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 밤 미사 ‘나’해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by Cosimo Amedeo Eliodoro

오늘 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위대한 예언이 성취됩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인생에서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는 특별한 사건이며, 모든 것을 바꾸고, 생각지도 못한 힘을 내게 하며, 불편과 피로, 밤샘을 뛰어넘게 하는 특별한 일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것 같은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기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매년 우리가 내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분 안에서 모든 시련에 맞설 힘을 얻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탄생은 우리를 위하고 저를 위한 것이며 여러분을 위한 것이고 우리 각자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이 거룩한 밤에 우리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라는 이사야 예언을 들었고, 화답송에서는 “오늘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태어나셨다.”(화답송 후렴)라고 반복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다”(티토 2,14-제2독서)라고 바오로 사도께서 선포하셨고,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복음의 천사가 알려주었습니다. 저를 위하여,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말입니다.

이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아드님, 본래 복되신 분께서 우리가 복된 자녀들이 되게 하려고 선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요!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보고 놀라시면서 “너는 놀라움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 실망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서는 “아니야, 너는 나의 자녀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뭔가 부적절하다는 공포, 시련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십니다. 그저 말씀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재탄생의 출발점을 기억하라고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과 같은 아들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모든 재탄생의 출발점입니다. 이것이 꺼지지 않는 우리 희망의 심장이며, 존재를 지탱하도록 꺼지지 않는 핵심입니다. 우리의 자질과 결점 밑바닥에는 과거의 상처와 실패,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보다 더 강한 진리가 있으니 이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상無償(공짜)입니다. 이 밤은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은총입니다. 모든 것이 선물입니다. 선물은 공짜입니다. 우리 각자의 노력이 필요 없는 순수한 은총입니다. 오늘 밤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라고 바오로 사도가 말해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다른 무엇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기쁨의 모든 것인 당신 자신의 외아드님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배은망덕과 수많은 우리 형제들을 향한 불의를 볼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주시고 아직도 우리를 믿어주시는 것이 과연 잘하시는 일인지 의심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과대평가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분명 과대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그렇게도 다른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는 그분의 비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내면으로 치유하여 주시는 유일한 방법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할 줄 모르는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당신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받아들일 때만 우리가 나아질 것임을 아십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삶을 바꾸고, 더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낫게 하며, 낙담과 분노, 그리고 끊이지 않는 불평에서 우리를 해방하십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어두운 마구간 가난한 구유에 하느님의 아드님이 계십니다. 또 다른 의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왜 밤중에 빛으로 오신 것일까?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도 아니고 아름다운 왕궁도 아닌 곳에서 마땅한 거처도 없이 가난과 거부 속에서 오신 것입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의 상태를 어디까지 사랑하는지 보여주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비참한 상태까지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자 하는 당신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버림받은 모든 이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시고자 당신이 몸소 버림받은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약하고 힘없는 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시려고 그런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중요한 것 하나를 발견하라고 그렇게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처럼 우리와 함께 우리의 가난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구원을 마구간의 구유에 두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무서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자비가 우리의 가련함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입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라고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것이 표징입니다. 구유에 있는 아기는 또한 우리를 위한 아기이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아기입니다. ‘빵집’을 뜻하는 베들레헴, 구유에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먹는 빵처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그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해 주십니다. 공짜이며 지칠 줄 모르고 구체적인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흐르도록 해야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저 재미, 성공, 세속적인 것으로 얼마나 허기져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을 배부르게 하지 못하고 공허함만을 남기는 음식을 얼마나 먹어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 1,2-3) 하며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한탄하셨습니다. 정말입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베들레헴의 구유를 잊고 수많은 허영의 구유에 우리를 내맡기고 맙니다. 한없이 가난하면서도 사랑으로 부유한 그 구유는 삶의 자양분이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를 내맡기고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십니다. 그분, 하느님의 말씀, 아기는 말씀하시지 않지만, 생명을 주십니다. 그 대신 우리는 자주 말만 많이 하면서 ‘선’에 대해서는 ‘ㅅ’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갓난아기를 둔 이들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 압니다. 먹이고, 보살피고, 씻기고, 가끔은 뭐가 필요한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부서질 것 같은 그 여린 모습과 필요를 보살펴야 합니다. 아기는 사랑을 주면서도 사랑을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를 보살피라고 촉구하시기 위해 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의 여린 울음은 우리의 변덕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 알게 해 줍니다! 무장하지 않고서 무장을 해제하도록 하는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우리 자신을 위해 울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위로하기 위한 시간임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섬기면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위해 가난하고 궁핍한 우리 곁에 거처를 마련하십니다. 오늘 밤은 시인이 “하느님의 처소가 내 곁에 있다. 가구는 사랑이다.”(E. Dickinson, Poems, XVII)라고 말한 그대로입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제가 아들이 되게 하신 분은 예수님,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꿈꾸는 제 모습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이 모습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십니다! 구유의 아기이신 당신을 품에 안고 저의 인생을 다시 품에 안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당신을 알아모셔 저도 저의 생명을 당신께 바치고자 합니다. 저를 구하시는 분은 당신이시니 제가 섬기도록 저를 가르쳐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이 밤에 모두가 저의 형제들임을 아시니, 저를 혼자 버려 두지 마시고 제가 당신의 형제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교황 프란치스코,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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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ENNITÀ DEL NATALE DEL SIGNORE

