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목자

by Emil Ludwig Brun, sleeping shepherd boy

우리에게 낯선 베니노라는 목자가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사람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고자 하던 날,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목자 중 하나이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구유를 장식하거나 연출하면서 그의 모습을 구유의 한쪽에 놓고자 했고, 성탄의 장면을 그리는 이들도 그를 그리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성탄 축제에서 만나는 구유 꾸미기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을 찾아오시고자 하던 날을 기리는 다양한 이들의 신심이 집대성되고 관습화된 풍성한 모자이크다. 베니노는 17세기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의 구유에 등장한다.(참고로, 구유에 관해 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전통은 10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루카 2,8) 할 때의 목자 중 하나가 베니노이다. 그는 자고 있다. 꿈을 꾸고 있다. 그는 구유에서 늘 한쪽 귀퉁이에서 잔다. 자고 있는 그를 지긋이 지켜보는 수염 많은 노인 목자가 있고, 그의 옆에는 7가지의 대죄大罪를 상징하는 일곱 마리의 염소들도 있으며, 열두 달을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양들도 있다. 그 옆에는 우물이 보인다. 우물은 산 자와 죽은 자, 빛과 어둠 사이의 통로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는 졸졸 소리를 내며 시내가 흐른다. 흐르는 물은 시간이다. 아기가 누운 곳 곁에는 계절이 바뀌듯 다양한 인물들이 배치된다.

양치기 목자들은 밤을 지새우며 교대로 양을 지킨다. 천사들이 다가왔을 때, 자고 있는 베니노를 보면 우리는 금세 “깨어있어라”(마태 24,42.43;25,13;26,38) 하던 말씀과 “졸다가 잠이 들었다.…그날과 그 시간을 모른다.” 하던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를 떠올린다. 하지만 베니노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일찍부터 목자의 소임을 배우던 나이 어린 목자여서 어른들이 그만 자라고 하는 바람에 곤히 잠들었던 베니노일 수 있고, 아니면 이미 자기 순번의 소임을 마치고 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든 저렇든 ‘잠’은 육체적인 미완이면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정신적 미성숙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앞에 선 인간은 그렇게 늘 준비되지 않았었다. 아니 언제나 준비되지 않았다.

놀란 목자들 사이에서 태연하게 잠이든 베니노를 볼 때, 그는 메시아의 탄생 소식에 도무지 놀랄 이유가 없는 이들의 상징일 수 있고, 그가 꾸었던 꿈 때문에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된 현실의 선구자적인 상징일 수 있다. 메시아 탄생의 순간에 잠이 든다는 것은 세상의 고단함, 쓸데없는 세상사의 변명과 피곤함일 수 있겠지만, 메시아를 꿈꾸며 기다리는 무의식적인 기대일 수도 있다. 그럴 때, ‘꿈’은 본성적으로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영혼이 나아가는 길의 서곡일 뿐 아니라 창조 행위 그 자체이다. 그럴 때, ‘꿈’은 성탄절의 신비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의 준비이며, 개인적인 영적 재탄생이다. 베니노가 잠든 그 “둘레”에 비친 빛에서 베니노가 제외될 수 없었다는 사실은 가련한 인간들에게 퍽 위안이다. 죽음이 부활을 위한 것이듯 베니노의 ‘잠’은 새로운 탄생의 준비이기 때문이다. 성탄은 어쩌면 꿈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신비요 사실이다. 평화롭게 잠들어있는 베니노 곁에 구세주의 성탄이 온다. 베니노는 아기 예수님을 꿈에서 만났을까 깨어서 만났을까? 자고 있는 베니노에게 비친 천사의 빛이 베니노를 이미 흔들어 깨웠을까? 잠에서 깨어난 베니노는 세상 모두에게 새로운 질서이며 새로운 시작이다.(*이미지들-구글)

2 thoughts on “잠자는 목자

  1. 성탄 구유를 구성하는 새로운 인물의 의미를 알게되어 기뻐요. 앞으로 성탄 구유가 더욱더 아름답게 신비롭게 보일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Merry Christmas!

  2. 아기 예수님을 깨어 만나고, 볼 수 있길 바랍니다.
    베니노를 찾아서. 베니노에게도 빛이.
    그 빛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러
    오심에 감사합니다.
    잠자는
    기다림이 아니라
    깨어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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