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암癌

헤라클레스를 방해하는 카르키노스 *나무위키

‘암 암癌’이라는 글자는 사람이 병상에 기대어 드러누운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서 ‘기댈 녁/역疒’이라고도 하고 ‘병질 엄疒’이라고도 하는 글자와 소릿값인 ‘바위 암嵒’이 더하여 이루어진 글자이다. ‘뫼 산山’을 위에 놓거나 아래에 놓아 만들어진 글자 ‘바위 암嵒’은 ‘바위 암嵓’과 뜻과 음이 같은 글자로서 생긴 모양 그대로 산 위나 산 아래에 있는 바윗덩어리들을 묘사했다. 그러고 보면 ‘바위 암岩’은 산 아래에 직설적으로 ‘돌 석石’을 놓아 생긴 글자이다. 이렇든 저렇든 ‘암 암癌’은 사람 몸의 어딘가에 돌과 같은 덩어리가 덧붙여지게 된 상황이다.

‘암’을 영어로 ‘cancer’라고 하는데, 그 연유를 찾아보니 저 유명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BC 460~370년)가 종양의 형태를 묘사할 때 사용했던 ‘카르키노스καρκίνους’나 ‘카르키노마καρκίνωμα’라는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2천 년도 훨씬 더 넘는 세월 전에 그리스의 한 의사가 유방절제 수술을 하다가 악성 세포들의 말단 부분이 건강한 조직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게의 집게발을 연상하고 이런 악성 종양들을 그리스어로 ‘게’를 뜻하는 ‘카르키노마(karkinoma)’라고 명명했다고도 한다. 실제 ‘카르키노스’는 헤라클레스의 발뒤꿈치를 물었다가 밟혀 죽은 큰 게 모양의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이기도 하다니 예기치 않게 사람을 물어 병나게 하고 부풀어 오르게 하며 상처 나게 하는 못된 ‘암’의 이름으로는 제격이지 싶다. 하늘의 별자리인 ‘게자리’를 ‘Cancer Constellation’이라고 부를 때 영어 단어 ‘cancer’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이 모든 연관이 그럴듯하다. 희랍어가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카르키노스는 ‘cancer’가 되었다.

양쪽 집게발을 지닌 게(카르키노스)의 사연은 이렇다. 제우스의 아내였던 헤라가 제우스의 외도로 태어난 헤라클레스에게 12가지의 어려운 과제를 냈고, 헤라클래스가 그것을 해결하려다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괴물 히드라의 목을 쳐내도 쳐내도 다시 두 개씩 생겨나므로 힘든 싸움을 하던 와중에 헤라가 히드라의 원군으로 보냈던 카르키노스가 헤라클래스의 발을 무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그에게 밟혀 죽었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 헤라가 하늘의 별자리가 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게자리는 어두운 별들로만 되어 잘 보이지도 않아 쓸쓸하게 남았다.

외로운 미국 생활에서 거의 매일, 아니 적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만나는 나보다 한 두어 살 적은 친한 친구 신부님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다. 그 말을 들은 날 밤엔 밤새워 뒤척였다. 무섭고 겁나며 안쓰럽고 남 일 같지 않으며 두려워서였다.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암’이라는 한 글자 단어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것을 보면 암의 위력은 대단하다. 문득 잊고 살았던 나의 나이와 함께 나에게도 닥쳐올지 모른다는 육체적 암의 개연성은 암과 같은 아집과 사악한 욕망이라는 영혼의 암 덩어리들을 제거해주시도록 청하는 평상시 일상의 기도마저 머나먼 딴 나라의 일인 것처럼 일거에 나를 압도한다. 암담하다. 인간은 암담할수록 주님 안에 더욱 희망을 품게 된다는 말조차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나도 서둘러 건강검진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인다. 이럴 때 인간은 무력을 느끼며 은총을 기도할 수밖에 없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신부님께 좀 더 건강한 삶을 허락해주시도록 청한다.

신부님께 뭔가 용기와 힘, 위로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생각한다. 그런데 막막하다.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살았다는 30년도 훨씬 더 넘는 사제의 생활이 고작 이런 것일까 싶어 부끄럽고 공허하다. 신부님과 밥을 먹으러 자주 가는 단골 식당에서 봉사하시는 아주머님께 누군가에게 용기와 힘, 위로의 말을 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쭤보았더니 “모든 게 잘 되어갈 것”이라 말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되어 나가기를 빕니다. 또 그대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건강하기를 빕니다.”(3요한 1,2)라는 말씀을 몇 번이고 되뇐다.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Leave your drugs in the chemist’s pot if you can cure the patient with food.)』라고 했다 한다. 2천 5백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과연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신부님과 맛있는 것, 건강한 음식을 더 자주 먹어야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일상의 기쁨과 웃음이라는 선물을 더 자주 나눠야겠다.(20200912)

*위에 말한 친구 신부님은 내가 미국을 떠난 뒤 1년도 안 되어 결국 돌아가셨다. 어제 다른 친구 신부님을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신부님이 지난 1월, 5일 정도 입원하여 암 수술을 받았으며, 정밀 검사를 했더니 지금은 깨끗하다고 하여 안심하면서도 내심 다시 놀랐다. ‘암’이라는 글자 하나는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막강한 위력을 지녔다. 뭔지 모를 불안이 엄습한다. 술은 아예 끊고 굳기름이 담긴 쇠고기는 말고 오리나 생선, 채소 같은 것을 많이 먹어야겠다고 서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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