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영어 사전에서 ‘환각·망상·환상’이라는 뜻을 담은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오늘날 ‘AI의 그럴듯하면서도 황당한 거짓말’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할루시네이션’이라는 말은 ‘잘못 생각하다, 뭔가 이상하고 꺼림칙하거나 헷갈린 상태’라는 뜻인 라틴어 alucinatus(hallucinatus)에서 유래하면서 ‘속이다, 거짓말하다’라는 뜻으로까지 나아간다. AI가 만능인 듯한 시대를 살지만,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AI가 여러 생각이나 사고의 조합을 그럴듯하게, 그것도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는

루르드의 성모님과 세계 병자의 날

매년 2월 11일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세계 병자의 날’로서 육체적인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과 고통의 감소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의 날이다. 세계 병자의 날은 우리나라에도 두 번이나 방문하셨고, 성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께서 1992년에 제정하신 날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교황께서는 1991년 71세에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을 보였으며 80세가 될 무렵에는

악마는 유튜브를 입는다

영화가 되기도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라는 로렌 와이스버거Lauren Weisberger(1977년~)의 2003년 소설이 있다. 그 제목을 따와 말을 만든다면 “오늘의 악마는 유튜브를 입는다.”라는 말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제로서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은 고백성사 안에서 만나는 신자들과의 만남인데, 최근의 고백성사에서 많은 신자가 유튜브 때문에 겪는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유튜브를

거미

‘스파이더맨’이라는 오래된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작품 속의 거미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고 그 활약은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동물이나 곤충 중에서 거미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는 몹시 부정적인 모습이다. 성경에서 거미는 두 번 등장한다. “하느님을 잊은 모든 자의 길이 이러하고 불경스러운 자의 소망은 무너져 버린다네. 그의

희망希望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를 통해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표어로 올해 ‘희년禧年’을 보내고 있는 우리 교회는 자주 “희망希望”에 관하여 말한다. 교황님께서는 이미 2022년 2월에 희년의 여정을 준비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받은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고, 모든 이가 열린 정신과 신뢰하는 마음과 멀리 내다보는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볼

성 안토니오(1월 17일)

성인은 대략 251~356년에 걸쳐 이집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살았다. ‘은수자들의 아버지’, ‘수도승의 원조’, ‘사막의 성인’ 등으로 불리는 성인은 거친 광야의 동굴에서 금욕생활을 하며 오랜 세월 은수자요 독수자로 살았다. 성인의 명성을 따라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라는 사막 일대에 금욕 고행자들의 집단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성인을 중심으로 개별 움막에서 지내다가 주일이나 축일에 함께 모여 성사를 집행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성인은

교회와 소비자 가이드

한동안 미국에 거주하다가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 눈에 띄게 늘어난 상점 브랜드 하나가 있었다. 바로 ‘다이소’라고 하는 브랜드이다. 과거에는 뜨문뜨문 보이던 가게였는데,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나 주변을 둘러보면 웬만한 곳에는 반드시 있다. 그곳에서는 비교적 가성비가 좋은 헤아릴 수 없는 상품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여느 곳이거나 제품이나 상품의 종류를 불문하고 ‘365일 세일’을 표방하며 말도 안

흠숭, 섬김, 걸어가다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 요한의 큰 형제 몰타 기사단과의 만남에서 행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연설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화해와 희망의 시기 희년을 거행하고 있는 새해의 시작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엊그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기념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요한 14,6)이신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분, ‘호데게트리아(Ὁδηγήτρια, Hodegetria, 영어=She who shows the Way, 길을 보여주시는 분)’라는 이름 그대로 여러분

인간의 행복

GPS 이미 우리는 스마트 세상을 한참 넘어 AI의 윤리 규범에 관한 법률적 근거들을 논의하는 사회를 산다. 내 생애에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가장 경이로운 문명의 산물이나 이기利器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GPS와 메모리 카드,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세 가지를 들겠다. 세상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어느 과정을 거쳐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꿰뚫고

아하바Ahavah에서 아가페Agapē까지

히브리 말이나 희랍어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언약에 따른 충성·충실과 신실함, 희생적인 보살핌, 정서적인 친밀감 등을 아우르는 몹시 다면적인 개념이다. 사랑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본성과 인간의 부르심을 밝혀주는 기초이다. 성경의 주요 ‘사랑’ 개념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신적神的인 차원과 인간적인 차원이라는 두 차원을 발견한다. 히브리말 아하바(אַהֲבָה, Ahavah)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을 뜻하는 중심어는 ‘아하바’이다. 이 말은 ‘사랑하다(to love)’라는 뜻을 지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