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

……‘되새김’의 어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흔히 ‘묵상meditatio’이라고 일컫는 것이 애초에 어떤 뜻이었는지를 먼저 말씀드려야 합니다.[1] 국어사전에는 대체로 ‘묵묵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풀이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 말은 대개 어떤 영적 주제를 놓고 사색하거나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단순히 단어나 구절을 입으로 소리 내어 거듭 읊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묵상’이란 말의

테오데미르 주교와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의 여러 곳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의 갈리시아 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여 km 도보순례 길이다. 성 야고보 사도의 유해를 모신 것으로 알려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는 순례길의 상징은 가리비와 노란 화살표이다.(*참조-조개 껍질이 성지 순례의 상징이 된 이유: http://benjikim.com/?p=4991) 누구나 생애에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의

고백록(19)

3674. 저의 주 하느님, 당신의 심오한 비밀의 저 품속이 얼마나 깊습니까? 그 대신 제 죄악들은 그 품에서 저를 얼마나 멀리 내치는 결과를 냈습니까?(11-31.41) 3675. (시간 속에서 기대expextatio, 주시contuitus, 기억memoria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인식과 영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직관intuitio은 사뭇 다르다.) 3676. 인간의 빈약한 지성은 대개 말로만 풍성합니다. 진리의 발견보다는 시비에 말이 더 많고, 성취보다 요구에

마르 7,1-8.14-15.21-23(연중 제22주일 ‘나’해)

지난 5주 동안 “생명의 빵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으로 요한복음 6장을 통해 예수님의 긴 교리 수업과도 같은 말씀을 들었으며 다시 ‘나’해의 복음인 마르코 복음으로 돌아왔다. 오늘 복음이 처한 문맥상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빵을 먹이신 이야기(참조. 마르 6,30-34) 뒤에 이어지는 마르코복음 7장의 서두로 오늘 복음은 전개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일부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이 제기하는

성녀 모니카(8월 27일)

어머니와 아들 성인의 축일을 연이어 하루 간격으로 나란히 기억하는 것은 교회의 전례력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교회는 어머니 모니카의 축일을 8월 27일에 지내고 다음 날에 아들 성인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축일을 지낸다. 성녀 모니카는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오늘날 알제리의 수크아라스Souk Ahras)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이교도인 파트리치우스와 결혼하여 아우구스티누스, 나비지우스, 페르페투아라는 3남매를 두었다. 남편과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개종시켰으나 남편이 일찍

문학과 사목자의 양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7월 17일 문학이 미래의 사제나 사목자의 양성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관한 서한을 발표했다. 다음은 영어에서 옮겨온 번역문 전문이다. 1. 저는 원래 이 편지에 사제 양성과 관련된 제목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이 주제가 사목 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고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저는 개인적인 성숙 과정에서

요한 6,60-69(연중 제21주일 ‘나’해)

전례적으로 요한복음 제6장의 종결부에 드디어 도달했다. 다음 주부터는 ‘나’해의 복음인 마르코복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의 빵”에 관한 긴 말씀이 유다인들뿐 아니라 심지어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논란과 충격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공동체 간에 야기된 이러한 논란과 위기에 맞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어린이·아동兒童

우리말에서 ‘어린이’라는 말은 ‘어리 + ㄴ + 이’가 결합한 말이라고 풀이한다. 이 말이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17세기부터인데, 중세 국어에서 ‘어리석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점차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변한 ‘어리다’의 관형사형 ‘어린’에 의존 명사 ‘이’가 결합된 말로 ‘어린 사람’을 뜻하다가 방정환 선생이 1920년에 ‘어린이’라는 말을 새롭게 쓰면서 높임의 뜻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참조. 이화여대 국어문화원) 어린이는 한자말로 ‘아동兒童’이다.

기도라는 예술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법을 배웠고, 엄마 손을 잡고 매일 새벽 미사에 가서 추운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미사를 드렸으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라틴말을 외워 매일미사 복사服事도 했다. 소신학교에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베네디카무스 도미노, Benedicamus Domino)” 하시는 신부님의 외침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데오 그라시아스, Deo Gratias)”라는 라틴말을 외치며 아침 눈을 떴고, 선교사 신부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대로 전례를 따라 매일

요한 6,51-58(연중 제20주일 ‘나’해)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라고 시작하는 총 21개의 장으로 형성된 요한복음의 저자, 그리고 편지글에서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복음사가 요한, 적어도 그와 같은 계보에 있었다고 여겨지던 저자는 시종일관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내용을 그 근본 핵으로 삼아 자기의 복음을 엮어간다.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유별나게 인간들의 ‘밥자리’를 모티브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