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회와 예방교육

우리가 코비드의 와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몇 개를 예로 들어보라 할 때, 그중에는 ‘예방’ 혹은 ‘예방 접종’이라는 말이 우선순위에 들지 않을까? 우리는 그 말들을 지겹게 들었고, 아직도 듣고 있으며, 거의 매일 그 말들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거듭 접한다. 주변에서 ‘예방의학豫防醫學’이라는 말도 곧잘 듣는다. 이를 영어로는 preventive healthcare 또는 prophylaxis라고 한다. 이는 『개인 또는 특정 인구집단의 건강과 안녕(well-being)을 보호, 유지, 증진하고 질병의 발생·경과·평가·성쇠와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연구하여 장애와 조기 사망을 예방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다.』[1] 이러한 ‘예방의학’이라는 말처럼 살레시오회에서는 ‘예방교육’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앞서 인용한 사전적 문구를 그대로 이용하여 예방교육을 『살레시오는 청소년의 영·육 간 건강과 안녕을 보호, 유지, 증진하고, 청소년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제반 내용의 발생·경과·평가·성쇠와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청소년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이 삶이 영원으로까지 이어지기를 꿈꾼다.』라고 한다면 억지가 될까?

예방교육 시스템

‘예방교육’이라는 말은 돈 보스코께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 교육적 내용을 설명하실 때 몸소 사용한 이탈리아 말의 ‘시스테마 프레벤티보sistema preventivo(영어. preventive system)’를 옮긴 말이다. 이를 그대로 직역하면 ‘예방 체계’ 혹은 ‘예방 시스템’일 것이다. 중간에 ‘교육’이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돈 보스코가 교육자로서 사셨던 삶 전체를 의미한다는 뜻에서, 그리고 돈 보스코를 닮아 살려는 살레시안의 삶이 교육 현장을 떠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스템’이라는 말이 우리말에서 ‘삶’을 즉각 연상하기에 어려운 외래어이므로 통상 ‘교육’이라는 말을 추가하여 단순히 ‘예방교육’이라 하거나 ‘예방교육 시스템’이라 말한다. 혹자는 이를 ‘예방교육 영성’이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스템’이나 ‘체계’를 자칫 ‘교육을 위한 제도’ 혹은 ‘제도 교육’처럼 이해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살레시오회는 어려움에 부닥친 청소년들과 함께하기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공교육과 같은 ‘제도 교육’도 제도 교육이지만, ‘대안 교육’ 쪽에 무게와 비중을 두고자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할 수 있다.[2] 물론, 교육자와 학습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자체를 과연 설명서를 갖추어 시스템화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예방’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도 ‘체계’라는 말과 연결되어 ‘예방접종기록과 예방접종질병 감시 체계’니 ‘건강증진 및 질병 예방을 위한 통합적 건강 관리체계’, ‘전염병 예방체계’, ‘재난 예방체계’, ‘식·의약 위해危害 예방체계’, ‘학교폭력 진단 및 예방체계’, ‘위기 청소년을 위한 학업중단 예방체계“ 등과 같은 말로 이미 우리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말이다. 이는 ‘예방’을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차단하자는 뜻으로 ‘~으로부터의 방지防止나 보호, 예방’과 같은 방어적 개념이다. 그러나 돈 보스코의 교육에서 말하는 ‘예방’은 오히려 인간 본연의 마음자리에 신적神的인 존엄성을 지닌 선善을 가득 채우거나, 혹은 원래 담겨 있는 온전한 선을 일깨워 부정적否定的인 것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선善 자체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기도한다는, 또 그렇게 되도록 내·외적 체계를 수립한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념이다.

