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온과 한나라는 두 노인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약속,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약속을 성전에서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대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가득했습니다. 시메온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봅시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령에 의해서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보았으며, 마침내 그는 “아기를 (자기) 두 팔에 안았습니다.”(참조. 루카 2,26-28) 이 세 가지 동작을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특별히 축성 생활에 대한 중요한 질문 몇 개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1. “성령에 이끌려”
첫째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루카 2,27)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시메온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한 열망으로 불타오르게 합니다. 성령께서 시메온의 마음에 기대를 품게 합니다. 성령께서 시메온을 성전으로 가게 하시고, 비록 가난하고 작은 아기의 모습 안에 계시지만 그의 눈이 메시아를 알아모시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거창한 것이나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 그리고 권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고 연약함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식별할 수 있게 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우리는 미약함과 연약함을 발견합니다만, 하느님의 권능이라는 극적인 것을 발견합니다. “성령에 이끌려”라는 말은 수도 신학(ascetic theology)에서 “성령의 움직임들(movements of the Spirit)”이라고 부르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인식하고 과연 이런 움직임들이 성령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닌지 식별하도록 부르시는 이러한 영혼의 움직임들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주로 움직이게 하는 분이 누구인지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의 영입니까? 이는 누구나, 특별히 축성 생활자들이라면 더더욱, 자문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린 아기의 작고 여린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도록 우리를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축성생활을 결과나 목표 (지향), 그리고 성공의 관점, 다시 말하자면 영향력이나 가시성, (통계) 숫자로만 바라볼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이는 유혹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성령께서는 이런 것을 절대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매일의 삶을 성실하게 살도록,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원하십니다. 시메온과 한나가 보여준 성실함은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그들은 매일 성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매일 깨어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불평이나 낙담하는 일이 없이 기대에 찬 삶을 살았고 성실함을 간직하면서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 지펴주신 희망의 불꽃을 키워갔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 우리의 날들을 움직이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까, 아니면 그저 수동적인 움직임이나 다른 어떤 것일 뿐입니까? 교회와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끌립니까(움직입니까)?” 때로는 선한 일들인 것처럼 보이는 이면에도 나르시시즘이나 내세우고 싶어 하는 못된 욕구들이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우리가 많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우리 수도자들의 공동체가 성령께 열정적으로 열려 있는 대신 기계적인 반복, 습관적으로 행동하면서 그저 바쁘게만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내면의 동기動機와 영적인 움직임들을 잘 살펴 식별합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 축성생활의 쇄신이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2.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
두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무엇을 봅니까?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 그리스도를 보고 그분을 알아모십니다. 그리고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라고 말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의 신비입니다. 신앙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고, 우리의 시선을 바꾸도록 하며, 우리의 관점을 변화하게 합니다. 복음(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많은 만남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신앙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무르게 하고,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시며,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신다고 하는 자비로운 시선에서 생겨납니다.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 심지어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까지라도 이를 새롭게 보도록 하는 시선 말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그저 순진하기만 한 시선이 아니라 지혜로운 시선입니다. 그저 순진한 시선은 현실을 피하고, 문제를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시선은 “속을 들여다보고 너머를 봅니다(look within and see beyond).” 지혜로운 시선은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나약함과 실패의 틈새로 들어가 그곳에서마저도 하느님의 현존을 식별하는 시선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노인 시메온의 눈은 어두워졌지만, 주님을 봅니다. 그 눈이 구원을 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각자도 우리 자신에게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봅니까? 우리 축성생활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세상은 “저 훌륭한 젊은이가 수도자가 되려 하다니 얼마나 소모적입니까! 별 볼일 없이 생기기라도 했다면 모르지만……말입니다.” (이런 시각은) 우리의 축성생활을 그저 “소모적인 것(a waste)”으로 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세상은 아마도 우리 수도생활을 과거의 유산이나 쓸모없는 것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 남녀 수도자들의 눈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이제는 뭔가 더는 있지도 않은 것을 갈구하면서 우리 내면으로만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안과 너머를 보면서 멀리 보는 신앙의 시선을 지닐 수도 있는 것입니까? 사물을 바라보는 지혜의 시선, 이는 성령의 은총입니다 – 모든 것을 잘 보고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며 현실을 파악하는 시선 말입니다.
