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청소년과 살레시안

복음에서 거의 3분의 1은 비유이고, 성격과 패턴이 다른 요한복음을 제외하더라도 공관복음에만 40여 개의 비유가 전해진다. 비유는 우리를 옭아매고, 깜짝 놀라게 하고, 흔들어 의문을 품게 하고, 빠져들게 하고, 관심사를 살아 있게 하고, 생각에 거듭 몰두하게 하고, 뭔가 채워 넣어야 할 열린 페이지로 남게 하며, 조바심 나게 하고 깨어있게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총을 청하는 중에 학술적인 논증의 논리를 벗어나 공감과 직관의 언어로 예수님의 심중을 가늠하면서, 각자가 처한 처지에서 그 비유가 담는 깊은 뜻과 의미, 내지는 그 비유가 담는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많은 비유 중에서 마태오만이 단 두 문장, 단 한 절로 전하는 ‘숨겨진 보물’에 관한 비유가 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이 비유를 살레시오적으로 읽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살레시안은 과연 청소년이라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인가? 살레시안은 청소년이라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행여 누군가가 그 보물을 훔쳐 가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인가? 그 보물을 온전히 살 때까지 세상의 간교함을 피해 그 보물을 숨겨두려는 사람들인가? 살레시안은 그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못 이겨 청소년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인가? 살레시안은 그 보물을 사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아 마침내 그 밭을 사는 사람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살레시안 뿐만 아니라, 특별히 청소년들과 함께 교육적 삶을 살려는 모든 사람에게도 교육의 기본 원리를 밝혀주는 근본적인 물음들이 된다.

살레시안은 어느 날 우연히 돈 보스코를 만났고 청소년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이 아름답고 고귀한 삶이어서 그것에 일생을 건 사람들이다. 인생의 어느 한때에 솟구치던 열정으로 밭을 갈던 일상에서 청소년이라는 필연의 섭리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보물을 발견한 살레시안의 마음은 늘 바쁘다. 날로 사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청소년들을 해치려는 악의 유혹과 온갖 교묘한 술책들이 그 보물을 사기도 전에 훔쳐 가지나 않을까 두렵고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보물이 온전히 있어야 할 자리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혜롭게 숨기려 하거나, 서둘러 모든 것을 팔아서 보물을 손에 넣고자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살레시안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그리고 포기와 처분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물을 발견한 기쁨으로 마음이 들떠 그 자체에 모든 것을 걸고, 그 기쁨의 충동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초대받았음을 안다.

믿음과 회개의 여정

살레시안에게 “모든 것을 다 팔아”라고 할 때, 그것은 일 순간에 완료되는 거래나 대가의 지불, 혹은 처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생을 두고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길고 긴 신앙과 회심의 과정일 수도 있다. 한순간에 결정적으로 일어나는 회개도 있지만, 대부분 죽는 순간까지 기나긴 회개의 여정을 걷기 때문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하느님 간의 이야기도 긴 세월에 걸친 극적인 드라마이다. 일흔다섯 나이에 고향, 친족, 아버지 집을 떠나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는 명령(창세 12,1)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손과 약속의 땅, 축복을 위해 군소리 없이 길을 떠난다. 여든여섯에 얻은 이스마엘도 과분했는데, 아흔아홉에 이르러 이사악을 약속받고 비로소 정식으로 하느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으로 아브라함이 된다. 그러고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백 세에 ‘웃음’이라는 뜻을 지닌 이사악을 얻음으로써(창세 21,5) 하느님 말씀이 참된 현실임을 믿었지만, 이사악이 열두 살,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백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모리야 땅에서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청천벽력 같은 시험에 든다. 제물이 어디 있느냐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러나 가슴이 찢어지는 물음에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하고 대답하며, 부자父子는 계속 함께 산을 오른다. 그렇게 해서야 하느님께서는 37년간의 긴 시험을 마치셨고, 아브라함은 인류 역사 안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불린다.

