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면聖面과 장미꽃 소나기

성녀 소화 데레사, 예수님의 작은 꽃,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성녀의 가르멜회 수녀로서 공식적인 수도명은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사 수녀(Thérèse of the Child Jesus and of the Holy Face)’이다. 성녀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이름을 다시 짓는 성경의 전통에 따라서 수도회에 입회할 때 이와 같은 이름을 선택하였다. 이 호칭은 성녀 데레사의 어린 시절부터 1897년 그녀의 임종 때까지 그녀의 자서전이나 편지, 그리고 여러 다른 자료에서 계속 발견된다. 성녀가 입회한 가르멜 수녀회가 십자가의 길에서 피땀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베로니카의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졌다는 전승에도 크나큰 신심을 지녔었기 때문에 성녀가 수도명을 선택하면서 ‘성면聖面의 데레사’를 붙여 그렇게 불리고 싶어했다는 측면도 있다.

성녀는 9년 반의 짧고도 평범한 수도원의 삶을 살았으나 ‘영적인 천재’였다. 사망 후 수많은 은총의 표지를 거침없이 보여준 까닭에 성녀의 시성은 사후 50년이 지나야 한다는 교회의 관례에도 불구하고 교황 비오 11세께서 데레사를 ‘성덕의 으뜸이며 기적의 천재’라고 부르며 사후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성녀로 선포했다.

성녀의 성면聖面 신심

1873년 1월생인 성녀 소화 데레사는 1897년 9월 30일에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1년도 채 안 된 1898년 5월 28일 이탈리아 사진작가였던 세콘도 피아Secondo Pia가 토리노 대성당에 모셔져 있던 예수님의 수의를 첫 번째로 촬영하면서 수의의 비밀을 밝히고, 수의에 찍힌 예수님의 얼굴을 온 세상에 알린 바 있지만, 사실 성녀의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에 대한 신심은 유럽에서 이미 그 당시 널리 퍼져있던 신심이었다. 사진에서 성녀가 들고 있는 예수님의 얼굴 모습은 매년 성금요일에 베드로 대성당에서 공경하던 성화를 ‘투르의 거룩한 분(the holy man of Tours)’ 혹은 ‘성면의 사도(the apostle of the Holy Face)’라고까지 불리던 레옹 뒤퐁Leon Papin-Dupont(1797~1876년)이 로마에서 프랑스 투르 시로 가져온 성화의 복사본이다. 뒤퐁씨 사후 그분의 미망인이었던 부인이 그 성화를 모시고 집에서 기도하던 중 기적을 체험했다고 알려진다. 이로부터 투르의 가르멜회 마리 드 생 피에르Marie de Saint Pierre(1816~1848년) 수녀가 예수님의 성면에 대한 신심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리지외 대성당 한쪽에 성녀의 삼촌인 이시도로Isidore Guerin가 설치했다는 성면의 그림에 대한 안내 표지, 성녀가 임종했던 간호실 커튼에 옮겨 달았다는 그림이라는 설명과 기도문들을 우측 영어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린 데레사가 부모님과 살았던 레송Lesson 마을의 루이 마르탱Louis Martin 가족 역시 이런 신심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한때 수도회 입회를 꿈꾸었으나 시계 제조업에 종사했던 데레사의 아버지가 ‘투르의 재건 형제회(Fraternity of Reparation of Tours)’ 회원으로 활약할 당시 데레사는 열두 살이었다.

성녀가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게 되었을 때 ‘예수 아기와 성면의 데레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연구나 저작물을 참조할 수 있으나 그중 하나로서 페드로 테이세리아 카발칸테Pedro Teixeira Cavalcante 신부의 <살과 뼈의 작은 성녀 데레사(Little Saint Thérèse in Flesh and Bone)>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1877년 성녀가 네 살 반이었을 때 성녀는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 이후로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모든 것이었고, 어린 성녀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나의 임금님(my loved king)’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면서 아버지 역시 동맥 경화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1888년 2월에 급기야 가족들이 치료를 위해 캉Caen에 있는 병원에 아버지를 입원하도록 해야만 했다. 그렇게 투병 중인 아버지를 두고 성녀는 같은 해 1888년 4월 9일 15세의 나이로 리지외에 있던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했었다.

*2015년 10월 18일 일요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다섯 딸을 수녀원에 보냈던(넷은 가르멜 수녀회, 하나는 방문 수녀회) 소화 데레사 성녀의 부모 루이 마르탱Louis Martin(1823~1894년)과 마리 젤리 게랭 마르탱Marie Zélie Guérin Martin(1831~1877년) 부부를 성인품에 올렸다. 그리고 결혼생활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진행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기간 중이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그리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지상에서의 소명을 거룩하게 완수한 이 거룩한 부부는 이로써 가톨릭교회 역사상 함께 시성된 최초의 부부가 되었다. 동시에 딸과 함께 성인의 반열에 오른 최초의 가족이 되었다. 2008년 10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복된 지 7년 만에 시성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축일은 7월 12일이다.

