누어질 수 없지만, 이 영혼 안에는 완전성의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왜냐하면 영혼이란 것은 살아 있는 것이고, 감각할 수 있는 것이고, 이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며, 또 이러한 단계를 따라 영혼은 고유한 제 특성과 경향성의 다양성도 지니고 있게
(4월이 초록이라면 5월의 시작은 초록초록이다 못해 이미 초록 천지다. 초록의 5월에 걸맞지 않은 느닷없는 ‘추할 추醜’는 초록 앞에 선 시들어가는 것들의 타령이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묘사한 대로 천지는 초록인데 자신만 한없이 쪼그라들어가는 무녀巫女의 넋두리이다) 어릿광대, 혹은 광대를 한자漢字로 뭐라 하는지 찾아보니 ‘소추小丑’라고 한다고 한다. 어리광을 연상하게 하는 ‘작을 소小’는 그럴듯하지만 ‘추할 추丑’가 그 말에 들어가 있는
생전 부탁에 따라 교황 프란치스코의 묘소가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에 마련되었고, 2025년 4월 27일 일반에 공개됨에 따라 수많은 이들이 묘소 앞을 찾는다. 묘소 앞에는 아무런 수식어 없이 ‘FRANCISCUS’라는 이름만이 새겨졌고, 그 앞에는 흰 장미 한 송이가 놓였으며, 벽면에는 평소 늘 목에 걸었던 착한 목자가 새겨진 철제 십자가의 복제본이 걸렸다.(*사진-교황청 공보국) 바티칸 뉴스에 따를 때, 흰
어떤 이가 책을 쓰면서 책을 쓰게 된 목적을 결론으로 밝혀야 그 책은 비로소 출판된다. 그런데 이 결론 부분에 이어서 어떤 장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이전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제4복음서에서도 일어난다. 지난주 복음에서 이미 들었던 제20장의 결론에 이어 오늘의 전례 복음은 그 이후에 추가된 제21장의 내용
오늘날 일정 부분 우리 교회에 유다 이스카리옷의 이미지를 복원해보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참회나 회개와는 별개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려는 시도를 반영한다. 최근 2021년 4월 1일자 교황청 기관지(L’Osservatore Romano) 1면에, 그것도 성주간을 여는 시점에 ‘우리의 형제 유다(Nostro fratello Giuda)라는 제목으로 프리모 마쫄라리 신부의 강론이 실리게 된 것도 이러한 시도 중 하나일 것이며(참조. 유다를 어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