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던 길고도 긴 ‘코비드 19’의 터널을 지나왔으면서도 어느새 다 잊었다. 코비드 팬데믹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다정스럽게 어울리던 광경에 석연치 않은 경계의 눈초리를 무의식으로나마 심었고, 친구들을 잠재적인 감염자로 대하면서 선생님에게서나 친구들에게서나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는 일상을 살게 했다. 부모 역시 자녀들에게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는 아이들은 내면에 쌓이는 공격성과 외로움, 불안과 우울을 고립이나 엉뚱한 일탈로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잊는 데에 무척 너그럽다.
돈 보스코의 성장 과정과 성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돈 보스코는 『여러분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합니다.』[1]라는 금언을 남긴다. 사랑은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사랑과 친절, 온유함 같은 덕성은 세월이 가면서 누구에게서나 저절로 자라나는 것일까? 돈 보스코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아홉 살 어린 나이의 요한 보스코는 꿈속에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못된 애들의 말을 듣고 『곧장 아이들 가운데로 뛰어들면서 주먹질과 고함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당시의 꿈은 『고상한 옷차림을 한 존귀한 남자 어른 한 분이…주먹다짐으로 하지 말고 온유와 사랑으로 이들을 네 친구로 만들어라.』[2]라는 가르침으로 요한을 이끌었다. 그뿐이 아니다. 10대 시절의 요한 보스코는 루이지 코몰로라는 착한 친구를 만나 『그에게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3] 코몰로와 처음 만나던 시기, 요한 보스코는 자신의 성정을 다듬는 잊지 못할 사건을 경험한다. 돈 보스코는 당시를 이렇게 술회한다. 『루아지 코몰로를 괴롭히는 못된 애들을 상대로…몹쓸 혈기에 자제심을 잃은 나는 눈에 불을 켰다. 손에 몽둥이나 의자를 잡지 못한 나는 그들 중의 한 아이의 어깨를 꽉 움켜잡고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곤봉처럼 마구 휘둘러댔다. 네 명이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단둘이 있게 되자 루이지는 내게 아주 색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요한아, 네 힘에 놀랐어.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친구들을 해치라고 힘을 주신 것은 아니잖아. 그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길 바라셔.’』[4] 어려서는 다혈질이었을 돈 보스코는 성장기의 영적 체험과 만남을 통해 온유함과 사랑, 그리고 자기 절제를 배워갔다.
이러한 배움과 덕행의 수련 과정에서 돈 보스코가 섭리적으로 어머니 마르게리타를 비롯하여 루이지 코몰로와 같은 좋은 친구나 요한 칼로소 신부, 요셉 카파소 신부 같은 영적인 지도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청소년들을 위하여 돈 보스코를 불러일으키고자 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또한 돈 보스코 스스로 <신심 생활 입문>이나 <신애론神愛論-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논論함>의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랑의 박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1567~1622년)[5]을 모델로 삼았던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만을 기억해 본다. 돈 보스코는 사제 서품을 받던 때 아홉 가지 중대한 결심을 하였는데, 그중 네 번째 결심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애덕과 온유가 만사에 나를 인도해 주길!』[6]이라고 기록한다. 또한 돈 보스코는 『첫 오라토리오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첫째, 바롤로 후작 부인은 이 성인의 이름으로 사제들의 수도회를 설립할 뜻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의도에서 우리가 오라토리오로 쓰게 된 장소의 입구에 성인의 초상화를 그려 걸어 놓게 했다. 둘째, 우리의 사도직은 많은 침착성과 온유함을 요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탁월한 온유함과 사도직의 열매를 본받을 수 있는 은혜를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도록 그를 주보 성인으로 택한 것이다.』[7]라고 기록하면서 첫 번째 오라토리오의 이름을 지을 때 주저함이 없이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이름을 따게 된 연유를 밝혀준다. 이와 같은 내력을 바탕으로 ‘돈 보스코의 교육학’을 ‘살레시오회의 교육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모레볼레짜amorevollezza
돈 보스코의 교육학을 이루는 세 축으로서 ‘이성·종교·사랑’이라 할 때 ‘사랑’이라고 번역되는 돈 보스코의 ‘사랑’은 돈 보스코의 말로 ‘아모레볼레짜amorevollezza’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 번역인 ‘loving kindness’로부터 ‘친절한 사랑’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어휘를 그저 ‘사랑’이라 하기에는 돈 보스코께서 원하던 대로 그 뜻을 옮기기에 충분치 않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 살레시오회에서도 이 용어를 따로 번역하지 않고 고유의 표현인 ‘아모레볼레짜’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그 말의 어원적 구성과 살레시오 영성의 예방교육적 의미를 담아 굳이 보편적 용어로 옮겨본다면 ‘자애慈愛’가 적합하다고 본다. ‘자애’의 ‘자’(慈=‘실 사絲’+‘마음 심心’ 곧 나비가 되려는 누에고치가 달린 상황을 사랑스럽게 바라봄)라는 좋은 개념이 있으므로, 또 ‘사랑 애愛’라는 글자 가운데에도 ‘마음 심心’이 들어 있어 전체로 아름다운 말을 이루니 ‘자애’라고 번역할 수 있다.[8] 이는 청소년들과 공감하며, 그들의 사랑을 끌어내고, 그들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며, 그로부터 교육자도 성장해가는, 교육적 사랑의 마음이요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이미지-구글)