돈 보스코는 여러 번 자기의 교육 시스템을 설명하였는데, 직접 ‘두 가지 교육 시스템’이라는 말로 자신의 ‘예방교육’을 설명한 바 있다. 『…귀하께서는 두 가지 교육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하나는 억압적인 시스템repressive system이고 다른 하나는 예방적인 시스템preventive system입니다.[3] 전자는 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르면 억압하고 벌하면서 힘으로 교육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후자는 온화함으로 교육하려고 합니다. 법을 지키도록 부드럽게 도와주고 그 목적에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서는 청소년들의 마음에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넣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각자의 종교를 따라 종교를 교육하고 적절한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 그들에게 덕을 사랑하고 악덕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고무하고자 합니다. 적절하고 친절한 조언, 특별히 기도 생활과 종교를 통해 선한 길로 나아가고 그에 머물도록 안내합니다.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한, 오락 시간이나 교실, 그리고 작업장에서 친절한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있으려고 합니다. 친절한 말로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자기 의무를 소홀히 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상냥하게 이를 기억시켜 주고 좋은 행실의 길에 머무르게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교의 사랑으로 행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양심에 따라서, 그리고 종교가 가르치는 대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노력을 다합니다.…(1854년 국회의원이자 국무회의 의장을 역임했던 우르바노 라탓지Urbano Rattazzi와의 대화 중에서)』[4]

이러한 문헌 외에 거의 생애 말기에 가까워질 즈음인 1884년 4월 25일 자 신문에 실린 돈 보스코의 인터뷰 기사도 흥미롭다. ‘저널 데 롬Journal de Rome’의 리포터가 『신부님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돈 보스코는) 간단합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제일 잘 드는 것을 하도록 온전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는 좋은 자질의 싹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요점입니다. 누구든지 할 줄 아는 것을 오로지 기쁘게 합니다. 저는 이런 원칙을 지켰고요.…우리 학생들은 행동뿐 아니라 사랑으로 일합니다. 46년 동안 저는 단 한 차례의 벌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 학생들이 저를 무척 사랑한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5]

살레시오회의 예방교육은 무엇보다도 돈 보스코와 그의 후손들이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삶의 체험이자 생활양식이며 헌신적인 열정이고 영성이다. 그런 의미로 이는 학습 교안이나 교육 현장에서의 기술이나 기교 내지는 요령이 아닐 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누군가가 단기간에 학습하거나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살레시오회의 예방교육은 본질에서 교육자 돈 보스코의 뒤를 이어 살아온 살레시오회의 200년 삶이다. 많은 이들이 살레시오회의 교육 현장에 와서 살레시안과 청소년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뭔가 남다른 것을 느낀 나머지 ‘지도 교안이나 학습 교안’을 청하고 이를 얻어가지만, 그것을 다른 상황에서 실현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소년) 요한(돈 보스코)은 상처투성이가 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한쪽 뺨을 (자치기의) ‘나무 자’에 맞았던 것이다. (어머니) 마르게리타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약을 발라 주면서 말했다. “언젠가는 눈을 다쳐 돌아오지 않겠니. 그런데 왜 그런 아이들하고 노니? 좋지 않은 애들이 있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아.” “엄마가 원하신다면 다시는 안 가겠어요. 하지만 엄마, 제가 있으면 그 애들이 더 착해지고 나쁜 말도 안 하거든요.” 마르게리타는 계속 놀러 가게 내버려 두었다.』[6] 이 일화에서 보듯이 돈 보스코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예방 교육자였다고 하겠다. 돈 보스코의 현존이 아이들 가운데에 채워짐으로써 아이들은 더 착해졌고, 나쁜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성·종교·사랑: 잃어버린 번역

살레시오는 예방교육의 방법론이자 세 축이며 세 기둥으로서 ‘이성, 종교,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를 각론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이러한 소위 방법론이 거창한 학문적 방법론이 아니라 ‘영성이며 ’이라는 전제 아래 친밀한 가족 간의 관계에서 오가는 말마디의 분위기를 살려야만 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돈 보스코는 교육 이론가나 학자로서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들과 평범한 일상의 성덕을 살아가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호주의 피터 바렝고Peter Varengo 신부는 살레시오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살레시오는 ‘잃어버린 번역(lost translation)’을 살려내야 하고 재해석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2020년 연 피정 강의를 통해 만난 피터 바렝고 신부와 이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하며 그분의 의도와 어감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또한 그분이 서술한 책의 부분을 면밀하게 읽은 뒤 상황극처럼 각색하여 이를 번역하고 서술한다. 인용문에서 아랫부분 1-3의 첫 말은 돈 보스코의 고향 피에몬테 지역 말이고, 괄호 안 첫 번째 것은 저자가 직접 옮긴 현대 이탈리아어이며, 다음의 말은 역시 그분의 영어 직역과 설명이고, 마지막은 최대한 분위기와 어감을 살려보려 한 우리말 직역이다.

