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하임Issenheim 제단화祭壇畵

인간의 고통 –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5~1528년)의 이젠하임Issenheim 제단화祭壇畵를 중심으로 보는 인간의 고통 *이 그림은 독일 국경 근처 프랑스 동부 알자스 주의 작은 마을인 이젠하임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 제단화로 그려졌으며, 니콜라우스 폰 하게나우(Niklaus von Hagenau, 1445~1538년)가 조각한 고딕식 목각 제단에 끼워져 있다. 가동식(可動式)의 여러 날개가 붙은 제단화로서 2중 여닫이로 되어 있으며, 닫혔을 때의 크기는 너비

아시시의 성녀 아녜스

아시시의 성녀 아녜스(St. Agnes of Assisi, 1197~1253년)의 원래 이름은 카테리나 오프레두치아로서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St. Chiara of Assisi, 1194~1253년, 본명은 이탈리아어로 키아라이며 널리 알려진 이름 클라라Clara는 라틴어식 이름)의 여동생이다. 언니의 첫 번째 추종자로서 클라라 수녀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사후 500년 뒤인 1753년에 교황 베네딕투스 14세에 의해 시성되었다.(*언니 클라라는 사후 2년 뒤인 1255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에 의해 시성)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글라라)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탄생 800주년에 즈음한 교황 교서  가난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성녀 글라라 친애하는 글라라 봉쇄 수녀 여러분, 1. 800년 전 귀족 집안인 파바로네 디 오프레두쵸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분이 바로 아시시의 글라라입니다. 이 “새 여성” – 프란치스칸 가족의 총봉사자들이 최근의 서한에서 그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 은 성 프란치스꼬 그늘에서 “작은 나무”로 살았습니다. 성

도미니코 성인의 어머니 복녀 제인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도미니코 성인은 도미니코회라는 수도회의 설립자이다. 그런데 성 도미니코의 어머니 역시 성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도미니코 성인의 어머니는 아자의 제인Jane(Joan or Joanna) of Aza이라고 알려지는 복자이다. 레오 12세 교황께서 1828년에 그녀를 시복하셨다. 많은 이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도미니코 수도회에서는 수도회를 창설한 성인의 어머니이므로 성녀께 대한 신심을 아끼지 않는다. 도미니코 성인에 비해

세계 대전, 8월의 성모님 축일, 전례력

1945년 4월 30일 게르만족 나치를 이끌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자살하고, 그의 권한이 카를 되니츠Karl Dönitz에게 이양되었으나, 5월 2일에 소련군이 그를 베를린에서 체포함에 따라 독일군을 대표하여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이 5월 8일에 무조건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한다. 따라서 유럽은 다음날인 5월 9일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일이 아닌 ‘승리의 날’로 전쟁 종식과 다시 찾은 평화를 기념한다. 그렇지만 제2차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모든 성인이 하느님의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신 분들이지만, 인류의 역사 안에 아직까지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성인이 또 있을까 싶다. 스페인 바스크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St. Ignatius de Loyola, 1491~1556년)는 예수회 창립자이자 초대 총장이다. 46세의 늦은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교황청으로부터 1540년에 예수회 회헌을 인가받았다. 예수회의

“나를 붙들지(만지지) 마라”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하신다. 성경의 언어인 희랍말은 ‘메 무 압투(Μή μου ἅπτου, mḗ mou

성 야고보 사도(7월 25일)

5월 3일에 기념하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小) 야고보와 달리 7월 25일에 기념하는 이른바 큰(대大) 야고보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성경의 기록에 따라 “천둥의 아들”(마르 3,17)이라고도 불린다.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 어부로서 42년경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셨으며,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끝에서 이분의 기념 성당을 만난다.(※참조.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5월 3일) https://benjikim.com/?p=9714 조개껍질이 성지 순례의 상징이 된 이유 https://benjikim.com/?p=4991)  예수님께서 큰

자화상

많은 화가가 늘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렘브란트만도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으며, 붕대를 감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도 3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화가들이 이렇게 자화상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모델을 살 돈이 없이 궁했던 가난이 실제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자의식과 내면세계, 그리고 자기 삶을 드러내고자 한다. 화가들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이별

로마 외곽에 있는 성 바오로 대성당 쪽 몬테마르티니 센터Centrale Montemartini가 있는 곳에서는 사진에서 보는 바대로 1975년 로마시와 로마인 협회에서 설치한 표지석 하나(복제본)를 만나게 된다. 원본은 ‘오스티엔세 길 박물관Museo della Via Ostiense’ 내부 ‘포르타 산 파올로Porta San Paolo’에서 볼 수 있다. 사진의 위는 로마의 사도들로 알려지는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포옹 장면, 아래는 「이 근처에는 거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