성녀의 내면을 엿보고 싶어 하는 전기 작가들과 함께 살펴볼 때, 성녀 자신이 “나의 안식과 휴식”이라고 불렀던 영적인 힘의 원천이 예수님의 얼굴에 나타난 상처와 고통에 대한 묵상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에는 어느 작가에게서나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뒤늦게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언니 셀린느Celina(수도명은 제네비브Genevieve)는 앞서 떠난 동생을 두고 “저는 토리노의 수의에 따라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재현하고자 하는 저의 계획에 영감을 주었던 사람이 하느님의 종 데레사였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말하며, 또한 성녀 자신도 “저의 어린 시절과 성면은 하나같이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모든 것, 곧 겸손, 고통, 사랑입니다.”라고 기록한다. 제네비브 수녀는 데레사의 시복 증언에서 “우리 주님의 거룩한 얼굴은 데레사에게 그녀 자신과 다른 이로부터 자신을 숨기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묵상하며, 그녀는 겸손을 들이마시고, 고통에 대한 사랑, 희생에 대한 너그러움, 영혼을 위한 열정, 창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배웠으며, 우리가 본 대로 그녀가 실천하였던 활동적이고 강하며 모든 용맹한 덕들을 체득했습니다.”

성녀는 종종 이사야 예언서 53-60장에 서술되는 이른바 ‘주님의 종’에 관한 묘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굴욕과 고통의 성면을 묵상하곤 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은 성녀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위해 필사한 이사야서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떼처럼 딜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1-2.5-7)」

성면에 관한 데레사 성녀의 생각과 느낌은 공동체의 요청으로 쓰게 된 그녀의 편지나 시, 기도문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녀는 그녀의 수련자들을 위하여 주님의 거룩한 얼굴에 관한 아름다운 봉헌문을 직접 쓰기도 했으며, 여러 곳에서 적어도 59회 이상 직접 ‘아기 예수와 성면의 데레사’라고 서명하기도 하였다.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에 관한 성녀의 신심을 엿볼 수 있는 인용문들이다: “아, 저는 예수님의 얼굴처럼 제 얼굴이 진정으로 숨겨져 지구상의 그 누구도 저를 알아볼 수 없기를 바랍니다.” “저의 흠숭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제게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내면의 사랑이 제게 사랑을 사랑으로 갚도록 부추깁니다.” “저는 무능력하고 약한 어린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 예수님, 당신의 사랑에 저를 봉헌하는 담대함을 저에게 주는 것은 저의 약점 자체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초상화를 남기실 때 당신의 눈을 아래로 향하게 하신 것은 참 잘하신 일이었습니다. 눈은 영혼의 거울이므로 만약 우리가 그분의 영혼을 볼 수 있었더라면 기쁨에 겨워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면이 제 인생에서 저에게 얼마나 좋은 일을 하셨는지요!” “주님, 저희는 고통과 멸시, 무시를 받아 일그러진 얼굴을 지니게 된 고통받는 이들을 당신께 맡겨드리나이다.”

아녜스 원장 수녀(성녀의 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신심조차도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에 대한 그녀의 신심에는 견줄 바가 못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유진이라는 가르멜 수녀 역시 <나와 함께 자라난 드높은 사랑(Tour amour a grandi avec moi)>이라는 저술을 통해서 소화 데레사가 남매지간이었던 제네비브 수녀와 나눈 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제 누이는 누군가가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성면에 대한 신심을 지니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어요.” 데레사 성녀의 성면에 관한 신심은 오로지 하느님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페드로 테이세리라 신부는 “카르모 성당 예수님의 성면이 걸려있는 곳 앞에는 항상 촛불이 켜져 있었으며 아침 기도 중에 성녀는 뜨거운 마음으로 그 거룩한 얼굴을 바라보는 데에 절대 지치지 않았다”라고 기록한다. 그뿐만 아니라 생애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던 1897년 8월 자매 수녀는 성녀가 앓고 있는 방으로 그 성화를 옮겨 걸었는데, 8월 5일 성녀는 “오, 거룩한 얼굴이 제 인생에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해 주셨는지요! 저는 그 얼굴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로부터) 저는 많은 유혹을 물리친답니다.”라고 말한다. 1897년 9월 30일 목요일 저녁 7시 20분 십자가를 바라보며 “오,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숨을 거두었다.

