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는 백합이 아니다

 

민들레와 꽃잔디

꽃이 피는 시절이다. 오며 가며 길거리의 꽃집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꽃에는 아주 비싼 꽃도 있고 그저 단돈 몇 푼에 팔리는 꽃도 있으며, 다른 꽃이 팔릴 때 덤으로 끼워 팔리는 꽃들이 있는가 하면, 꽃집에서는 아예 팔리지 않는 꽃들도 있다. 들에만 피는 야생화들을 이제는 온실에서 키워 내다 파는 바람에 편리한 부분도 있긴 있지만, 그 꽃으로 인하여 들에 나갈 필요가 줄었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면도 있다. 비싼 꽃이라면 백합이니 장미, 또 이름도 외우지 못하게 얄궂은 외국말 꽃, 그리고 화려한 꽃들이 많다. 그런 꽃들은 머리가 아플 만큼 향기도 아주 진하다. 개인적으로는 채송화를 좋아한다. 생김새나 모양 그리고 색깔이 수수하면서도 독특한 탓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를 새길 수 있어서이다. 채송화는 꽃집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빨강, 파랑, 노랑, 하양, 분홍 등 가지각색의 꽃을 피울 줄 안다. 채송화는 향기가 없지만 아주 만질만질한 작고 새까만 씨앗들을 터질 듯이 한 모둠씩 안고 있다. 더더욱 채송화가 매력적인 것은 화분에 담아 사무실 창가에 둔다고 하더라도 왠지 모르지만, 잎만 무성할 뿐 예쁜 꽃들을 절대로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썼을지라도, 땅바닥에 기듯이 바짝 붙어 피더라도, 채송화는 햇볕을 바로 받는 바깥 양지바른 곳에서만 자기 꽃을 제대로 피운다.

봄꽃들은 꽃샘바람과 추위가 나무들을 흔들고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만개한다. 흔들어 주어야만 정신이 번쩍 들어 꽃을 피워야 할 계절이 왔음을 나무 스스로 느끼는 것일까? 봄꽃들은 하나같이 꽃들이 먼저 피고 꽃이 진 다음에야 잎이 돋는다는 특징이 있다. 화려한 꽃잎으로 맘껏 자신을 표출한 뒤에 이제 또 한 해를 진지하게 살아갈 일상을 찾아가는 것일 거다. 봄꽃들은 대부분 슬픈 전설 하나씩을 동반한다. 진달래가 그렇고 자목련과 백목련이 그러하며 분꽃이 그렇다. 그리고 시인들이 노래하는 시들은 대개 봄꽃들임에 틀림이 없다. 봄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묘한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봄꽃들은 몇몇 꽃을 제외하고는 향기를 갖지 못한다. 아마도 아직 4계절의 순환을 골고루 경험하지 못해서이다. 인생을 꽃에 비겨 이야기한다면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를 지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이런 봄꽃에 해당한다. 이런저런 말 한마디에 온 일생을 흔들어 자기 나름대로 꽃을 피우는 시기, 꽃을 먼저 피우고 싶어 안달이 나는 시기, 온 세상의 고민과 슬픔을 제 한 몸에만 지닌 듯이 신화와 전설, 그리고 아픔과 눈물이 많은 시기, 하룻밤 새에 기나긴 소설을 쓰기도 하고 시인이 되어 시를 읊어대기도 하는 시기, 아니 소설이요 시 자체가 되는 시기, 그런데도 인생의 맛이나 멋을 담은 향기는 없는 풋풋한 시기, 바로 이런 시기가 청소년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꽃과 같은 우리 애들에게 나 자신을 포함한 어른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보면 마치 죄다 장미이고 백합처럼 비싼 꽃, 시장에 내다 놓아 잘 팔리는 꽃만 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많다. 백합이 절대로 채송화가 될 수 없고 채송화가 결코 백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자신이 백합이지 못했던 처지를 애통해하면서 애들만이라도 기어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오기일까? 그런 것이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것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사실 어른들이 애들에게만 그런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른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그런 억지를 부리는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화두가 되어있는 소위 양극화의 해법과 개혁을 놓고도, 그 누구도 서로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미성숙함, 상호 간의 배려 부족을 스스로 성찰하려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개혁은 채송화를 백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백합을 채송화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자신의 솔선수범과 희생, 그리고 소박한 결심과 실천들을 먼저 요구한다. 백합을 기어이 채송화로 만들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다는 듯이 우기는 것은 우격다짐이요, 고집불통이며 오만이다.(20060331, *사진 출처-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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