『나이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가족 모두가 정겹게 살아가는 가정이다. 들에서 종일 힘들게 일한 할아버지가 일과 후 동네 술집에서 친구들하고 술값 내기 카드 게임을 하고 약간 얼큰하여 집에 들어온다. 그때 손주가 “할아버지, 누가 이겼어요? 할아버지가 이겼어요?” 하고 묻자 이에 대한 할아버지의 첫 번째 답이 1번이다. 이긴 사람도 없고 진 사람도 없지만 모두 기분 좋게 놀았고 술값을 ‘네가 내니, 내가 내니?’ 옥신각신하였지만, 누가 냈든 모두 불만 없이 해결되었다. 친구 간의 다툼은 다툼이라기보다 답을 찾아가는 사랑싸움이고 일상이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신자가 되어서도 그리들 못 되었느냐?’라는 듯이 애정이 담긴 눈총을 주면서 ‘신앙이라도 좀 있어야지!(신자라는 사람들이 어쩜 그래?)’ 하시듯 하시는 말씀이 2번이다.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살아가는 신앙의 기본 아래 산다는 전제가 담겼다. 이내 밥상이 들어오고 애들과 함께 한자리에 둘러앉은 모든 가족 앞에서 할머니가 ‘그래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지!’ 하면서 다정다감하게 미소를 지으며, 푸근하고도 소박하게 모든 것을 아우르며 하시는 말씀이 3번이다.

1. 이성 : ‘a iuma rasunà’ ‘n poc’(abbiamo ragionato un po=we had a reason bit=we had a chat together as friends do) 친구끼리 티격태격 옥신각신했지.

2. 종교 : ’n po ’d religiùn la rangia tut’(un po di religione aggiusta tutto=a bit of religion fixes everything) 약간의 신앙이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지.

3. 사랑 : vurumsi ‘n po ’d ben(vogliamoci un po bene=let’s love each other a little=let us get on together) 그래도 좀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지!』

청소년의 교육, 특별히 살레시오의 예방 교육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하게 되는 ‘이성, 종교, 사랑’에서 선생님과 학생 간 공동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교육을 이야기할 때, ‘합리성’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말이 ‘이성’이고, 그리스도교의 교의나 전례 혹은 교리 수업 내지는 교회의 가르침 정도로만 해석될 수 없는 말이 ‘종교’이며, 학생을 대하는 교육자의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 정도로만 해석될 수 없는 말이 ‘사랑’이다. 이 세 마디 말들을 차분히 정감있게 복원하면서 우리는 돈 보스코의 교육이 지닌 진수를 알아갈 수 있다. 피터 바렝고 신부의 지적은 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정감이 어린 삶의 현장 언어였다고 할 수 있는 돈 보스코의 예방 교육이 한편에서 그저 거창한 학술적 논리와 연역으로만 연구된 것이 아닌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2022년 1월 <살레시오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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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키백과 [2] 2020년 제28차 살레시오회 세계 총회에 총장이 보고한 살레시오회의 통계 자료집(CG28 Dati e Statistiche)에 따를 때, 전 세계 살레시오회의 사목 현황을 숫자로 단순 비교하면 살레시오회는 대학교를 포함한 학교 3,403개, 본당이나 공소 및 성당 2,520개, 청소년 센터 2,468개,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시설 및 기관 1,436곳을 운영하고 있다. [3] 돈 보스코의 대가로 알려지는 돈 브라이도Pietro Braido(1919~2014년)의 유명한 저서 「Prevenire non reprimere: Il sistema educativo di don Bosco」 역시 「돈 보스코의 예방 교육 : 억압이 아닌 예방으로」라는 제목으로 2017년에 ‘돈보스코미디어’에서 우리 말로 번역되었다. [4] https://www.sdb.org/en/Don_Bosco_Resources/Writings/Writings/Boscos_Conversation_Rattazzi_1 [5] 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돈보스코미디어, 2014년, 759쪽 [6] 같은 책,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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