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교회는 성탄 다음 사십 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여기에 초 봉헌 행렬이 덧붙여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1997년)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으셨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수도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 명칭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년 12월 2일 회의) – 매일미사, 202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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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한 주님 봉헌 축일 교황님의 미사 강론

시메온과 한나라는 두 노인이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약속, 메시아께서 오시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성전에서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다림은 그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가득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시메온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봅시다. 먼저 그는 성령에 “이끌려” 움직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 안에서 구원을 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습니다.(참조. 루카 2,26-28) 단순하게 세 가지 동작만을 묵상해보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특별히 축성 생활을 위한 질문을 묵상해봅시다.

1) 첫 번째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루카 2,27)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의 주인공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을 향한 열망으로 시메온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시메온의 마음에 기대가 살아있도록 하십니다. 성령께서 시메온을 성전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가난한 어린 아기의 모습 안에 계시는 메시아일지라도 시메온의 눈이 그분을 알아보게 하십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위대하고 외형적이며 힘의 과시가 아니라 작고 여린 모습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모시게 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한없이) 무력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안에서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극적인 모습도 발견합니다. “성령에 이끌려”라고 하는 말은 금욕주의 신학(ascetic theology) 에서 ‘성령의 움직임들(movements of the Spirit)’이라고 부르는 내용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인지하는 그러한 영혼의 움직임들은 과연 그 움직임이 성령의 움직임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령의 내적인 움직임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누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도 물어야만 합니다. 과연 성령입니까, 아니면 세속의 영입니까? 이는 누구에게나, 특별히 축성 생활을 하는 이에게라면 더더욱 해당하는 물음입니다. 성령께서는 작고 여린 아기 안에서 하느님을 보도록 우리를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우리에게는 결과나 목표, 그리고 성공 여부, 그리고 영향력이나 가시성(눈에 보이는 것), 숫자만으로 축성 생활을 보려고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유혹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것을 절대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보살핌에 맡겨진 사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매일 충실함을 닦아나가도록 요구하십니다. 시메온과 한나가 보여준 충실함이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그들은 매일 성전에 갔고, 매일매일 시간이 흘러가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매일 (성실하게) 살피며 기도합니다. 그들은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대 안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충실을 다하고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당겨준 불꽃을 키워가면서 살아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매일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까, 아니면 순간의 열정이나 또 다른 어떤 것입니까? 교회와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움직”입니까? 때로 겉으로는 선한 일이 드러났지만, 속으로는 자아도취(나르시즘)라는 병, 혹은 (누군가의) 눈에 띄고 싶은 욕구가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 우리 수도 생활 공동체들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성령을 향한 열정적인 개방성보다는 그저 기계적인 반복, 바쁘다는 것만으로 (늘 해오던 대로) 관성에 의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우리 내면의 동기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 영적인 움직임을 식별하여 우리 축성 생활의 쇄신이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 두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봅니까? 성령에 이끌려 성전에 들어간 시메온은 그리스도를 보고 알아 모십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29-30) 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의 기적입니다. 신앙은 눈을 뜨게 하고, 시선을 바꾸며, 관점(전망)을 바꾸게 합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만나는 많은 예수님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시선에서 신앙이 태어나고, 그 시선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워지게 하며, 우리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나아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자신과 타인들, 심지어 아주 고통스러운 상황까지도 (포함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상황을 새롭게 보도록 하는 새로운 시선 말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순진하다기보다 지혜로운 시선입니다. 순진한 시선은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문제를 회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시선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넘어를 볼” 수 있습니다. 드러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약점과 실패의 틈새로 들어가 그곳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식별하려고 하는 시선입니다.

