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저녁에 행하는 양심 성찰은 1522년경 이냐시오의 성 로욜라(1491~1556년)께서 저술한 <영신수련>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성인은 매일의 성찰로써 영적으로 성장해가며, 하느님의 은혜를 더욱 청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의 날들 안에 어떻게 당신의 뜻을 펼쳐가시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양심성찰의 순서로서, ① 준비 기도(편안한 곳에서 자세를 갖추고 마음과 정신을 모둔다) ② 감사(일과 중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모든 것이 감사해야 할 일임을 기억한다) ③ 성찰(나의 하루를 정확히 볼 수 있도록 성령께 청하면서 영화를 보듯이 하루를 떠올려 본다. 특별한 감정을 느낀 순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 아니면 그 반대의 순간, 누군가와 가깝거나 또 멀게 느꼈던 순간들, 특별히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순간이 없었는지 점검한다. 아래에 제시하는 여러 양식의 양심 성찰 목록을 번갈아가면서, 혹은 한 가지를 선택하여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④ 내일을 계획하기(특별히 긴장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하고, 내일도 하느님께서 나를 동행하여 주시도록 청한다) ⑤ 결심과 마감(할 수 있으면 다음 날의 복음을 읽고 주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으로 마감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도문을 더 바칠 수도 있다. 예로서 아래에 제시하는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문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문
주여, 저를 받으소서.
저의 모든 자유와 기억, 이해와 의지,
제가 가진 모든 것과
당신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받으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셨으니
주님, 당신께 이를 도로 돌려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그저 당신 뜻대로 하소서.
당신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리이다.
아멘!
사순절이나 대림절에 부활하신 주님을 맞이하거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곳에서 화해성사로 이를 준비한다. 이때 화해성사에 앞서 흔히 구약의 십계명에 따른 양심 성찰의 양식을 여러 곳에서 보곤 한다. 십계명을 따라 우리 마음을 살피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십계명을 바탕으로 하는 양심 성찰만이 유일한 양심 성찰의 양식일까? 구약이 아닌 신약의 양식을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교회의 문헌은 양심 성찰과 관련하여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 성찰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적당한 성경 본문들은 십계명에서, 그리고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한 가운데 윤리적인 부분, 예컨대 산상 설교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54항)』라는 가르침을 제시한다.
하나의 대안으로서 산상 설교에 따른 양심 성찰(참조. 마태 5,3-10), 가장 큰 계명에 따른 양심 성찰(마태 22,37-40),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참조. 1코린 13,4-6)에 따른 양심 성찰, 사도 바오로가 기술한 성령의 열매(갈라 5,19-22)에 따른 양심 성찰, 그리고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에 기반을 둔 영적이며 육적인 자비의 행위에 따른 양심 성찰을 제안한다. 양심 성찰은 나의 죄스럽고 부족한 부분을 마음 아파하며, 다시는 같은 실수나 반복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내 삶의 리듬이나 양식을 수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해 하느님의 은총을 기도하는 과정이다.
산상 설교에 따른 양심 성찰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나는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나의 소유를 기꺼이 내어놓을 마음이 있는가?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 나는 슬퍼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좋은 친구인가?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 나는 다른 이들에게 온유하고 친절한가? 부모님이나 선생님, 도와주시는 분들이나 하느님께 상냥하게 굴었는가?
–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 나는 진지하게 하느님의 뜻을 먼저 선택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내 멋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하려고 하였는가?
–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 나는 나에게 잘못한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는가?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 나는 다른 이에게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는가,
아니면 내 안에 무엇인가를 숨기고자 하는가? 나에게 죄책감을 주는 행동은 어떤 것인가?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 – 다른 사람이 서로 다투거나 미워하게 될 때 이를 그만 두게 하거나 사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가?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 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할지도 모르고 또 그것이 두려워서 의롭고 바른 일을 하기가 어려운가?
가장 큰 계명에 따른 양심 성찰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단 두 가지의 계명으로 구약의 십계명을 요약하시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셨다.
