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23-26(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가’해)-9월20일

103위 순교 성인화

*전반적으로 직접 저술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바탕으로 편집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경축 이동을 하지 않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께서는 “복음강해” 코너에서 <연중 제24주일 ‘가’해(마태 18,21-35)>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전례적 배경

1583년에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의 저서 『천주실의』 등을 조선으로 들여와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학자들은 성호(星湖) 이익(李瀷)과 그 문하생들이다. 그들 가운데 특히 농은 홍유한(1726~1785년)은 천주학에 관심이 깊어,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소백산 자락에 은거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에 권철신, 홍낙민, 이기경 등의 제자들이 약속된 강학회를 개최하고, 특히 이벽은 이승훈을 북경으로 보내어 세례를 받도록 함으로써 비로소 1784년 이 땅에 천주교 공동체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신유박해(1801),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경신박해(1860), 병인박해(1866) 등 크고 작은 박해가 1백여 년 동안 조선을 휩쓸어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이날을 축일로 지내는 이유는, 1839년 9월 22일이 성 정하상 바오로의 순교일이고 7년 뒤인 1846년 9월 16일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을 기해 1839년, 1846년, 1866년의 박해 때 순교한 103위 성인들을 함께 기념한다. 103위는 한국 선교 200주년이 되던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은 순교 성인들뿐만 아니라 이름 없이 박해의 칼날에 스러져 간 모든 순교자를 기린다.

2. 성 정하상 바오로(1795~1839년 9월 22일 참수)*가톨릭굿뉴스와 정하상바오로 영성관 홈페이지 외 다수 사이트 참조

남인 양반의 유서 깊은 후예로 1795년 경기도 양근군 마현-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801년 4월 8일에 순교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정약용의 셋째 형)과 1839년 11월 23일에 순교한 성녀 유소사(세실리아)의 아들이며 같은 해 순교한 성녀 정정혜(엘리사벳)의 오빠이다. 그의 부친 정약종은 실학자 이익의 학문을 이어 서학을 연구하고 한국 천주교 초창기 평신도 지도자였던 분이고, 그의 모친 유 세실리아는 신심이 깊은 분이었다. 친형인 정철상(가롤로)도 부친과 함께 1801년에 순교하였는데, 이로써 그의 가족은 모두 가톨릭교회의 순교자가 되었다.

7살 때인 1801년 한국 천주교 창설에 공이 컸으며,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저술하였던 그의 부친 정약종이 아들 정철상과 중국인으로서 조선 유일의 사제였던 주문모(1752~1801년) 신부와 함께 사학죄인으로 몰려 처형되었는데, 정하상은 겨우 일곱 살로 그의 모친과 누이 정 엘리사벳(당시 5세)과 함께 풀려났으나, 가산을 몰수당했기 때문에 경기도 양주 마재 부락으로 내려가 귀양 가고 없던 숙부 정약용의 집에서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집안을 말아먹은 식구들이라는 박대를 받으며 머슴살이도 하면서 살았다.

정하상은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모친으로부터 기도 및 천주교 교리를 열심히 배웠다. 나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정하상은 모친과 누이를 고향에 남겨놓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여교우인 조증이(바르바라)의 집에 머물면서 목자 없이 박해를 당하고 있던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을 보았고, 조선 천주교회의 재건에 대하여 궁리하다가 함경도 무산에 귀양 가 있던 한학자였던 조동섬(유스티노)에게 가서 한문 공부를 한 후(달레는 이 과정을 단순히 학문과 교리를 배우기 위함이 아니고 지도자 수업이었다고 술회한다), 한국교회 재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1816년 22세 때부터 양반이었음에도 통역관의 하인 신분으로 9차례나 북경을 왕래하며 당시 북경의 주교였던 구베아 주교에게 간청하고, 의주 변문을 11차례 왕래하며, 교황님께도 편지를 드려 1831년 9월 9일 자로 교황 그레고리오 10세에 의해 조선 독립교구가 설정되기에 이른다. 1834년 말 중국인 사제 유방제, 1836년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이자 우리나라 입국 최초 서양인 신부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1837년에 조선교구의 제2대 교구장이신 앵베르 주교까지 입국시킨 본인이다. 또한 정하상은 1836년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를 신학생으로 선발해 마카오로 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앵베르 범주교는 그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성직자로 만들기 위하여 라틴어와 신학을 강의하며 공부를 시키기도 하였다.(앵베르 주교에 의해 사제품에 오르는 교육을 2년 정도 받던 중에 순교한 셈이다) 바로 그 무렵에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하상은 주교를 수원 지방으로 피신시킨 후 주교 댁을 지키며 순교의 때를 기다렸다. 이때 그는 체포되어 법정에 나갈 때 정부 관리들을 통해 당시 우의정이던 이지연(李止淵)에게 제출할 목적으로 천주교를 변론하는 ‘상재상서-재상에게 올리는 글’을 작성하였던바, 이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호교론이다. 순 한문 3,644자에 달하는 상재상서(上宰相書)에서 그는 조선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부당성을 유려한 문장으로 논박하였기 때문에 극렬한 반대파까지도 놀랐다.