아서 렌티Arthur Lenti 신부는 돈 보스코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돈 보스코는 자주 이렇게 충고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라.’ ‘로마에서 보낸 편지(1884년)’에서 돈 보스코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27번이나 사용하였다. 여러 차례 돈 보스코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관해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편견이 없으며, 관대하고, 사욕이 없으며,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명하신 사랑이다. 보다 단순하게, 돈 보스코는 교육자는 훌륭한 그리스도교 신자 부모가 자기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청소년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자주 말하였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랑이 아무리 깊고 실질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단순히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입증되고 표현된’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사랑은 ‘감응하는 사랑(자애)amorevolezza’으로 실제로 표현되어야 한다. 돈 보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청소년들은 사랑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육은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랑이 드러날 때만 가능하다. 교육자는 ‘사랑을 받고자 하면 먼저 사랑해야 하고 자기의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는 않다. 사랑은 흡사 예수님이나 사랑스러운 부모님이 사랑하는 것처럼, 애정 어린 배려와 관심 어린 호의와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관심을 가지고 표현해야 한다. 돈 보스코는 그렇게 표현된 사랑을 ‘감응하는 사랑(자애)’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할 때만 교육자는 인격적인 차원에서 젊은이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9]
이 외에도 돈 보스코의 ‘사랑’을 해설하는 문헌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사랑’이야말로 돈 보스코 교육 방법론의 요체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돈 보스코는 자기 아들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이 당신의 친구가 되도록 행동하십시오.’ […] (남미의 선교사 파견 후에) ‘우리가 아메리카에 소개하려고 하는 살레시오 정신은 […] 모욕감을 안겨주는 비난이나 처벌이 없이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랑과 인내, 온유입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학생들과 다른 젊은이들 안에서 살레시오 회원들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개방적이고 정중한 살레시오 회원은 수줍어하고 겁이 많은 이들에게, 지나친 존경 때문에 멀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기꺼이 먼저 접근’한다. 그는 간격을 메우고 공감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강론대’에서 내려오며, 어린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도 어린이가 되려는 자세를 지닌다. 돈 보스코는 언제나 이런 태도를 권장했다. 다른 사람들이 접근해올 때는 살레시오 회원은 언제나 그를 반갑게 맞아들여야 하며 문과 마음을 열어 주어야 하며 귀를 기울여주고 그의 관심사에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 이 모든 것은 특별히 세 가지 기본적 태도 또는 자질들, 즉 타인의 선익을 추구하는 ‘친절’과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거나 이기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그의 결점들 이면에 숨어있는 독자적인 인격적 존엄성을 인식하는 ‘존중’과 끊임없고 인내로운 사랑의 표현인 ‘인내’의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 살레시오 회원의 ‘친절한 사랑’, […] ‘amorevolezza’는 돈 보스코의 특별한 용어이다. […] ‘진실하고 개별적인 ‘사랑’ […] ‘아버지·형제·친구로서의 사랑’ […] ‘(청소년들 편에서 응답으로) 우정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랑’…』[10]
돈 보스코의 ‘사랑’ 혹은 ‘자애’는 본질에서 교육자 자신,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청소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지극히 사랑받는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로 유명한 돈 보스코의 금언 『사랑받도록 애쓰십시오(Studia di farti amare!)』라는 말은 교육자가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만, 이는 교육자나 청소년이나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들임을 깨우치고, 그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한 노력은 ‘인내’라는 특성을 벗어날 수 없다. 교육자로서 하느님 앞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나를 점검하는 한편, 특별히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이기 위하여 교육자는 때로 간肝도 내어주고 쓸개까지도 내어주는 인내를 발휘해야만 한다. 아이들의 신뢰를 얻어내야만 하는 인내는 내 안의 분노와 아이 안에 내재하는 분노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깊은 통찰을 전제로, 어떤 때에는 억울함까지라도 감수하면서 긴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포기를 유발하는 유혹과 끊임없이 맞서야 하는 일이다.