In questa notte si compie la grande profezia di Isaia: «Un bambino è nato per noi, ci è stato dato un figlio» (Is 9,5).

Ci è stato dato un figlio. Si sente spesso dire che la gioia più grande della vita è la nascita di un bambino. È qualcosa di straordinario, che cambia tutto, mette in moto energie impensate e fa superare fatiche, disagi e veglie insonni, perché porta una grande felicità, di fronte alla quale niente sembra che pesi. Così è il Natale: la nascita di Gesù è la novità che ci permette ogni anno di rinascere dentro, di trovare in Lui la forza per affrontare ogni prova. Sì, perché la sua nascita è per noi: per me, per te, per tutti noi, per ciascuno. Per è la parola che ritorna in questa notte santa: «Un bambino è nato per noi», ha profetato Isaia; «Oggi è nato per noi il Salvatore», abbiamo ripetuto al Salmo; Gesù «ha dato se stesso per noi» (Tt 2,14), ha proclamato San Paolo; e l’angelo nel Vangelo ha annunciato: «Oggi è nato per voi un Salvatore» (Lc 2,11). Per me, per voi.

Ma che cosa vuole dirci questo per noi? Che il Figlio di Dio, il benedetto per natura, viene a farci figli benedetti per grazia. Sì, Dio viene al mondo come figlio per renderci figli di Dio. Che dono stupendo! Oggi Dio ci meraviglia e dice a ciascuno di noi: “Tu sei una meraviglia”. Sorella, fratello, non perderti d’animo. Hai la tentazione di sentirti sbagliato? Dio ti dice: “No, sei mio figlio!” Hai la sensazione di non farcela, il timore di essere inadeguato, la paura di non uscire dal tunnel della prova? Dio ti dice: “Coraggio, sono con te”. Non te lo dice a parole, ma facendosi figlio come te e per te, per ricordarti il punto di partenza di ogni tua rinascita: riconoscerti figlio di Dio, figlia di Dio. Questo è il punto di partenza di qualsiasi rinascita. È questo il cuore indistruttibile della nostra speranza, il nucleo incandescente che sorregge l’esistenza: al di sotto delle nostre qualità e dei nostri difetti, più forte delle ferite e dei fallimenti del passato, delle paure e dell’inquietudine per il futuro, c’è questa verità: siamo figli amati. E l’amore di Dio per noi non dipende e non dipenderà mai da noi: è amore gratuito. Questa notte non trova spiegazione in altra parte: soltanto, la grazia. Tutto è grazia. Il dono è gratuito, senza merito di ognuno di noi, pura grazia. Stanotte, ci ha detto san Paolo, «è apparsa infatti la grazia di Dio» (Tt 2,11). Niente è più prezioso.

Ci è stato dato un figlio. Il Padre non ci ha dato qualcosa, ma il suo stesso Figlio unigenito, che è tutta la sua gioia. Eppure, se guardiamo all’ingratitudine dell’uomo verso Dio e all’ingiustizia verso tanti nostri fratelli, viene un dubbio: il Signore ha fatto bene a donarci così tanto, fa bene a nutrire ancora fiducia in noi? Non ci sopravvaluta? Sì, ci sopravvaluta, e lo fa perché ci ama da morire. Non riesce a non amarci. È fatto così, è tanto diverso da noi. Ci vuole bene sempre, più bene di quanto noi riusciamo ad averne per noi stessi. È il suo segreto per entrare nel nostro cuore. Dio sa che l’unico modo per salvarci, per risanarci dentro, è amarci: non c’è un altro modo. Sa che noi miglioriamo solo accogliendo il suo amore instancabile, che non cambia, ma ci cambia. Solo l’amore di Gesù trasforma la vita, guarisce le ferite più profonde, libera dai circoli viziosi dell’insoddisfazione, della rabbia e della lamentela.