노인 시메온의 눈은 세월이 가면서 약해졌지만, 주님을 봅니다. 구원을 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각자 우리의 눈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축성 생활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세상은 종종 이를 ‘쓸데없는 낭비(a waste)’로 봅니다. 멋진 젊은이가 수도자가 되고 수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가, 차라리 못생기기라도 했다면…… 하고요! 이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은 아마도 이를 쓸모없는 과거의 유물 정도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 남녀 수도자들은 무엇을 봅니까? 우리의 눈들이 그저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것을 안으로만 (막연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안과 밖(이쪽저쪽을 모두), 그리고 멀리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까? 사물을 바라보는 지혜를 지닌다는 것은 (실로) 성령의 은총으로서 사물을 잘 보고, 전망을 가지고 (멀리) 보며, 현실을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로서는 눈이 밝고, 계속 미소를 지으며, 이런 식으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연세가 지긋한 남녀 수도자들을 볼 때 큰 교훈을 얻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를 생각해 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그런 분들의 눈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개방성으로 가득합니다. 아마도 요사이 며칠 동안 우리 선배 수도자들인 형제와 자매들을 찾아가 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질문해 보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참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좋은 약藥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시어 축성 생활에 대한 비전을 계발하고 쇄신하도록 표징을 주시는 데에 절대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빛에 순응하며 유순한 자세로 (우리의 수도 생활을 쇄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표징을 못 본 척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다시 되풀이하면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마비된 채 그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거듭거듭 드렸습니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유혹, 안정과 두려움에 대한 유혹, 그저 창립자의 카리스마를 잘 보존해야 한다는 식의 (변명)……은 유혹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유혹, ‘전통만을 경직되게 고수하려는 유혹 말입니다. 경직성은 왜곡이고, 어떤 형태의 경직성일지라도 그 아래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시메온과 한나는 경직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자유로웠고 축하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시메온은 주님을 찬양하며 아기의 어머니에게 용기 있게 예언을 전했습니다. 한나는 훌륭하고 착한 할머니처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루카 2,38) 하였습니다. 착한 한나 할머니는 “그들을 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 하고 계속 말했습니다. 한나는 기쁘게, 희망으로 가득하여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과거로의 회귀나 경직성이 없습니다. 우리의 눈을 열도록 합시다. 성령께서는 엄연하게 현존하는 우리의 위기, “아버지, 성소가 없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찾으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야만 합니다.” 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위기 안에서도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쇄신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께서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우리의 눈을 엽시다. 시메온과 한나를 봅시다. 그들은 나이가 많았으면서도 절대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불평하느라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 앞에 펼쳐진 미래를 품어 안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제와 같은 과거를 되돌아보느라, 혹은 절대 오지 않을 내일을 꿈꾸느라 오늘을 낭비하지 맙시다. 그 대신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찬미하며 선함을 보고 하느님의 길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청합시다. 주님께 구하면 주님께서 구하는 것을 주실 것입니다. 기쁨으로,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3)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 팔에 무엇을 품어 안을까요? 시메온은 자기 팔에 예수님을 품어 안았습니다.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의미가 가득하고 복음에서 유일한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팔에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품어 안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고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중심을 잃고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여 수천수만 가지 일들에 얽매이거나 새로운 계획에 뛰어들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모든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우리 삶의 주님으로 품어 안는 것입니다.

시메온이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았을 때, 그는 축복찬미, 그리고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루카 2,33) 하는 것처럼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랜 축성 생활을 살아오면서 그 놀라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여전히 놀라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이 점에 관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누군가가 이런 능력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놀라움의 은총을 청합시다. 시메온과 한나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성전에 함께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처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경이로움에 대한 놀라움 말입니다. 남녀 축성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말이 부족하고, 기쁨이 부족하며, 열정이 부족하여 형제적 공동체 삶이 그저 그런 잡일에 불과하고, (그렇게) 놀라움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나 그 무엇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의 팔이 더는 예수님을 받아 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축성 생활을 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우리 팔에 받아 안지 않는다면, 우리 팔에 다른 것들, 허망한 것들을 품어 안으려고 하는 것이며 결국은 공허만이 남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팔에 받아 안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쇄신의 표징이자 여정이며 비결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팔에 받아 안는 데에 실패한다면, 우리 마음은 고통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결코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불평, 융통성이 없는 경직성,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태도에 사로잡혀 아파하는 수도자를 보는 일은 슬픕니다. 그런 이들은 장상이나 형제자매들, 공동체, 음식……등등 항상 무엇인가를 두고 불평합니다. 그런 이들은 불평할 무엇인가를 위해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품어 안고 찬미해야만 합니다. 선한 것을 볼 수 있는 눈과 하느님의 길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두 팔을 벌려 그리스도를 품어 안는다면 겸손과 믿음으로 다른 이들도 품어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갈등이 고조되지 않고, 의견 차이로 분열되지 않을 것이며, 주도권을 잡으려 하거나 다른 이들의 존엄성을 해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우리 모든 형제자매를 향해 우리의 두 팔을 벌립시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기쁘게 우리의 축성 생활을 쇄신합시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지”, 어떤 새로운 비전을 키우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질문해 봅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우리 팔에 받아 안읍시다. 때로는 지치고 피곤할지라도 이 또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도 시메온과 한나처럼 합시다. 그들은 인내로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고, 주님을 만나려는 그 기쁨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 기쁨을 미리 누립시다. 이것은 아름답습니다. 주님을 다시 중심에 모시고 기쁨으로 나아갑시다. 아멘!(단락에 붙인 번호는 번역자의 임의적인 추가임 * 이미지-바티칸 수도자성 홈페이지)


