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이미지-가톨릭신문

※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우리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의 시성 미사를 집전하셨다. 30년 뒤인 201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교황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를 집전하셨다. 오늘 대축일을 기리며 복음강해를 대신하여 이 시성·시복 미사를 통해 들었던 두 분 교황님의 미사 강론을 수록한다. 우리나라의 고유 축일을 지내지 않는 곳에서는 연중 제25주일 2023을 참조할 것이다.

*더 읽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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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자 시성 미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강론

서울 여의도 광장, 1984년 5월 6일 주일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

1. 오늘 복음에서 따온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시던 길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사람에게 말하듯 최근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그분께 설명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무너져 버린 자신들의 희망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루카 24,21) 그러한 희망이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묻혀 버렸던 것입니다.

두 제자는 낙담해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던 날 여자들과 사도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그분께서 살아 계신 모습으로 목격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 순간 자신들이 그분을 바라보고 있고, 그분과 함께 걷고 있으며,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루카 24,16 참조)

2.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풀어서 메시아가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었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만으로는 완전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 낯선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속에서 뜨겁게 타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그들에게 알지 못하는 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녁 식사 때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 나누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루카 24,3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본 그들은 이제 모든 시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그리고 모든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분의 복음과 부활의 증인이 된 모든 남녀를 통하여 그분에 관한 진리가 먼저 예루살렘에, 다음에는 온 유다에,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민족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진리는 인류의 역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한국 땅에도 이르렀습니다. 그 진리는 중국에서 들여온 서적들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방식으로, 하느님의 은총은 이내 여러분의 학자 조상들을 먼저 하느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지적 탐구로 이끄셨고, 마침내 부활하신 구세주에 대한 살아있는 신앙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욱 깊이 참여하기를 열망하던 여러분의 조상들은 1784년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을 베이징으로 보내어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이 좋은 씨앗으로부터 한국의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공동체는 전적으로 평신도들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점에서 교회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공동체였습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이 교회의 신앙은 너무나 어렸지만, 매우 굳건하여, 몇 차례에 걸친 참혹한 박해의 물결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기도 되지 않아 이미 1만여 명에 달하는 순교자들을 배출해 내며 자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91년, 1801년, 1827년, 1839년, 1846년, 그리고 1866년은 여러분 순교자들의 거룩한 피로 영원히 인장되었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해입니다.

첫 반세기 동안 한국의 신자들은 중국에서 온 단 두 명의 사제만을, 그것도 잠시 동안만 모실 수 있었는데도, 기도와 형제적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결속을 더욱 깊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신분 귀천을 넘어섰고 종교적 소명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리고 베이징에 있는 주교, 그리고 저 멀리 로마에 있는 교황과의 더욱 긴밀한 일치를 끊임없이 모색하였습니다.

더 많은 사제를 보내 달라고 수년간 간청한 끝에, 여러분의 신앙 조상들은 1836년 첫 프랑스 선교사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들 중 몇몇 역시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에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 이 역사적인 예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루어 낸 찬란한 결실은 참으로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증거가 맺은 열매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불멸의 영성은 비극적으로 분단된 이 땅의 북녘, ‘침묵의 교회’에 있는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떠받쳐 주고 있습니다.

4. 그리하여 오늘 로마의 주교이자 사도 베드로좌를 이은 후계자로서, 저는 한국 땅에 있는 교회의 희년에 함께 참여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미 며칠 동안 순례자로서 여러분 가운데 머물며, 주교이자 교황으로서 사랑하는 한국 민족의 아들딸들을 위한 봉사를 수행해 왔습니다. 오늘 전례는 이러한 사목적 봉사의 최고점을 이룹니다.

보십시오! 이 시성 전례를 통하여 한국의 순교 복자들이 가톨릭교회의 성인록에 올라갑니다. 이분들은 여러분 민족의 진정한 아들과 딸들이며, 이 외방에서 온 여러 선교사들도 그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육신과 언어와 문화에 있어 여러분의 조상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신앙을 증언한 신앙의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열세 살의 유대철(베드로, 1826~1839년))로부터 일흔두 살의 정 마르코(의배, 1795~1866년, *서양 선교사들의 순교 모습을 보고 감동해 입교하였다. 페레올 주교에게서 회장 임명을 받아 활동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아원인 ‘성영회’ 원장으로 일했다. 다블뤼 주교에게서는 ‘살아있는 성인’이라는 칭송을 들었다)에 이르기까지, 남녀, 성직자와 평신도,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 평민과 귀족, 그리고 앞서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초기 순교자 중 한 분인 권 테레사(천례, 1783~1819년, 권일신의 딸이자 동정 부부)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십시오. “천주님께서는 만민의 아버지이시요 만물의 주님이신데, 어떻게 나더러 그분을 배반하라고 하느냐? 이 세상에서도 자기 어버이를 배반한 자는 용서받지 못하거늘, 하물며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그분을 내가 어찌 배반할 수 있겠느냐?”