Ci è stato dato un figlio. Nella povera mangiatoia di una buia stalla c’è proprio il Figlio di Dio. Sorge un’altra domanda: perché è venuto alla luce nella notte, senza un alloggio degno, nella povertà e nel rifiuto, quando meritava di nascere come il più grande re nel più bello dei palazzi? Perché? Per farci capire fino a dove ama la nostra condizione umana: fino a toccare con il suo amore concreto la nostra peggiore miseria. Il Figlio di Dio è nato scartato per dirci che ogni scartato è figlio di Dio. È venuto al mondo come viene al mondo un bimbo, debole e fragile, perché noi possiamo accogliere con tenerezza le nostre fragilità. E scoprire una cosa importante: come a Betlemme, così anche con noi Dio ama fare grandi cose attraverso le nostre povertà. Ha messo tutta la nostra salvezza nella mangiatoia di una stalla e non teme le nostre povertà: lasciamo che la sua misericordia trasformi le nostre miserie!

Ecco che cosa vuol dire che un figlio è nato per noi. Ma c’è ancora un per, che l’angelo dice ai pastori: «Questo per voi il segno: un bambino adagiato in una mangiatoia» (Lc 2,12). Questo segno, il Bambino nella mangiatoia, è anche per noi, per orientarci nella vita. A Betlemme, che significa “Casa del pane”, Dio sta in una mangiatoia, come a ricordarci che per vivere abbiamo bisogno di Lui come del pane da mangiare. Abbiamo bisogno di lasciarci attraversare dal suo amore gratuito, instancabile, concreto. Quante volte invece, affamati di divertimento, successo e mondanità, alimentiamo la vita con cibi che non sfamano e lasciano il vuoto dentro! Il Signore, per bocca del profeta Isaia, si lamentava che, mentre il bue e l’asino conoscono la loro mangiatoia, noi, suo popolo, non conosciamo Lui, fonte della nostra vita (cfr Is 1,2-3). È vero: insaziabili di avere, ci buttiamo in tante mangiatoie di vanità, scordando la mangiatoia di Betlemme. Quella mangiatoia, povera di tutto e ricca di amore, insegna che il nutrimento della vita è lasciarci amare da Dio e amare gli altri. Gesù ci dà l’esempio: Lui, il Verbo di Dio, è infante; non parla, ma offre la vita. Noi invece parliamo molto, ma siamo spesso analfabeti di bontà.

Ci è stato dato un figlio. Chi ha un bimbo piccolo, sa quanto amore e quanta pazienza ci vogliono. Occorre nutrirlo, accudirlo, pulirlo, prendersi cura della sua fragilità e dei suoi bisogni, spesso difficili da comprendere. Un figlio fa sentire amati, ma insegna anche ad amare. Dio è nato bambino per spingerci ad avere cura degli altri. Il suo tenero pianto ci fa capire quanto sono inutili tanti nostri capricci; e ne abbiamo tanti! Il suo amore disarmato e disarmante ci ricorda che il tempo che abbiamo non serve a piangerci addosso, ma a consolare le lacrime di chi soffre. Dio prende dimora vicino a noi, povero e bisognoso, per dirci che servendo i poveri ameremo Lui. Da stanotte, come scrisse una poetessa, «la residenza di Dio è accanto alla mia. L’arredo è l’amore» (E. Dickinson, Poems, XVII).

Ci è stato dato un figlio. Sei Tu, Gesù, il Figlio che mi rende figlio. Tu mi ami come sono, non come mi sogno di essere; io lo so! Abbracciando Te, Bambino della mangiatoia, riabbraccio la mia vita. Accogliendo Te, Pane di vita, anch’io voglio donare la mia vita. Tu che mi salvi, insegnami a servire. Tu che non mi lasci solo, aiutami a consolare i tuoi fratelli, perché Tu sai da stanotte sono tutti miei fratelli.(Giovedì, 24 dicembr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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