저는 연세가 지긋하신 남녀 수도자들, 아직도 눈이 밝고, 계속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식으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분들을 만날 때 크게 고무되곤 합니다. 그런 분들을 만났던 모든 시간을 생각하면서 이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그런 분들의 눈은 희망으로, 미래를 향한 개방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요즘 같은 때에 우리의 연로하신 형제자매들을 찾아가 그분들을 만나고,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분들에게 물어보고,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들어보는 것은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좋은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축성생활에 대해 우리가 새로운 비전을 개발하도록 초대하는 표징을 주시는 것에 절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빛과 성령의 움직임에 순응하면서 이런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표징을 못 본 척하면서 그저 하던 대로 계속하고, 옛날부터 하던 똑같은 일이나 하면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마비되어서 과거의 형태를 반복하는 것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것을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날 안전을 이유로, 두려움을 이유로, 그저 창립자의 은사를 지키겠다는 이유만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마는……이런 유혹은 유혹일 뿐입니다. 경직되게 “전통”을 고수하려는 유혹, 과거로의 회귀라는 유혹 말입니다. 유념합시다. 경직성은 일종의 왜곡이며 그 어떤 형태라도 경직성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시메온과 한나는 그 누구도 경직되지 않았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자유로웠고 축하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시메온은 주님을 찬미하며 용기있게 아기의 어머니(성모님께)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느 착한 할머니처럼 한나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이것 좀 보세요. 이 아기를 보세요!’라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루카 2,38)
한나는 희망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기쁨으로 말했습니다. 한나에게는 과거의 관성이나 경직성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눈을 뜹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위기, “아버지, (도대체) 성소聖召가 없습니다. 세상 끝까지 가서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우리 (수도자)의 숫자가 감소한다는 위기 중에서도,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 중에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공동체를 쇄신하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엽시다. 시메온과 한나를 보도록 합시다. 그분들은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슬퍼하느라 날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미래를 껴안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제를 돌아보거나 절대 오지 않을 미래를 꿈꾸느라 오늘을 허비하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님 앞에서 그분을 찬미하며 선을 찾는 눈을 청하고 하느님의 길을 식별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주님께 간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기쁘게,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3.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의 두 팔에 무엇을 받아 안아야 할까요? 시메온은 예수님을 자기 팔에 받아 안았습니다.(참조. 루카 2,28)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의미가 가득하고 복음에서 유일한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팔에도 당신의 아드님을 받아 안도록 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받아 안는 것이야말로 본질적인 것이고, 신앙의 진정한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수천수만 가지 사소한 것에 사로잡히거나 (소위) 새로운 계획(프로젝트)이라는 것들에 뛰어들어 중심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받아 안아야 합니다.
시메온이 예수님을 자기 품에 받아 안았을 때 시메온은 축복과 찬미, 놀라움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축성생활을 지내오면서 우리가 놀라움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아직도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요? 이 점에 관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봅시다. 그래서 만약 우리 안에서 놀라는 능력을 발견할 수 없거든 놀라움의 은총을 청합시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숨어서, 시메온과 한나가 예수님을 성전 안에서 만났을 때처럼 활동하시는 경이로움 앞에서 놀라는 놀라움의 은총을 청합시다. 축성생활을 하는 남녀 수도자들에게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축복하고 찬미하는 말이 부족하다면, 기쁨이 부족하다면, 열정을 지니는 데 실패한다면, 형제적 삶이 그저 허드렛일에 불과하다면, 놀라움이 부족하다면 이는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 무엇의 탓도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우리가 우리 팔에 더는 예수님을 받아 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녀 축성생활 수도자들의 팔이 예수님을 받아 안고 있지 않다면, 결국 공허로 남게 될 다른 허망한 것으로 (품을) 채우려 들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두 팔에 받아 안는 것, 이것이 쇄신을 위한 여정이고 비결이며 표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팔에 받아 안는 것에 실패한다면 우리 마음은 비참함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비참한 수도자를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절대 바로잡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 융통성이 없는 경직성,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로 닫힌 수도자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장상이 되었든, 형제나 자매가 되었든, 공동체가 되었든 음식이 되었든……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불평합니다. 그런 이들은 불평할 거리 때문에 삽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팔에 찬미로 예수님을 받아 안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과 하느님의 길을 식별하는 눈을 주시라고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열린 팔로 (우리 팔에) 그리스도를 껴안게 된다면 다른 이들도 신뢰와 겸손으로 받아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갈등이 고조되지 않고, 의견이 분분하지 않게 될 것이며,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고 짓누르려는 유혹이 극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팔에 그리스도와 우리 모든 형제자매를 받아 안읍시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오늘 기쁘게 우리의 축성생활을 갱신합시다!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가고” 있는지, 우리가 어떤 새로운 비전을 개발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보면서, 무엇보다도 우리 팔에 예수님을 받아 안읍시다. 늘 그렇듯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겠지만 시메온과 한나가 했던 것처럼 우리도 합시다. 그들은 인내롭게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과 만나는 기쁨을 절대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만나는 기쁨에 미리 참여합시다. 이것은 (실로) 아름답습니다! 주님을 다시 중심에 모십시다. 그리고 기쁨으로 나아갑시다. 아멘!(교황 프란치스코, 성 베드로 대성당, 2022년 2월 2일, 번호와 소제목은 원문에 없으나 번역자가 임의로 삽입하였음. 이미지-바티칸 공보처. https://benjikim.com/?p=8473에서 같은 내용을 약간 다른 버전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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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CHARISTIC CONCELEBRATION WITH THE MEMBERS OF THE INSTITUTES OF CONSECRATED LIFE AND THE SOCIETIES OF APOSTOLIC LIFE
HOMILY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St Peter’s Basilica
Wednesday, 2 February 2022
Two elderly people, Simeon and Anna, await in the Temple the fulfilment of the promise that God made to his people: the coming of the Messiah. Yet theirs is no passive expectation, it is full of movement. Let us look at what Simeon does. First, he is moved by the Spirit; then he sees salvation in the Child Jesus and finally he takes him into his arms (cf. Lk 2:26-28). Let us simply consider these three actions and reflect on some important questions for us and in particular for the consecrated life.