믿음의 여정은 이렇게 길다. 그리고 결단을 요구한다. 믿음의 여정에서 인간은 철저히 자기를 버려야만 한다. 믿음의 여정은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으며, 그 여정 안에서 긴 세월을 견뎌낸 후에 이름을 얻는다. 믿음의 여정은 아프고 눈물이 나며, 예기치 않은 시험에 맞서고, 눈물 속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믿음의 여정은 철저히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맡기게 한다.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 발달 단계[1]

믿음의 여정을 두고 1981년 미국의 신학자 제임스 파울러James W. Fowler(1940~2015년)는 “신앙의 발달 단계(Stages of Faith:The Psychology of Human Develoment and the Quest for Meaning)”라는 이론을 발표한다. 이는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 콜버그Lawrence 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의 사회심리 발달 이론 등을 기초로 해 확립한 이론이다. 신앙이 출생‧유년기‧소년기‧청소년기‧청장년기‧노년기‧죽음과 같은 단계stage를 거치면서 “성숙‧발달‧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제임스 파울러의 이론에 의하면 신앙은 대개 ① 미분화된(undifferentiated) 신앙(0-2세) ② 직관적-투사적(intuitive-projective) 신앙(3-7세) ③ 신화적-문자적(mythic-literal) 신앙(7-11세) ④ 종합적-관습적(synthetic-conventional) 신앙(12세 이후) ⑤ 개별적-성찰적(individual-reflective) 신앙(21세 이후) ⑥ 통합적(conjunctive) 신앙(35세 이후) ⑦ 우주적‧보편적(universalizing) 신앙(45세 이후)과 같이 단계적 발달을 해가는 상황으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우주적 신앙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발달이 중단되고 그 단계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신앙 성장에 관한 돈 보스코의 발견과 확신[2]

제임스 파울러의 이론에 따라 개인별 신앙 성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구분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필자의 유년 시절부터 돌아보면, 어머니와 함께 매일 새벽 미사를 가던 시기가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두려움 속에서 어둡고 추운 새벽길을 가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내가 성당으로 가는 걸음 하나하나를 뒤에서 자로 재고 있다는 천사를 몰래 돌아보던 시기가 있었으며, 아주 엄한 수녀님으로부터 꼬집혀가며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위해 영화와 슬라이드를 보던 시기가 있었고, 성경 말씀에 미쳐서 신약성경의 첫 장 첫 줄부터 끝장 끝 절까지 구절마다 밑줄을 긋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다. 성인전을 탐독하고 선교사였던 원선오 신부님과 소신학생 친구들과 살았던 시절이 있었으며, 군대라는 죽음의 문화 속에서 공백기도 있었고, 유학과 방황, 통합과 분열이 혼재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서품과 서품 이후의 열정과 독선, 내면에 비판적 체계 수립을 해가던 시기를 지나 어느새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때에 이르렀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신앙 성장을 들여다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련의 발달 과정을 겪기도 하고, 발달은커녕 어떤 경우에 보물과도 같은 신앙의 기쁨을 지녔다가도 언제였냐는 듯이 아예 신앙을 저버리고 퇴보하는 예도 있으며, 어느 한 단계에 멈춰 평생 그것이 믿음 전부인 양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단계를 넘나들며 이렇게도 살았다가 저렇게도 살았다가 하기도 하며, 그렇게 우왕좌왕 살면서 어떤 단계는 일시적으로 한번 왔다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과 살면서 아이들의 신앙 발달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고 어떤 생각을 가졌었을까? 이는 돈 보스코의 예방 교육 원리인 ‘이성‧종교‧사랑’에서 ‘종교’에 해당하는 중요한 꼭지가 된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의 신앙이 단계별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발달한다고 보아서 아이들을 인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던 것일까? 돈 보스코의 신앙 발달을 보는 시각은 일련의 단계별 발달일까, 아니면 그때그때 아이들이 처한 발달 상태에 집중한 것일까?

신앙 여정을 ‘단계stage’로 본다는 것과 ‘상태state’로 본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단계’로 본다는 것은 개인이든 그룹이든 시기별로 이름을 매기는 것(labelling)이고, 내적 성장과 발달의 척도로서 긴 이정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상태’로 본다는 것은 신앙이 의식 상태의 개인적 체험 영역이고 이쪽 상태에서 저쪽 상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며, 한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거나 일시적인 상태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말한다. 돈 보스코는 당신이 만나는 청소년들의 신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상태 기반적으로 접근했고, 경험적이고 변환적인, 반드시 어떤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state-based approach that is experiential and transformative, but not stage-based) 관점을 가졌다.