HOMILY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St Peter’s Basilica

Wednesday, 2 February 2022

Two elderly people, Simeon and Anna, await in the Temple the fulfilment of the promise that God made to his people: the coming of the Messiah. Yet theirs is no passive expectation, it is full of movement. Let us look at what Simeon does. First, he is moved by the Spirit; then he sees salvation in the Child Jesus and finally he takes him into his arms (cf. Lk 2:26-28). Let us simply consider these three actions and reflect on some important questions for us and in particular for the consecrated life.

First, what moves us? Simeon goes to the Temple, “moved by the spirit” (v. 27). The Holy Spirit is the protagonist in this scene. He makes Simeon’s heart burn with desire for God. He keeps expectation alive in his heart: He impels him to go to the Temple and he enables his eyes to recognize the Messiah, even in the guise of a poor little baby. That is what the Holy Spirit does: he enables us to discern God’s presence and activity not in great things, in outward appearances or shows of force, but in littleness and vulnerability. Think of the cross. There too we find littleness and vulnerability, but also something dramatic: the power of God. Those words “moved by the spirit” remind us of what ascetic theology calls “movements of the Spirit”: those movements of the soul that we recognize within ourselves and are called to test, in order to discern whether they come from the Holy Spirit or not. Be attentive to the interior movements of the Spirit.

We can also ask, who mostly moves us? Is it the Holy Spirit, or the spirit of this world? This a question that everyone, consecrated persons in particular, needs to ask. The Spirit moves us to see God in the littleness and vulnerability of a baby, yet we at times risk seeing our consecration only in terms of results, goals and success: we look for influence, for visibility, for numbers. This is a temptation. The Spirit, on the other hand, asks for none of this. He wants us to cultivate daily fidelity and to be attentive to the little things entrusted to our care. How touching is the fidelity shown by Simeon and Anna! Each day they go to the Temple, each day they keep watch and pray, even though time passes and nothing seems to happen. They live their lives in expectation, without discouragement or complaint, persevering in fidelity and nourishing the flame of hope that the Spirit has kindled in their hearts.

Brothers and sisters, we can ask, what moves our days? What is the love that makes us keep going? Is it the Holy Spirit, or the passion of the moment, or something else? How do we “move” in the Church and in society? Sometimes, even behind the appearance of good works, the canker of narcissism, or the need to stand out, can be concealed. In other cases, even as we go about doing many things, our religious communities can appear moved more by mechanical repetition – acting out of habit, just to keep busy – than by enthusiastic openness to the Holy Spirit. All of us would do well today to examine our interior motivations and discern our spiritual movements, so that the renewal of consecrated life may come about, first and foremost, from there.

A second question: What do our eyes see? Simeon, moved by the Spirit, sees and recognizes Christ. And he prays, saying: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v. 30). This is the great miracle of faith: it opens eyes, transforms gazes, changes perspectives. As we know from Jesus’ many encounters in the Gospel, faith is born of the compassionate gaze with which God looks upon us, softening the hardness of our hearts, healing our wounds and giving us new eyes to look at ourselves and at our world. New ways to see ourselves, others and all the situations that we experience, even those that are most painful. This gaze is not naïve but sapiential. A naïve gaze flees reality and refuses to see problems. A sapiential gaze, however, can “look within” and “see beyond”. It is a gaze that does not stop at appearances, but can enter into the very cracks of our weaknesses and failures, in order to discern God’s presence even there.

The eyes of the elderly Simeon, albeit dimmed by the years, see the Lord. They see salvation. What about us? Each of us can ask: what do our eyes see? What is our vision of consecrated life? The world often sees it as “a waste”: “look at that fine young person becoming a friar or a nun, what a waste! If at least they were ugly… but what a waste”! That is how we think. The world perhaps sees this as a relic of the past, something useless. But we, the Christian community, men and women religious, what do we see? Are our eyes turned only inward, yearning for something that no longer exists, or are we capable of a farsighted gaze of faith, one that looks both within and beyond? To have the wisdom to look at things – this is a gift of the Spirit – to look at things well, to see them in perspective, to grasp reality. I am greatly edified when I see older consecrated men and women whose eyes are bright, who continue to smile and in this way to give hope to the young. Let us think of all those times when we encountered such persons, and bless God for this. For their eyes are full of hope and openness to the future. And perhaps we would do well, in these days, to go make a visit to our elderly religious brothers and sisters, to see them, to talk with them, to ask questions, to hear what they are thinking. I consider this a good medicine.