상재상서에서 정하상은 천주교 교리의 설명, 호교론, 신앙의 자유를 호소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논리를 전개한다. 첫째 부분에서 정하상은 보유론(補孺論)적인 견지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논하고 천주십계를 들어 천주교의 실천윤리를 설명했다. 둘째 부분에서는 호교론을 전개하며 천주교가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또한 조상제사와 신주 모시는 일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셋째 부분에서는 천주교가 주자학적인 전통에 어긋난 것이 아니며 사회도덕을 바르게 하는 미덕이 있음을 논증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다.

성인은 45세 되던 1839년 7월 11일(음력 6월 1일), 모친과 누이와 함께 체포‧압송되었다. 의금부 추국에서는 그가 소위 양인들을 데려온 역적으로서, 또한 열성적인 교회 지도자로서, 조선 교회 활동의 주역으로서, 유진길 등과 함께 처참한 고문과 형을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교리를 설명하였고 성직자를 변호하면서 굽히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1839년 9월 22일 서양인을 나라 안에 끌어들인 모반죄와 부도의 죄명으로 유진길 등과 함께 부친이 순교하셨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의 영광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순교 후 2달 뒤 79세를 일기로, 누이는 3달 뒤 각각 순교하셨다.(만 6년 뒤 최초의 한국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가 탄생한다) 세 분은 모두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셨다.

조선 천주교회 평신도 지도자 제1세대의 인물들로서 이벽,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홍낙민, 권철신, 권일신, 이존창, 유항검, 황사영 같은 분들을 꼽는데, 이분들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로 서학을 연구해 자체적으로 천주교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교회의 체계를 잡았던 분들이다. 그러나 이분들이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하거나 천주교에 소극적으로 바뀌면서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핵심적인 평신도 지도자 제1세대를 거의 잃은 상태였다. 정하상은 바로 그분들의 뒤를 이어 정하상, 현석문, 유진길, 조신철 같은 분들과 함께 그 시기에 박해로 궤멸하여가던 조선교회를 재건시키고 교구 설정을 성립시켜 한국인 스스로 교회를 부흥시킴으로써 당시 조선교회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주역이었다.

3. 상재상서(上宰相書)*http://theologia.kr/board_korea/27441?ckattempt=1 (*편리한 이해를 위해 일부를 현대 맞춤법에 따라 수정하였음) 성인 정하상은 1839년(헌종 5) 6월 1일 체포된 다음 날 이 글을 종사관(從事官)을 통하여 재상인 이지연(李止淵)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1887년(고종 24) 홍콩에서 정하상의 약전을 첨가, 출판하여 중국의 선교에도 이용되었다. 국내에서는 주교 M.J.G. 블랑의 서명이 있는 필사본과 한글 역본 등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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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위에는 주재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물이요 둘은 양심이요 셋은 성경입니다.

