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을 결結

인간사, 세상사가 수도 없는 맺음과 끊어짐의 연속이지만 사람들은 긍정적인 맺음만을 바란다. 맺음도 끊어짐도 모두 내게서 비롯된다. ‘맺을 결結’에 반대 글자는 ‘끊을 絶’이다. 두 글자 모두 ‘실 사糸’를 옆에 두었다. ‘맺을 결, 상투 계結’라는 글자는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와 음音을 나타내는 ‘길할 길吉’이 더하여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실 사糸’라고 하는 글자는 누에고치에서 가는 실을 뽑아내는 형상으로 ‘가는 실 멱’이라고도 부른다. ‘길할 길吉’은 ‘왕王’이라는 글자의 원형 격이고 그래서 왕이나 제사장이 든 도끼 모양 ‘선비 사士’와 ‘입 구口’의 조합이니, 이 모두를 아우르면 『왕이나 제사장과 같은 지도자, 혹은 훌륭한 사람 등이 자기가 하는 말이나 축문, 혹은 신으로부터 받은 신탁神託을 자신의 상징인 도끼로 보증하면서 무엇인가 결실이 맺어지고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묶어지거나 맺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나아가 ‘다지다, 단단히 하다, 바로잡다, 막다’라는 것까지 가리킨다.

그렇게 ‘맺을 결, 상투 계結’가 앞에 붙는 말로는 결과結果, 결국結局, 결혼結婚, 결합結合, 결말結末, 결실結實과 같은 말들이 수없이 많고, ‘결結’이 뒤에 붙어 만든 말들도 직결直結, 종결終結 타결妥結, 연결連結, 동결凍結, 단결團結처럼 수없이 많다.

‘결結’에 들어있는 ‘실 사/멱糸’은 ‘작을 요幺’(고치에서 갓 뽑아낸 실), ‘실 사絲’(실타래), ‘얽힐 구丩’(실 끝에 고를 내어 서로 연결한 모양) 등의 글자와 생김새가 같고 관련성을 지닌다. 가느다란 실의 모양인 ‘작을 요幺’에 나뭇가지 같은 것에 걸려있는 거미줄 같은 모양새를 더하면 ‘헛보일/허깨비/변할 환幻’이 되어서 환상幻想(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느끼는 상념想念), 환영幻影, 환각幻覺 같은 말을 할 때 쓰는 말이 되고, ‘힘 력/역力’을 더하면 ‘어릴 유幼’가 되어서 유치원幼稚園, 유아幼兒, 유약幼弱(아직 어려서 힘이 없다) 같은 말을 할 때 쓰는 말이 된다. 이 ‘작을 요幺’ 밑에 3줄기를 더해서 가는 실이 여러 가닥 꼬인 상태, 곧 ‘실 사/멱糸’가 되면 쓰임새는 더욱 다양해진다. 그 옆에 ‘미칠 급及’을 붙이면 ‘미칠 급級’이 되면서 실의 질을 따져 등급等級을 매기는 것을 뜻하고, ‘비단 백帛’을 붙여 ‘솜/이어질 면綿’이 되면서 목화나 목화로 만든 솜, ‘면밀綿密’하다 할 때처럼 자세仔細하고 빈틈이 없음을 뜻한다. 여기서 ‘실 사/멱糸’가 먼저 있었고 나중에 ‘솜/이어질 면綿’이 생긴 것을 두고 비단이 먼저 있었고 나중에 무명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하고, ‘실 사/멱糸’ 옆에 음을 나타내는 ‘성씨 씨氏’를 붙여 ‘종이 지紙’가 되는 것을 보면서는 천이 종이 대신 먼저였다가 나중에 종이가 생겨난 것도 알 수 있다 한다.

이렇게 글자들에는 뜻이 담겼고, 역사가 담겼으며, 인간의 삶이 담겼다. ‘맺을 결結’은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 것이기도 하고, 한 가닥 씩 간추려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별히 끊어진 것이 다시 이어질 때는 끊어져 이쪽과 저쪽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떨어져 있는지도 몰랐으므로, 애초에 맺어지기를 바랐던 그대로 다시 맺어지지는 못할지라도 매듭을 다시 묶느라고 사용된 부분 만큼은 서로 간에 더 짧아지고 가까워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것들에게 위로가 되지만, 끊어졌다가 맺어지는 과정은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며 매듭이 맺어지느라 마음이 어수선하게 얽히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시고 인간과 계약을 ‘맺으면서’ 비로소 인간의 삶이 구원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계절이 바뀌거나 한 해를 마감할 무렵이면 누구나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추슬러서 끊어진 것들을 잇는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맺어지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참조. 마태 16,19;18,18)(20171222 *이미지-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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