그런 시각으로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 안에 숨겨진 ‘거룩함’이라는 보물을 발견했고, 이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분이다. 돈 보스코의 놀라운 직관력 중 하나는 청소년들의 영적 고귀함과 상태를 꿰뚫어 보았다는 점이다. 돈 보스코는 사비오, 마고네, 그리고 베수코 등의 전기를 통해서 그들이 비록 소년이지만 가장 높은 단계의 신앙 상태에 이르러있음을 증언한다. 돈 보스코는 앞서 얘기한 전형적인 신앙 발달 단계 이론에 의한 점진적 진보의 관점이 아니라 이미 고차원적인 신앙이라는 보물이 아이들 안에도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이러한 돈 보스코의 확신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성인聖人이 성인을 서로 알아본 것이다. 이런 점을 간과하면 돈 보스코가 도미니코 사비오를 비롯한 소년들에 관해 직접 저술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저술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피상적으로 될 수 있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오래전 돈 보스코가 남긴 소년들의 전기를 한번 읽고는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 오랜 전기들을 통해 청소년의 성덕에 관한 돈 보스코의 남다른 통찰력을 이해하기보다는 소년들과 함께 살았던 ‘영리한’ 돈 보스코가 아이들을 고무하고 자극하고자 다소 과장해서 기록했다고 생각했다. 문고판으로 출판된 소년들의 거룩함에 관한 전기傳記들은 청소년 성덕에 관한 돈 보스코의 통찰을 담은 학과 외 교육 과정이었고 숨겨진 과목이었다.

돈 보스코가 직접 기록한 도미니코 사비오의 전기[3]를 통해서 그의 점진적인 영적 성장의 과정을 전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도미니코 사비오가 이미 아주 높은 영적 상태에 있다는 것에 관한 증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전제하면 돈 보스코가 묘사하는 도미니코 사비오의 탈혼 상태, 도미니코 사비오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에서 초자연적인 인식에 이르고 있음을 증언하는 돈 보스코의 기록, 그리고 도미니코 사비오가 다른 아이들에게 보였던 영웅적인 태도 등이 쉽게 이해된다. 미켈레 마고네에 관한 기록[4]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오락 시간에 잠시 빠져서 성당에 가 있는 그를 발견했는데, 그가 깊은 기도에 잠겨있음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미켈레 마고네의 말처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달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달이 한 번도 창조주의 의도를 불순종하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 어린 녀석이, 매번 그분께 불순종하고 천 가지, 만 가지로 그분의 속을 상해드렸으니…열네 살 그 어린 나이의 소년이 이미 그런 지혜를 터득했다는 사실, 그렇게 아름다운 생각을 했다는 사실, 모든 것에서 창조주의 섭리에 순응하는 피조물들을 보며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를 깨우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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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에게 주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당부

여러분의 자녀에게 성인의 이름을 붙여주어

성인들이 여러분의 가정에 들어오시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가르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시편과 성가를 부르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수줍음을 넘어 영적으로 담대해지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양육된 자아를 소유할 수 있으면,

이는 그들의 평생 자산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어떤 행동이라도 그 행동이

지금과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보여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여러분의 직업이나 집,

재산이나 소유에 쏟는 정성보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더 많은 정성을 쏟으십시오.

(출처. www.takefiveforfaith.com에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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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ren are the treasure in every society. For a viable future, we have to invest deeply in their upbringing. Golden-mouthed Saint John Chrysostom offered tips on child-rearing:

Let the saints enter your home through the naming of your children.

Teach your kids Bible stories.

Raise them singing psalms and hymns.

Encourage in them a bold, not timid, spirit.

Disciplined self-possession will benefit them all their lives.

Show them actions have consequences, now and in eternity.

Finally, give more care to your children than you do for your job, home, wealth, and possessions.

(살레시오 가족-한국어판, 통권 168호,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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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임스 파울러의 이론 부분은 인터넷의 검색을 바탕으로 요약 서술하였다. [2] 이 부분은 살레시오회 몰타 관구 루이스 그렉Louis Grech 신부(1975년~현재)의 2018년도 박사학위 논문 ‘살레시안의 현대 청소년 영적 동반Salesian Spiritual Companionship with Young People Today’ 286-305쪽(4.4 Don Bosco’s Belief that Children can achieve Holiness), 그리고 ‘Accompanying Youth in a Quest for Meaning’, 37-52쪽에 주로 근거하고 있다. [3] 성 요한 보스코, 도미니코 사비오, 돈보스코미디어, 2009 [4] 성 요한 보스코, 하느님의 사랑스런 개구쟁이, 가톨릭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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