한 세대 뒤, 유대철 베드로의 아버지 유진길 아우구스티노(1791~1839년)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일찍이 하느님을 알고 난 이상, 결코 그분을 배반할 수 없다.” 조 베드로(화서, 1815~1866년, 조선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마부이자 복사로 여러 해 동안 신부를 극진히 보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 친아버지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이토록 자애로우신 하늘의 주님 아버지를 모른다고 내가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열일곱 살의 이 아가타(1823~1840년, *9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300대 이상의 태장과 곤장 90대를 맞고, 1840년 1월 9일 옥에서 만난 과부 김 데레사와 함께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가 어린 남동생과 함께 부모가 신앙을 버렸다는 거짓말을 들었을 때 뭐라고 말했습니까? “부모님이 배반하셨든 안 하셨든 그것은 그분들의 일입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우리가 늘 섬겨 온 하늘의 주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성인 신자 6명도 순교하기 위해 스스로 관가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가타와 그녀의 부모, 그리고 다른 6명 모두 오늘 시성됩니다. 이 밖에도 그에 못지않게 충실하고 용맹하게 주님을 섬긴 수많은 무명의 겸손한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5. 한국의 순교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자기 생명의 희생을 통하여 그들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다음 말씀은 참으로 그들이 한 말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니며,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서 드러나게 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늘 죽음에 맡겨져,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드러나게 합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닮았습니다. 그분의 죽음처럼 그들의 죽음 역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 이들 자신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증인들의 살아있는 공동체인 교회의 누룩이 되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라는 그리스도교 초기 세기의 이 명언이 우리 눈앞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 땅의 교회는 장엄한 방식으로 구원의 선물을 주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성 베드로가 이렇게 쓴 것이 바로 이 선물에 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질 은이나 금 같은 것으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되찾아진 것입니다.” 이 숭고한 가격, 이 구속의 가격에 여러분의 교회는 한국 순교자들의 증언에 바탕을 두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지속적인 증언을 더하고자 합니다.

이 증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땅에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참 하느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 참 사람이시요 동정 마리아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 말입니다.

일찍이 엠마오에서 두 제자는 ‘빵을 떼어 나누실 때’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한국 땅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제자들이 성체성사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그분의 몸과 피를 모시고, 세상의 구세주이신 그분께서 성령의 힘으로 여러분을 당신 몸의 일치 안으로 맞아들여 주시기를 빕니다.

이 장엄한 날이 미래 세대를 위한 생명과 거룩함의 보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며 오늘 당신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십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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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의 124위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 강론

서울 광화문 광장,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성 바오로는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의 영광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신앙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시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셨고, 그분의 승리는 또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승리를 경축합니다.

이제 그분들의 이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 옆에 나란히 함께 놓이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그분들에게 공경을 드렸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환희와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함께 참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승리를 우리에게 선사하셨음을, 순교자들은 성 바오로와 함께 증언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복자 바오로와 그 동료들을 오늘 기념하여 경축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여명기, 바로 그 첫 순간들로 돌아가는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는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민족,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적 호기심과 종교적 진리의 탐구를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복음과 처음으로 만난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더욱더 많이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 대한 무언가의 깨달음은 곧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져, 첫 세례들과 더불어 충만한 성사 생활과 교회적 신앙생활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선교 활동의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사회적 신분의 차별과 상관없이, 믿는 이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던 초대 교회의 삶(사도 4,32 참조)에서 영감(靈感)을 받아, 한국의 신자 공동체들 안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평신도 소명의 중요성, 그 존엄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저는 여기 있는 많은 평신도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며, 특별히 날마다 삶의 모범으로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화해시키시는 사랑을 가르치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저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여기 있는 많은 사제들에게도 특별한 인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헌신적으로 행하는 직무 수행을 통해, 지난 세대의 한국 천주교인들이 일구어 온 풍요로운 신앙의 유산을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기를, 그리고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고 지켜주시기를 간청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기를 청하지 않으셨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어 세상 안에서 거룩함과 진리의 누룩, 즉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이 땅에 믿음의 첫 씨앗들이 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요한 17,14 참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박해를 의미했고, 또 나중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그들의 진정한 보화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으로,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 증언의 순수성이었고,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우리는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오늘의 이 경축을 통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마음에 품고 기리고자 합니다. 특별히 지난 마지막 세기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그분의 이름 때문에 모진 박해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억합니다.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입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전구와 더불어 모든 한국 순교자들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온갖 좋은 일과 믿음 안에서, 또 한결같이 거룩하고 순수한 마음과 사도적 열정 안에서 항구함의 은총을 받아,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을 거쳐 마침내 땅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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