First, what moves us? Simeon goes to the Temple, “moved by the spirit” (v. 27). The Holy Spirit is the protagonist in this scene. He makes Simeon’s heart burn with desire for God. He keeps expectation alive in his heart: He impels him to go to the Temple and he enables his eyes to recognize the Messiah, even in the guise of a poor little baby. That is what the Holy Spirit does: he enables us to discern God’s presence and activity not in great things, in outward appearances or shows of force, but in littleness and vulnerability. Think of the cross. There too we find littleness and vulnerability, but also something dramatic: the power of God. Those words “moved by the spirit” remind us of what ascetic theology calls “movements of the Spirit”: those movements of the soul that we recognize within ourselves and are called to test, in order to discern whether they come from the Holy Spirit or not. Be attentive to the interior movements of the Spirit.
We can also ask, who mostly moves us? Is it the Holy Spirit, or the spirit of this world? This a question that everyone, consecrated persons in particular, needs to ask. The Spirit moves us to see God in the littleness and vulnerability of a baby, yet we at times risk seeing our consecration only in terms of results, goals and success: we look for influence, for visibility, for numbers. This is a temptation. The Spirit, on the other hand, asks for none of this. He wants us to cultivate daily fidelity and to be attentive to the little things entrusted to our care. How touching is the fidelity shown by Simeon and Anna! Each day they go to the Temple, each day they keep watch and pray, even though time passes and nothing seems to happen. They live their lives in expectation, without discouragement or complaint, persevering in fidelity and nourishing the flame of hope that the Spirit has kindled in their hearts.
Brothers and sisters, we can ask, what moves our days? What is the love that makes us keep going? Is it the Holy Spirit, or the passion of the moment, or something else? How do we “move” in the Church and in society? Sometimes, even behind the appearance of good works, the canker of narcissism, or the need to stand out, can be concealed. In other cases, even as we go about doing many things, our religious communities can appear moved more by mechanical repetition – acting out of habit, just to keep busy – than by enthusiastic openness to the Holy Spirit. All of us would do well today to examine our interior motivations and discern our spiritual movements, so that the renewal of consecrated life may come about, first and foremost, from there.
A second question: What do our eyes see? Simeon, moved by the Spirit, sees and recognizes Christ. And he prays, saying: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v. 30). This is the great miracle of faith: it opens eyes, transforms gazes, changes perspectives. As we know from Jesus’ many encounters in the Gospel, faith is born of the compassionate gaze with which God looks upon us, softening the hardness of our hearts, healing our wounds and giving us new eyes to look at ourselves and at our world. New ways to see ourselves, others and all the situations that we experience, even those that are most painful. This gaze is not naïve but sapiential. A naïve gaze flees reality and refuses to see problems. A sapiential gaze, however, can “look within” and “see beyond”. It is a gaze that does not stop at appearances, but can enter into the very cracks of our weaknesses and failures, in order to discern God’s presence even there.