데레사 수녀의 사후 그녀에 관한 연구나 증언에 의해서 그녀가 예수님의 성면에 관한 특별한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리지외의 카르모 성당에 있는 한쪽 방에는 성녀와 관련된 여러 유품들이 수집되어 있는데, 그 유품 중에는 성녀가 자기 어머니를 위해 만든 숄도 있다. 장 프랑수아Jean François가 <리지외의 데레사> 6판에 따르면 성녀가 자기 가족임을 상징하는 꽃이나 성면을 그렸다는 기록을 남긴다. 또한 1893년 성녀는 자기 성무일도서에서 읽는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서 한쪽 귀퉁이에 성면을 그려 넣기도 하였으며 코트의 소매 끝에 스스로 성면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익명의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성녀 데레사의 온 삶과 메시지를 요약하고 정의할 수 있는 핵심 단어 하나는 사랑이다. 성녀 데레사에게 하느님 사랑은 예수님 사랑이다. 예수님이야말로 그녀의 신심이요 열정이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성녀를 뜨겁고도 진지한 성모님 사랑으로 이끌었다. 성모님을 향한 이와 같은 사랑은 이미 요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 공경을 마르탱 가족은 결코 멈춘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에는 성모님의 달에 성모님께 봉헌된 작은 제단이 있었다.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던 열 살에 이미 그녀는 성모님의 딸이 되어 있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아녜스 원장 수녀는 <마지막 대화(Last Conversations)>에서 “기도나 묵상, 말씀에서 성녀는 항상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과 함께했다.”라고 기록한다. 성녀께서 마지막 고통을 겪고 있을 무렵 침대 곁에 있던 이들은 성녀가 “오 지극히 선하신 저의 동정녀 성모 마리아님, 오시어 저를 구해주소서.…성 베르나르도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성모님을 통해서였으니 이제 우리가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께로 가야 한다.’라고 가르쳐주신 것은 참으로 진실이었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참조. Pedro Sisnando Leite, Devotion to the Holy Face of Jesus, Fortaleza / Cearà, 2011년, 41-50쪽)

장미꽃 소나기(shower of roses)

말 그대로 풀면 ‘장미꽃 샤워’, ‘장미 비(雨)’, ‘장미꽃 소나기’라는 이 표현은 성녀에게 단순한 은유적 표현이면서도 실제적인 표현이고 성녀의 친구들에게는 특별한 체험이다. 수녀원의 간호실에서 임종할 때 성녀가 누워있던 방의 창문 밖에는 장미 넝쿨이 한창 장미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성녀는 장미를 사랑했다. 성녀는 어린 시절 성체 앞에 장미 꽃잎을 뿌리기도 했다. 성녀는 조용하게 숨어 부드러운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 하느님께서 자기를 위해 위대한 일을 준비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었다. 죽어가면서도 성녀는 그때부터 하느님과 함께 충만한 삶으로 들어가는 시작이라고 믿으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가 죽은 다음 저는 장미꽃 소나기가 내리도록 할 거예요. 저는 천국에서 이 땅에 유익한 일을 하면서 지낼 것입니다. 저는 작은 성인의 무리를 많이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저의 사명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에는 실제로 장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장미가 만발한 곳곳에서, 때로는 장미가 보이지는 않더라도 장미의 향기가 은은하게 번지기도 했다.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질병들이 그녀를 통한 전구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으며 많은 기적적인 체험들이 그녀를 통한 전구 덕분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전구 아래 내면의 평화를 얻었으며 영적인 내면의 부드러움과 신뢰를 되찾았다.

성녀 데레사의 이름 아래 행해진 많은 기적이나 활동이 실제의 장미와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녀의 천상 전구를 구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체험을 한다. 기적과 치유, 내면의 평화는 장미라는 꽃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성녀 데레사 자신이 감각과 정신의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도 실제로는 거의 위로를 받지는 못하고 살았다. 데레사 성녀를 따르는 이들이나 성녀의 친구들은 기도의 응답이라는 장미의 위로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통해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무엇인가가 변화되었다는 체험을 종종 한다.

2023년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성녀 데레사 탄생 150주년을 맞아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향한 신뢰에 관해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주신 교황 권고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C’est la Confiance)>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고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바로 신뢰입니다.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있게 도와주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그분 손에 맡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신뢰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선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랑과 활력의 위대한 원천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데레사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날의 고통 속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직 사랑만을 의지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뿐입니다. 신뢰는 장미꽃을 피우고 하느님의 차고 넘치는 사랑이 흘러나오듯이 장미꽃들을 쏟아붓습니다. 따라서 무상의 선물이며 은총의 값진 선물과 같은 이러한 신뢰를 청하여 우리 삶 속에 복음의 길이 열릴 수 있게 합시다.(교황 프란치스코,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 제45항)」

교황님께서는 “저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막막할 때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께 여쭙고, 어떤 문제가 되었든 성녀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사고 청하면서 장미 한 송이를 보내달라고 청하는 습관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좋아하는 성인들http://benjikim.com/?p=11552)

2 thoughts on “예수 성면聖面과 장미꽃 소나기

  1. 어렸을 적 집안에서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성녀 데레사 상본을 본 기억이 납니다.

    오롯이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기도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밤에 자기 전
    저도 막막한 일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교황님 처럼 테레사 성녀께
    기도해볼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2. 성면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랑의 사명을 키운 성녀처럼 저 또한 고통받는 주님의 성면을 바라보며 사랑의 마음을 키워보리라 다짐해봅니다. 단순한 마음으로 성인들께 전구를 청하시는 교황님의 무거운 어깨의 짐을 소화데레사 성녀께서 사뿐히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