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

수많은 작가가 조각이나 그림, 그리고 글들을 통해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다. 카라바지오Caravaggio(1571~1610년)라고 부르기도 하는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도 그 장면을 “Deposizione(영어 deposition)”라는 제목으로 그렸는데, 우리 말에서는 간혹 원제목과는 맞지 않게 ‘그리스도의 매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수난을 기리는 성금요일에 자주 회자하면서 카라바지오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지는 작품은 바티칸이 소장하고 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성금요일의 적막함 속에서 숨죽여 깊이 흐느끼며 곡哭하는 울음이 멀리 번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절규하는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 고개를 떨구며 실의에 빠져 울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감히 예수님께 가 닿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손과 함께 조용히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있는 주름진 얼굴의 성모님, 예수님의 수의를 왼쪽 어깨에 걸친 채로 오른손으로 예수님의 상체를 껴안아 돌판 위에 내려놓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성 요한, 예수님의 하체 부분을 단단히 두 팔로 안아 조심스럽게 돌판 위에 내려놓으면서 작품의 중앙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니코데모(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영원한 생명과 거듭남에 관한 대화를 나눴으며 예수님께서 묻히실 무덤을 봉헌한 이 *참조. 요한복음 3장, 7장, 19장), 그리고 예수님이다.

십자가로부터 이렇게 평평한 돌판 위에 예수님을 내려놓는 것은 당시 유다인들의 장례 절차에 따라 예수님을 벗기고 깨끗이 씻긴 다음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함이었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어둠 속에서 죽음이 승리한 듯 보이는 순간을 은총의 빛이 넘쳐나는 순간으로 포착한다.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와 함께 여인의 쳐든 왼손에서부터 니코데모의 어깨를 거쳐 예수님의 오른손, 그리고 예수님을 감싼 수의의 자락 끝으로 흐르는 사선 구조는 금세 박진감 넘치는 역동성을 담고, 화폭의 아랫부분에 자리 잡은 두꺼운 돌판과 그 모서리는 묵직하게 침묵한다. 그러나 그 돌은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시편 118/117,22)라는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고, 예수님의 손은 제단석과도 같은 돌판을 가리키듯 처져있으며, 돌판 아래 어둠 속에서는 생명과 부활의 상징인 푸른 식물의 잎사귀가 보인다. 인간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시어 돌판 위에 놓이신 바로 그 자리, 제대 위에서 다시 사제의 손으로 높이 들어 올려지시는 ‘그리스도의 몸(성체)’에 인간의 구원이 있다.

이 작품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이 작품은 1577년 성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년 재위)께서 1564년에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한 성 필립보 네리(1515~1595년)에게 발리첼라에 있는 성 마리아 성당(Santa Maria in Vallicella)을 하사하였고, 성 필립보 네리는 이 옛 성당을 다시 지어 ‘새 성당(Chiesa Nuova)’이라 부르며 오라토리오회의 본원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성당 안에 있는 비트리체라는 경당을 위해 제단화로 그려졌다. 비트리체 경당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재무와 의전을 담당했던 피에트로 비트리체(Pietro Vittricce)의 소유였었는데, 그가 1600년 초에 사망함에 따라, 그의 조카 지롤라모 비트리체(Girolamo Vittrice)가 삼촌을 기려 1601~1602년경에 비트리체 경당의 제단화를 카라바지오에게 주문하였으며, 1604년 제단화가 완성된 후 1604년 9월 1일 작품료를 지불했다는 문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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