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聖德과 성화聖化의 길

부부로 오랫동안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곧잘 “사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운 정 고운 정 ‘정’으로 살고, ‘웬수’같은 질긴 인연으로 헤어지지 못해 산다.”라고 말한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이가 사랑해서 결혼하고 인생의 반려가 되었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랑이 깊어간다기보다는 시들해져 간다고 말하면서 옛 시절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산다. 수도생활도 그렇다. 어리고 젊은 나이에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이별

로마 외곽에 있는 성 바오로 대성당 쪽 몬테마르티니 센터Centrale Montemartini가 있는 곳에서는 사진에서 보는 바대로 1975년 로마시와 로마인 협회에서 설치한 표지석 하나(복제본)를 만나게 된다. 원본은 ‘오스티엔세 길 박물관Museo della Via Ostiense’ 내부 ‘포르타 산 파올로Porta San Paolo’에서 볼 수 있다. 사진의 위는 로마의 사도들로 알려지는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포옹 장면, 아래는 「이 근처에는 거룩한

연중 제15주일 ‘다’해(루카 10,25-37)

이번 주 주일 복음은 “자비”가 단지 어떤 느낌이나 마음에 와닿는 어떤 깊은 감정 정도가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자비는 분명히 이러한 느낌이나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나아가서 어떤 행동이나 실천, 실제 자비를 행하는 동사動詞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던 “어떤 율법 교사”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적인 답으로서 “자비를 베푼”, 그리고 “그렇게 하여라” 하시는 복음 마지막 구절에서

알고리듬의 시인, 레픽 아나돌<스크랩>

레픽 아나돌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데이터 및 기계 지능 미학의 선구자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하며, ‘연결’의 의미를 떠올린다. 〈모닝캄〉이 레픽 아나돌을 만났다. 데이터 조각가 지난 2월 두바이에서 열린 ‘더 타임100 AI 임팩트 어워즈’에서 튀르키예계 미국인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이 AI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네 명의 리더 중 한 명으로

수도회와 음악 장르

세상에는 너무 많은 남녀 수도회가 있어서 그 숫자는 하느님도 모르신다는 말이 있지만, 영리한 ChatGPT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 안에 공식 인정된 남녀 수도회의 개수가 대략 1,200~1,500개 정도라고 대답한다. 그중 2022~2023년 통계에 따를 때 우리나라에는 남성 수도회가 48개, 여성 수도회가 125개, 합계 173개(수도회·수녀회·선교단체 등 포함)가 있다. 수도회마다 개성과 고유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서 수도회의 특성을 쉽게 말하기 위한

요한복음의 일곱

요한 복음사가가 의도하였든 그러지 아니하였든, 공교롭게도 ‘일곱’이라는 숫자와 그에 따른 내용은 요한복음 전체를 개관하는 중요한 열쇳말이 된다. 교회의 교부들에 의하면 “일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하늘과 동서남북이라는 땅이 결합한 완전수이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1-14은 갈릴래아 바닷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신 이야기를 전한다. 베드로와 여섯 명의 다른 사도들이 배에 타고 있었다. 배를 탄 베드로와

신애론(9)

제13장 사랑의 종류에 대하여 1.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선의의 사랑과 정욕의 사랑이다. 정욕의 사랑이란 우리가 무슨 이익이 있음을 바라고 기대하면서 하는 사랑이다. 그리고 선의의 사랑이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되 그것의 선을 위하여 하는 사랑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잘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나,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유머

하느님께도 유머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으로 하느님을 이해하려는 경솔한 태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서 건강한 유머와 유희, 농담, 장난기 등은 우리 삶에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무거운 기분을 떨쳐버리고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황이나 사건을 보다 단순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한다. 프로이트는 때때로 어떤 것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반대편을 바라보라고 제안한다. 유머나

더러울 오汚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다. 탁한 구정물처럼 누군가, 무엇인가가 그를 휘저어 놓아 타인이 그에게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는 공관복음이 모두 전하는 <마귀들과 돼지 떼(마르 5,1-20 마태 8,28-34 루카 8,26-39)>라는 소제목의 일화 속에 등장한다. 맨 먼저 쓰였다고 알려지는 마르코 복음은 그와 예수님과의 만남을

연중 제14주일 ‘다’해(루카 10,1-12.17-20 또는 10,1-9)

오늘 복음 대목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민족들의 복음화에 관해 지녀야 할 내용과 태도에 많은 영감을 준다. 1.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앞서 둘씩 보내시며” 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도”, 곧 ‘선교사’요 ‘파견자’라고 부르시는 열두 제자를 선발하시고(루카 6,13) 그들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게 하셨다.(루카 9,1)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