만물은 무엇을 말함이겠습니까? …위대한 천지가 어찌 그 작자가 없겠습니까? 만물을 보고 그 주재가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양심이라 함은 무엇을 말합니까?…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하시는 대주재께서 계심이 마음과 머릿속에 박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천지창조부터 역사가 끊임없이 기록되어 구약과 신약에 뚜렷하게 증명되고 오늘에 이르러 집집이 입으로 외우고 소리로 노래합니다.…이 세 가지 증거를 들어 주재(천주) 계심을 이미 밝히 알았으니 천주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심은 우리에게 그 복을 보내주시고 나타내시려고 하심을 마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인간의 본분은…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입고 먹기만 하면 인류를 내신 큰 은혜를 저버림이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비유하여 아버지가 집을 짓고 살림을 마련하여 아들에게 주어 쓰게 하였는데 그 아들이 그 집에 살며 살림을 쓰면서 제가 잘난 체하며 부모를 섬기는 도리와 근본을 갚는 뜻을 모르면 이것이 효도입니까, 아니면 불효입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삶이 그 터럭 끝만 한 것이라도 모두 천주의 힘입니다.…(그분을) 받들어 섬기는 길은 고상하여 실행이 어려운 일도 아니요 은밀한 일을 들추며 기괴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져 천주의 계명을 지킬 따름입니다.

계명이란 천주께서 계시로서 가르쳐 주신 열 가지 계명입니다.…열 가지 계명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범할 수 없으며 몸으로 범하기 뿐만 아니라 더욱 마음으로 범함을 금합니다. 무릇 사람의 잘못은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서 그 행동을 그르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그 행동을 다스릴 수 있으나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천주의 계명은 행동만 다스릴 뿐 아니라 마음마저 다스립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위태롭고 도를 구하는 마음이 미약하여 자칫하면 죄를 범합니다.…공과 죄의 판결은 육신이 죽는 날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우사 선을 아니 갚으심이 없고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우사 악을 아니 벌하심이 없습니다. 만일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까지 없어진다면 상이나 죄를 어디다 베푸시겠습니까? 그래서 영혼이 죽지 않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백 년을 넘지 못하면서도 이로운 것만 탐하는 마당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이미 얻은 것은 잃을까 봐 걱정하는 새 어느덧 늙음이 다가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몸이 한번 죽으면 부귀공명이 필경 허무로 돌아가고 맙니다. 하물며 부귀공명은 한평생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 티끌 같은 꿈에서 깨나기가 어찌 그리 어렵습니까?…

비록 천당의 영복을 얻지 못할지라도 지옥의 후환만 없다면 세상의 영화를 잠시 도모하여도 좋겠지만 이 지옥의 영원한 벌을 어찌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해 깨닫지 못하다가 육신이 죽은 뒤에야 뉘우친들 이미 늦었습니다. 이러므로 목을 끊을 큰 도끼가 앞에 있고 몸을 삶을 큰 솥이 뒤에 있더라도 꿋꿋하게 굽히지 아니하는 자가 대대로 적지 않습니다. 이것도 진정한 교의 한 증거입니다.

교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사리의 바르고 그름은 한쪽으로 밀어 놓고 얼토당토아니한 말을 가지고 공격하고 배척하니 외국의 교라 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금은 산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순금이면 보배가 되듯이 교가 어디서 왔건 그 거룩함이 참되면 그 교의 전래에 어찌 이 나라 저 나라의 경계가 있겠습니까?…무당 풍수 점장이 상장이와 같은 사람들까지도 부녀와 아이들을 홀리고 혹하게 하여 돈과 재물을 살살 낚아감을 예사로 보아 넘기면서 홀로 성교만이 포섭의 은전을 받지 못함은 어찌 된 일입니까? 가정에 해를 끼쳤습니까, 나라에 해를 끼쳤습니까?…저희가 일찍이 역적질하였습니까, 도둑질하였습니까? 일찍이 간음하였습니까, 살인하였습니까?…옥 안에서는 지쳐서 죽고 문밖에서는 목이 잘려 죽음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을 찌르고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이 아우를 부르고 궁지에 몰려 몸을 돌이킬 데가 없는 것 같이 되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이 몸도 장차 죽을 목숨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할 때를 만나 한 번 머리를 들고 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처럼 쌓인 이 하회를 장차 백대의 후세에 폭로할 수 없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바로 이때 밝히 비추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그릇되었는지 올바른지 자세히 판단한 다음 위로는 나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도의로 돌아와 금령을 늦추어 체포하는 법을 거두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내놓고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가 제 업을 즐기면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양심이 허락지 않아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4. 현대에도 계속되는 박해*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월 23일자

