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15)

3616. 당신께서는 저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해 주실 수 있는 분(에페 3,20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3617. (‘저도 늙은 나이여서 원수도 기운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있긴 있습니다. 내 원수들이 어느 모로는 지쳐있지만 내 나이 때문이고, 약해졌으면서도 제 노년의 평안을 귀찮게 구는 갖가지 수작을 멈추지 않습니다.’-Sermones 128,9,11)

3618. 약을 먹듯이 음식을 들라는 이 말은…먹고 마시는 이유가 건강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스러운 쾌감이 마치 수행원인 양 따라붙고, 심지어 앞장서려 들기까지 하면서, 말로나 원의로는 제가 그것을 하는 것은 건강 때문이라는 데도 마치 쾌감이 먹고 마시는 이유가 되는 양 행세합니다.(‘우리는 실제로 몸에 충분한 데도 넉넉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쾌락을 위해 하면서도 건강의 일부라고 스스로 암시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쾌락과 필요의 경계가 어딘지 모르게 된다.’-Contra Iulianum 4,14,70)(10-31.44)

3619. “네 욕망을 뒤따라가지 말고 네 욕심을 피하라.”(집회 18,30)

3620. “우리가 먹는다고 해서 풍족해지는 것도 아니고 먹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덜할 것이 없다.”(1코린 8,8)

3621.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식품의 부정함이 아니고 욕심의 부정함입니다.…엘리야는 고기를 음식으로 해서 기운을 차렸고(1열왕 17,6), 요한은 놀라운 고행을 갖추고서 메뚜기같은 동물을 음식으로 먹이를 삼았어도 부정을 타지 않았습니다.(참조. 신명 14,9 마태 3,4-많은 교부는 특히 술과 고기를 금하는 글을 썼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10-31.46)

3622. 목구멍은 그 고삐를 풀었다 죄었다 조정하면서 유지해야 하는 까닭(10-31.47)

3623. (성가는 노랫말이 신도들의 지성을 묵상으로 이끌어야지 노래 가락이 회중의 심금을 사로잡아 열락에 취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암브로시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입장이 후대에도 전수된다.)

3624. 가급적 소리의 굴곡을 적게 해서 창하는 사람보다는 낭독하는 사람에 가깝게 소리를 내게 만들었습니다.…제가 저에게 의문점이 되고 말았으니 제 자신이 곧 제 번뇌입니다.(고백록 4,4.9 참조. ‘제 자신이 제게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었고ipse mihi magna quaestio 왜 슬퍼하는지, 왜 저를 이토록 심하게 흔들어놓는지, 제 영혼에 스스로 물었지만 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줄 몰랐습니다.’)(10-33.50)

3625. 오, 빛이여! 눈이 멀어서도 아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면서 토빗이 보던 빛이여!(토빗 4,5-6 참조) 이사악이 보던 빛이여! 육신의 광체들은 흐릿해지고 고령으로 감겨 두 아들을 분간 못하고 축복하였으면서도 실제로 축복하면서 분간해냈던 빛이여!(창세 27,1-40 참조. 이사악이 동생 야곱을 형 에사우로 알고 축복하였으나 그 실수로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던 하느님의 뜻을 분간해낸 셈이었다) 야곱이 나이가 너무 많아 눈이 멀었어도 아들들에게서 장차 올 백성의 예고된 족속들을 환한 마음으로 밝혀주던 빛, 요셉에게서 낳은 자기 손자들에게 신비롭게도 손을 엇갈려 얹었고, 애들의 아버지가 겉으로 바로잡아 주던 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안에서 분별한 대로 손을 얹으면서 그가 보았던 빛이여!(창세 48,3 및 49,28 참조) 그것이 빛입니다. 이 빛은 하나이므로 빛을 보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하나 됩니다.…제 발로 당신의 길에 들어서는 마당에 눈의 유혹에 걸려들어 제 발이 거기 묶일까 저항합니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없는 눈을 당신께 들어 올리면서 저의 발을 올무에서 빼내주시기 바라는 뜻에서 무형의 눈을 당신을 향해 들어 올립니다. 그 발이 자꾸만 걸려들어 당신께서 연달아 발을 빼내 주십니다. 저는 사방에 흩어진 속임수에 걸려들기 일쑤인데 당신께서는 쉴 새 없이 빼내주십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당신께서는 잠들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않으시는 까닭입니다.(10-34.52)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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