– 하느님보다 물질적인 것을 더 중시하는가?
– 하느님께 매일 기도하는가?
– 화가 나서 하느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부정적으로 입에 올린 적이 있는가?
– 주일 미사나 대축일 등 의무 축일의 미사를 거른 적이 있는가?
– 미사나 단체 활동에서 기도할 때 몸과 마음으로 최선의 태도를 보이는가?
– 하느님과 나의 믿음 생활에 관해 더 많이 배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가?
–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가?
–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는가?
– 행여 나 그대로의 모습을 싫어하지는 않는가?
–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기꺼이 도와주는가?
– 나는 착하고 좋은 아들이나 딸인가?
–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가?
–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른 이를 괴롭히는가?
– 나의 몸을 소중하게 존중하는가?
– 타인의 신체를 업신여기거나 학대하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는가?
–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친 적이 있는가?
– 다른 이에게 거짓말을 하는가?
사랑의 찬가에 따른 양심 성찰
–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 나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나 선생님께 인내하는가?
– 사랑은 친절합니다 –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다른 이를 친절하게 대하는가?
–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 다른 이가 칭찬을 받거나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기쁘게 축하해 주는가?
– 사랑은 뽐내지 않습니다 –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나를 과장하는가?
–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 누군가를 도울 때 나를 위해 하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그를 도우려고 하는가?
–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 친구들이나 가족,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을 두고 못된 말을 하지는 않는가?
‘미안합니다’ 혹은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들을 즐겨 사용하는가? 다른 사 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괜히 끼어들지는 않는가?
–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 다른 이를 돕는 것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가?
–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짜증이나 신경질을 부리는가?
–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 누군가가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처 입기를 바라거나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해봤으면 하지는 않는가?
–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습니다 – 다른 이가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이를 부추기지는 않는가?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리고 웃어른들에게 대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은 없는가?
성령의 열매에 따른 양심 성찰
바오로 사도께서는 ‘육과 성령’을 설파하시면서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 5,19-21)라고 지적하시면서, 이어서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맺는 ‘9가지 성령의 열매들’을 가르쳐주신다.
사랑 – 타인을 보는 시선이 선하고 착한가? 더 사랑하지 못한 안타까움은 없는가?
기쁨 –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기쁨의 사람인가?
평화 – 오지랖이 아닌 배려로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위해 내가 손해를 감수하는가?
인내 – 눈으로 참고, 귀로 참으며, 특별히 입으로 참으려 하는가?
호의 – 타인의 행동과 태도에 친절하게 반응하는가?
선의 – 타인의 행동과 태도에 관대한가?
성실 – 선행의 결심과 믿음의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가?
온유 – 매사에 부드러운 마음과 태도를 보이는가?
절제 –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부분은 없는가?
영적이며 육적인 자비의 행위에 따른 양심 성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5년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성년의 모토는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져라’ 입니다.…저는 이 희년에 그리스도인들이 자비의 육체적·영적 활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가난이라는 비참함에 무뎌진 우리의 양심을 다시 일깨워 주고, 또한 복음의 핵심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자비를 더 많이 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비의 이러한 활동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어 우리가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십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 제14,15항, 2015년 4월 11일)』 하신 바 있다. 여기서 거론된 자비의 행위들은 항목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양심 성찰에 이미 큰 질문이 된다.
(자비의 육체적 활동)
–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
–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
– 병자를 돌보아 주는 것
–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는 것
–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것
(자비의 영적인 활동)
– 모르는 이에게 가르쳐 주는 것
– 의심하는 이에게 조언하는 것
–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는 것
– 죄인을 훈계하는 것
– 우리를 모욕하는 이를 기꺼이 용서해 주는 것
– 불쾌한 일을 참아내는 것
–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
(*이미지-구글)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문을 작년 사순절에 알게 되었다면, 머리로만 알고 바라는 기도문이었을 것을, 올 사순절은 우연치 않게 같은 내용의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온몸으로 느끼고 바라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더 나를 성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은총을 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