프란치스코 교황 새해 첫 기도 지향 영상 메시지, 내전과 분열 불러오는 종교 박해 강하게 질타

“문명화된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했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해 첫 기도 지향 영상 메시지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종교 차별과 박해 철폐를 강하게 촉구했다. 그러면서 박해로 죽임을 당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형제자매로서 일치를 이루자고 권고했다. 매달 기도 지향 영상 메시지를 발표해오고 있는 교황은 올해 첫 달 기도 주제로 특별히 종교 박해를 언급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종교 박해로 지구촌 곳곳이 더욱 붉게 물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5일 발표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종교 차별과 박해는 용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이며,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무자비한 박해 행위를 규탄했다. 이어 “종교의 자유는 예배의 자유, 즉 사람들이 각 종교의 경전에 의해 정해진 날에 경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며 “종교의 자유는 오히려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진정한 형제, 그리고 자매로서 인식하게 만들어준다”고 호소했다.

지역별 다수를 차지한 종교가 소수 종교를 억압해온 역사는 낯설지 않다. 오늘날 전쟁과 테러, 난민 발생의 이유에서 종교 박해를 빼놓고 하기란 어렵게 됐다. 교황은 이 때문에 분열과 전쟁, 죽음을 불러오는 박해를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종교 박해 지표는 더욱 악화되는 양상이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CN)가 지난해 발표한 ‘2021 세계 종교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96개국 가운데 62개국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개국 중 1곳이 온전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 사는 인구는 52억 명. 지구 전체의 67%에 이른다.

아프리카는 초국적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손아귀에 피멍이 들고 있다. 이들은 부패한 정부, 토지권으로 갈등 관계에 놓인 목축업자와 농민들 사이, 힘없는 공동체 마을 등 약한 곳을 침투해 자신들의 종교를 빌미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23개국이 박해 중이다.

아시아에서도 박해가 지속되고 있다. 인구 14억 명이 넘는 중국은 공산당 지침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종교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억압한다. 신장 지구 100만 명이 넘는 위구르족을 감금하고, 가톨릭교회 성상을 마음대로 파괴하거나 성당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로 공동체 활동을 통제한다. 중국 국가종교국(SARA)은 지난해 주교와 사제 등 모든 성직자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개설했다. 주체 사상으로 종교 활동 자체를 제한하는 북한은 선교사들을 ‘흡혈귀’에 비유한다.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이슬람교의 발상지인 중동 지역은 극단주의 이슬람국가 조직으로 불린 다에시(IS)의 중동 지역 퇴거 후 흉악한 범죄와 교회 파괴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남은 이들의 고통과 무슬림 간 분열, 종교 차별은 여전하다.

교황의 이번 영상 메시지 제작을 지원한 ACN은 박해받는 나라를 향한 관심 호소에 적극 나서고 있다. 토마스 하이네겔던 ACN 수석대표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종교는 계속해서 조작되고 있다”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변호하는 것이 갈등을 뒤집을 수 있는 열쇠”라고 했다.

교황은 ‘형제애’가 일치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교황은 영상에서 “형제애의 길을 선택하자. 이는 우리가 형제자매가 되거나, 아니면 우리가 모두 패하는 길이기 때문”이라며 “차별을 겪고 종교 박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사회에서 형제자매가 됨으로써 주어지는 권리와 존엄을 찾도록 기도하자”고 재차 촉구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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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박해 상황(WWL 2022 기준)

https://www.opendoors.or.kr/board/list.do?iboardgroupseq=1&iboardmanagerseq=3

– 전세계 박해 인구 359,072,100명

– 기독교 박해 ‘높음’ 이상 국가 76개국

월드와치리스트(WWL) 2022는 전 세계 약 3억6천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박해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작년 대비 2천만 명이 증가한 수치로,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의미이며, 29년 첫 번째 월드와치리스트가 발표된 이래로 가장 높은 수준의 박해지수이다. 이러한 전 세계 기독교 박해는 꾸준한 증가세와 가속세를 보인다.

One thought on “루카 9,23-26(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가’해)-9월20일

  1.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순교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순교 성인들과 이름도 없는 모든 순교자들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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