Brothers and sisters, the Lord never fails to give us signs that invite us to cultivate a renewed vision of consecrated life. We need to do this, but in the light of the Holy Spirit and docile to his movements. We cannot pretend not to see these signs and go on as usual, doing the same old things, drifting back through inertia to the forms of the past, paralyzed by fear of change. I have said this over and over again: nowadays the temptation to go back, for security, out of fear, in order to preserve the faith or the charism of the founder… is a temptation. The temptation to go back and preserve “”traditions” with rigidity. Let’s get this into our head: rigidity is a perversion, and beneath every form of rigidity there are grave problems. Neither Simeon or Anna were rigid; no, they were free and had the joy of celebrating: Simeon by praising the Lord and prophesying with courage to the child’s mother. Anna, like a good old woman, kept saying: “Look at them!” “Look at this!” She spoke with joy, her eyes full of hope. None of the inertia of the past, no rigidity. Let us open our eyes: the Spirit is inviting us amid our crises – and crises there are –, our decreasing numbers – “Father, there are no vocations, now we will go to the ends of the earth to see if we can find one” – and our diminishing forces, to renew our lives and our communities. And how do we do this? He will show us the way. Let us open our hearts, with courage and without fear. Let us look at Simeon and Anna: although they were advanced in years, they did not spend their days mourning a past that never comes back, but instead embraced the future opening up before them. Brothers and sisters, let us not waste today by looking back at yesterday, or dreaming of a tomorrow that will never come; instead, let us place ourselves before the Lord in adoration and ask for eyes to see goodness and to discern the ways of God. The Lord will give them to us, if we ask him. With joy, with courage, without fear.

Finally, a third question: what do we take into our own arms? Simeon took Jesus into his arms (cf. v. 28). It is a touching scene, full of meaning and unique in the Gospels. God has placed his Son in our arms too, because embracing Jesus is the essential thing, the very heart of faith. Sometimes we risk losing our bearings, getting caught up in a thousand different things, obsessing about minor issues or plunging into new projects, yet the heart of everything is Christ, embracing him as the Lord of our lives.

When Simeon took Jesus into his arms, he spoke words of blessing, praise and wonder. And we, after so many years of consecrated life, have we lost the ability to be amazed? Do we still have this capacity? Let us examine ourselves on this, and if someone does not find it, let him or her ask the grace of amazement, amazement before the wonders that God is working in us, hidden, like those in the temple, when Simeon and Anna encountered Jesus. If consecrated men and women lack words that bless God and other people, if they lack joy, if their enthusiasm fails, if their fraternal life is only a chore, if amazement is lacking, that is not the fault of someone or something else. The real reason is that our arms no longer embrace Jesus. And when the arms of a consecrated man or woman do not embrace Jesus, they embrace a vacuum which they try to fill with other things, but it remains a vacuum. To take Jesus into our arms: this is the sign, the journey, the recipe for renewal. When we fail to take Jesus into our arms, our hearts fall prey to bitterness. It is sad to see religious who are bitter: closed up in complaining about things that never go right, in a rigidity that makes them inflexible, in attitudes of supposed superiority. They are always complaining about something: the superior, their brothers or sisters, the community, the food… They live for something to complain about. But we have to embrace Jesus in adoration and ask for eyes capable of seeing the goodness and discerning the ways of God. If we embrace Christ with open arms, we will also embrace others with trust and humility. Then conflicts will not escalate, disagreements will not divide, and the temptation to domineer and to offend the dignity of others will be overcome. So let us open our arms to Christ and to all our brothers and sisters. For that is where Jesus is.

Dear friends, today let us joyfully renew our consecration! Let us ask ourselves what “moves” our hearts and actions, what renewed vision we are being called to cultivate, and above all else, let us take Jesus into our arms. Even if at times we experience fatigue and weariness – this too happens – , let us do as Simeon and Anna did. They awaited with patience the fidelity of the Lord and did not allow themselves to be robbed of the joy of the encounter with him. Let us advance to the joy of the encounter: this is beautiful! Let us put the Lord back in the centre, and press forward with jo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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