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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역사는 노인의 경험과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각들이 어우러지는 지혜를 추구한다. ‘할배, 할아범’ 등으로 부르는 할아버지는 ‘크다’는 뜻의 ‘한’을 붙인 ‘한아비’라는 말에서 왔다. ‘할미, 한미, 할마니, 할멈, 할맘, 할매’로 불리는 할머니 역시 ‘크다’는 뜻의 ‘한’을 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를 넘어 분명 그보다 더 ‘큰’ 분들이시다. 두 분을 함께 부를 때는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하듯이 엄마가 먼저이고 할머니가 먼저일 때가 많고 더 익숙하다. 할머니를 생각할 때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는 훨씬 더 정겨운 어감이 함께 한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유명한 할머니 성인 중에는 어떤 분들이 계셨을까?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분들은 우리에게 어떤 표양이 되고 어떤 영적·도덕적 영감의 원천이 되실까? 교회의 역사 안에는 거룩한 성녀의 삶을 살았던 수많은 할머니가 계신다. 비록 성인품에 오르지는 못했더라도 가족들과 손주·손녀들을 위해 매일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을 봉헌하여 그들을 보살피시는 거룩한 할머니들, 평생 동정을 지키며 봉헌 생활에 매진하다가 이제는 소임이 없이 기도만 할지라도 그런 분들의 묵주알 덕에 교회는 아직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할머니 성녀 몇몇 분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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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나: 교회의 역사 안에서 거룩한 ‘할머니’를 얘기하자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할머니이신 성녀 안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모님의 어머니이시고 예수님의 할머니이시다. 성경보다 교회의 역사가 더 많은 내용을 전해주는 그녀의 삶은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선택하도록 예수님을 키워낼 수 있었던 구세주의 어머니, 성모님의 성장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다. 성녀 안나께서는 자신이 다 알지 못하고 짐작하지 못했던 미래의 딸을 위해 조용하게 딸의 신앙과 미덕을 교육했으며 결국 인류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할머니의 일상은 아직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길게 간다. 그리고 그 파급력은 인간적인 상상을 뛰어넘는다.
성녀 모니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이다. 동시에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들이었던 아데오다투스의 할머니였다.(참조. 고백록 제9권 6장) 성녀 모니카의 삶은 아들의 삶을 두고 오랜 세월 마음 졸이며 지켜간 인내로운 눈물의 기도, 흔들리지 않는 항구한 믿음이다. 그녀의 이러한 삶은 끝내 아들의 회심을 일으켰으며 그 아들로 인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성녀의 삶은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족과 피붙이를 포기하지 않는 항구함의 모범이다. 그녀의 성덕은 조용한 인내와 하느님의 ‘때’를 믿는 변치 않는 항구함이다.
키예프의 성녀 올가: 성녀 올가(헬가, St. Helga, 945~963년)는 변신과 신앙의 놀라운 모범이다, 키예프의 왕자 이고르 1세와 결혼하였으며, 스뱌토슬라프 1세의 어머니로서 키예프 일대를 통치했다. 맹렬한 복수심에 불타 남편과 자신의 친족이었던 이고류 류리코비치를 살해한 드레블랴네인들에게 4차에 걸쳐 잔인한 복수를 감행하였으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변신하여 자신의 땅 전역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했던 분이다. 다소 익숙하게 들었던 성 블라디미르(958~1015년) 대제의 할머니이다. 손자 블라디미르가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그리스도교의 통치자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할머니 성녀 올가는 자신이 잔인했던 복수심의 화신이었음에도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인류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성장과 구원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지, 그래서 그 후손이 어떻게 바람직한 신앙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레시아의 성녀 헤드빅: 성녀 헤드빅(헤드비지스, St. Hedwig of Silesia, 1174~1243년)은 일곱 자녀의 어머니이자 우리가 잘 아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여러 손주의 할머니였다. 공작부인이면서도 깊은 신심과 자선 활동으로 유명했던 성녀는 수녀원들을 설립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으며, 왕조의 권력 다툼 안에서도 평화를 위해 쉴 새 없이 분주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서원을 하지는 않았으나 시토회 수녀원에 거주하면서 가족과 지역 사회를 돕는데 평생을 헌신하였고, 기도와 적극적인 봉사의 삶을 끝까지 살았다. 오늘날 베를린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그녀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이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자베스: 성녀 엘리자베스(St. Elizabeth of Hungary, 1207~1231년)는 헝가리의 왕비였다. 가난한 사람들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성녀이면서 폴란드의 왕비이자 성녀로 알려진 쿠니쿤다(쿠네군다, St. Kunigunde of Poland)라는 성녀의 할머니이다. 열여덟에 이미 과부가 된 뒤에 왕족이면서도 길거리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걸식하며 생활할 정도로 겸손과 자선의 삶을 살았으며 남편 사후에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고, 당대에 천한 일로 취급받던 일을 하면서 대부분 낮은 계급 출신인 자선단체 자매들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다. 프란치스코 재속회 회원으로서 평생 친절과 관대함으로 다른 이들을 돕는 일생을 살면서 유럽의 역사와 후손들에게 이타적인 삶의 모범이 되었다.
성녀 마크리나: 성녀 마크리나(St. Macrina the Elder, 260?~340년경 활동)는 자기 이름을 땄던 맏손녀 성녀 마크리나(St. Macrina the Younger), 맏손자인 성 대 바실리오와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 등 열 명의 거룩한 손주를 두었던 할머니이며, 초대 교회의 교부가 될 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성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도와 9명의 동생을 돌보며 가르쳤고, 사고로 아들 중 하나를 잃고 실의에 빠졌던 어머니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슬픔을 이기도록 이끌었으며,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노예들을 풀어주었으며, 극심한 박해 중에도 어머니와 함께 수도 생활을 하며 수도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지금. 설에 시의적절한
할머님 성녀들의
이야기이네요.
저도
그분들 처럼
닮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