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뫼 산山’이라는 글자는 가운데 긴 획을 먼저 쓰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산봉우리 셋을 표현하는 3획으로 된 글자로서 부수로 쓰일 때 산이나 고개 등과 관련된 글자이다. 발음에 해당하는 ‘산’은 우리말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말 ‘산’을 표현하는 수화의 글자 모양새는 서양에서 가운데 있는 손가락을 세워 상대방을 모욕하는 욕설에 해당하는데, 이는 한자의 글자 모양을 그대로 본떴을 뿐이다. 그 ‘산’을 두고
지난 주말 설을 지냈다. 떡국 차려 줄 이 없는 처지엔 북어포 몇 가닥 넣고 보리새우 넣어서 국물을 뽀얗게 우린 다음 라면과 함께 끓이는 떡국 라면이 제격이다. 나는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먹었다 하고, 해는 절로 가며, 나이는 스스로 든다. 아무리 동안童顔이라고 자위를 해도 나이와 해의 자발적自發的인 작동은 야금야금 어느새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문득 옛
무엇인가를 끊는다는 뜻으로 글자를 찾으면 맨 먼저 연상되는 것이 ‘칼 도刀’가 들어가 있는 ‘끊을 절切’이다. 소리에 해당하는 ‘일곱 칠七’과 뜻에 해당하는 ‘칼 도刀’가 합쳐져 이루어졌다는 ‘끊을 절切’은 ‘일곱 칠七’ 역시 내려치는 칼질의 모양새이므로 칼날과 같은 것으로 무엇을 베어내고 잘라내어 동강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또한 ‘온통/모두 체切’라고도 새겨서 ‘일체一切’와 ‘일절一切’이 어떤 경우에 쓰이는가 하고
행복이 원하고 추구해서 되는지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다 하며 행복을 추구하고, 현재의 자기 행복을 가늠하는 습성을 지닌다. ‘행복’이라는 말마디를 만드는 앞 글자의 ‘행’은 괜히 기분 좋고 포근한 느낌을 주며 영어의 happy를 연상하게 하지만, 한자로 쓸 때는 ‘다행 행幸’이라는 글자를 쓴다. 이 ‘행幸’이라는 글자는 본래 신체의 일부를 묶고 가두어 꼼짝 못 하게 하는 형구의
이 글자는 팔에 힘을 주었을 때 근육이 불거진 모습이라고도 하고, ‘칼 도刀’의 변형으로 칼에서 나오는 힘을 뜻하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농경 사회로 전환되면서 동물이 끌기 전 사람들이 밭에서 힘들여 끌었을 쟁기나 가래의 모양이라는 것이 훨씬 더 근거 있는 얘기이다. ‘사내 남男’이 밭(田)에서 힘들여 쟁기질(力)하는 남자를 가리키고, 혼자서는 할 수 없어 여럿이 쟁기질을 해야 할
새해의 시작은 단순히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계속 확장되는 우리 삶의 연속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늘 그랬듯이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들이 다시 찾아온다. 지키지 못한 약속, 이루지 못한 소망, 못다 한 일들, 아직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욕구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무게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지평이 만나는 밤, 새해 전야만큼 시간의 흐름에 대한
‘어지러울 난/란亂’이라는 글자는 그 생김새 못지않게 풀이도 어지럽고 복잡하다. 차근차근 획순에 따라 글자를 분해하면 ‘손톱 조爪(움켜잡다) + 작을 요幺(실타래) + 덮을 멱冖(물레) + 또 우又(손) + 새 을乙(칼날)’라고 풀어서 ‘물레에 실타래가 위아래로 엉켜있는 것을 칼로 끊어내고 가지런히 정리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 정도로 새겨볼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어지러울 난/란亂’에 들어있는 우측의 ‘새 을乙’을
또 한 번의 성탄절이 다가온다. 천년, 또 다른 천년, 수도 없이 많은 성탄절이 지나가면서도, 사람들은 진정한 성탄절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특별한 별 하나가 빛나던 어느 밤, 한 유다인 아기가 어떤 특별한 유다인 부부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성탄절의 전부일까? 그 아기가 바로 유다인들이 수천 년을 두고 고대했던 메시아라는 사실은 유다인들조차도 믿지 않는다.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성탄절에 헨델의
‘목숨/명령 명命’은 일반적으로 ‘입 구口’와 ‘하여금 령/영令’의 합자合字로 보면서, 왕이 사자使者의 입으로 뜻을 전한다는 의미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풀이한다. ‘목숨/명령 명命’을 조금 더 자세히 뜯어 보면 ‘삼합 집亼’ 더하기 ‘입 구口’ 더하기 ‘병부 절卩(=㔾)’이다. 우선 ‘삼합 집亼’은 세 변이 합해져 완벽한 도형인 삼각형을 만들 듯이 어떤 세 가지가 어울려 조화를
‘늙을 노/로老’라는 글자는 ‘耂’라는 글자와 같은 글자이다. ‘늙을 노/로老’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부모님으로부터 얻은 신체의 부분이므로 함부로 자르지 못하고 길러야 했던 옛날에, 머리카락이나 수염, 눈썹 등이 길게 자란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이다. ‘耂’는 털이 긴 노인의 모습이고, 지팡이 모양이 변해 현재의 ‘匕’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