The eyes of the elderly Simeon, albeit dimmed by the years, see the Lord. They see salvation. What about us? Each of us can ask: what do our eyes see? What is our vision of consecrated life? The world often sees it as “a waste”: “look at that fine young person becoming a friar or a nun, what a waste! If at least they were ugly… but what a waste”! That is how we think. The world perhaps sees this as a relic of the past, something useless. But we, the Christian community, men and women religious, what do we see? Are our eyes turned only inward, yearning for something that no longer exists, or are we capable of a farsighted gaze of faith, one that looks both within and beyond? To have the wisdom to look at things – this is a gift of the Spirit – to look at things well, to see them in perspective, to grasp reality. I am greatly edified when I see older consecrated men and women whose eyes are bright, who continue to smile and in this way to give hope to the young. Let us think of all those times when we encountered such persons, and bless God for this. For their eyes are full of hope and openness to the future. And perhaps we would do well, in these days, to go make a visit to our elderly religious brothers and sisters, to see them, to talk with them, to ask questions, to hear what they are thinking. I consider this a good medicine.
Brothers and sisters, the Lord never fails to give us signs that invite us to cultivate a renewed vision of consecrated life. We need to do this, but in the light of the Holy Spirit and docile to his movements. We cannot pretend not to see these signs and go on as usual, doing the same old things, drifting back through inertia to the forms of the past, paralyzed by fear of change. I have said this over and over again: nowadays the temptation to go back, for security, out of fear, in order to preserve the faith or the charism of the founder… is a temptation. The temptation to go back and preserve “”traditions” with rigidity. Let’s get this into our head: rigidity is a perversion, and beneath every form of rigidity there are grave problems. Neither Simeon or Anna were rigid; no, they were free and had the joy of celebrating: Simeon by praising the Lord and prophesying with courage to the child’s mother. Anna, like a good old woman, kept saying: “Look at them!” “Look at this!” She spoke with joy, her eyes full of hope. None of the inertia of the past, no rigidity. Let us open our eyes: the Spirit is inviting us amid our crises – and crises there are –, our decreasing numbers – “Father, there are no vocations, now we will go to the ends of the earth to see if we can find one” – and our diminishing forces, to renew our lives and our communities. And how do we do this? He will show us the way. Let us open our hearts, with courage and without fear. Let us look at Simeon and Anna: although they were advanced in years, they did not spend their days mourning a past that never comes back, but instead embraced the future opening up before them. Brothers and sisters, let us not waste today by looking back at yesterday, or dreaming of a tomorrow that will never come; instead, let us place ourselves before the Lord in adoration and ask for eyes to see goodness and to discern the ways of God. The Lord will give them to us, if we ask him. With joy, with courage, without fear.
Finally, a third question: what do we take into our own arms? Simeon took Jesus into his arms (cf. v. 28). It is a touching scene, full of meaning and unique in the Gospels. God has placed his Son in our arms too, because embracing Jesus is the essential thing, the very heart of faith. Sometimes we risk losing our bearings, getting caught up in a thousand different things, obsessing about minor issues or plunging into new projects, yet the heart of everything is Christ, embracing him as the Lord of our lives.
When Simeon took Jesus into his arms, he spoke words of blessing, praise and wonder. And we, after so many years of consecrated life, have we lost the ability to be amazed? Do we still have this capacity? Let us examine ourselves on this, and if someone does not find it, let him or her ask the grace of amazement, amazement before the wonders that God is working in us, hidden, like those in the temple, when Simeon and Anna encountered Jesus. If consecrated men and women lack words that bless God and other people, if they lack joy, if their enthusiasm fails, if their fraternal life is only a chore, if amazement is lacking, that is not the fault of someone or something else. The real reason is that our arms no longer embrace Jesus. And when the arms of a consecrated man or woman do not embrace Jesus, they embrace a vacuum which they try to fill with other things, but it remains a vacuum. To take Jesus into our arms: this is the sign, the journey, the recipe for renewal. When we fail to take Jesus into our arms, our hearts fall prey to bitterness. It is sad to see religious who are bitter: closed up in complaining about things that never go right, in a rigidity that makes them inflexible, in attitudes of supposed superiority. They are always complaining about something: the superior, their brothers or sisters, the community, the food… They live for something to complain about. But we have to embrace Jesus in adoration and ask for eyes capable of seeing the goodness and discerning the ways of God. If we embrace Christ with open arms, we will also embrace others with trust and humility. Then conflicts will not escalate, disagreements will not divide, and the temptation to domineer and to offend the dignity of others will be overcome. So let us open our arms to Christ and to all our brothers and sisters. For that is where Jesus is.
Dear friends, today let us joyfully renew our consecration! Let us ask ourselves what “moves” our hearts and actions, what renewed vision we are being called to cultivate, and above all else, let us take Jesus into our arms. Even if at times we experience fatigue and weariness – this too happens – , let us do as Simeon and Anna did. They awaited with patience the fidelity of the Lord and did not allow themselves to be robbed of the joy of the encounter with him. Let us advance to the joy of the encounter: this is beautiful! Let us put the Lord back in the centre, and press forward with joy.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