돈 보스코의 사랑은 또한 특별히 ‘기쁨’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유명한 돈 보스코에 관한 전기 작가 테레시오 보스코Tersio Bosco는 돈 보스코의 사랑에 관하여 『돈 보스코의 사랑은 그 특성이 명랑하다. 이미 ‘명랑회’[11]를 창립했던 사람으로서 돈 보스코는 왁자지껄한 기쁨의 가치, 젊음이라고 부르는 폭발물 안에 담긴 기쁜 에너지 발산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그 스스로 ‘놀아라, 뛰어라, 시끄럽게 하라. 내게는 너희가 죄를 짓지 않는 것만이 중요하다.’라고 아이들을 부추겼다. […] 소년들은 그를 사랑했고 마음 가득히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와 만나는 것은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었다.』[12]라는 말을 남긴다.
돈 보스코를 따르는 32개의 그룹으로 구성된 살레시오 대가족은 세계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하나같이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을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아모레볼레짜이고 친절함이며 환대이고 기쁨과 명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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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돈 보스코, 「준비된 청소년」, 토리노 1847, 7쪽(출판물 2권, 187쪽); 회헌 14조 및 아서 렌티,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돈보스코미디어, 2015년 개정판, 제3권 56쪽 참조 [2] E. 체리아 신부 엮음, 돈 보스코의 회상, 김을순 역, 돈보스코미디어, 2010년 3판, 43-45쪽 [3] 같은 책, 95쪽 [4] 같은 책, 95-96쪽 [5] 살레시오 성인의 저서로서 「신심 생활 입문」, 「신애론神愛論」은 모두 우리말 번역본이 있다. 「신애론」의 축약본인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라는 책도 있으나, 완역본은 전반부를 최민순 신부가 전반부를 보고 변기영 신부가 완성한 번역본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판이다. 최근 르네 라가야 신부의 저술인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말라」라는 살레시오 성인의 생애를 다룬 책이 ‘돈보스코미디어’에서 발간되었다. 살레시오회는 2022년 전 세계적으로 살레시오 성인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6] E. 체리아, 「돈 보스코의 회상」, 김을순 역, 돈보스코미디어, 2011년, 3판, 174쪽-각주 47, 1841년 돈 보스코가 사제 서품 피정에서 결심을 적은 노트, 여러 전기에서 발췌한 내용의 종합 [7] 같은 책, 213-214쪽 참조 [8] 사실 이는 필자가 각종 외국어에 능통하신 故 장익 주교를 그분 생전에 만나 여쭤보았을 때, 살레시오회에 대해서 이해가 깊으셨던 주교께서 『살레시오회의 번역이라면 ‘자慈’라는 글자의 생김새가 지닌 뜻이 깊으니 ‘자慈’라는 글자를 반드시 넣어서 번역하는 것이 맞다.』라고 하시던 말씀과 우리말 성경에서 하느님의 사랑, 혹은 신적神的인 사랑을 ‘자비’ 혹은 ‘자애’로 번역하는 것에 근거를 둔다. [9] 아서 렌티,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강연중 옮김, 돈보스코미디어, 2014년, 제3권 197-198쪽 [10] 살레시오회, 「회헌해설집」, 1986년, 제1권, 284-287쪽에서 부분 발췌 [11] 돈 보스코는 키에리의 고등학교 시절 22명에 달하는 친구들과 간단한 규칙을 정하여 함께 지내는 ‘명랑회’라는 모임을 조직한 바 있다고 스스로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한다.(참조. E. 체리아, 「돈 보스코의 회상」, 김을순 역, 돈보스코미디어, 2011년, 3판, 83-86쪽 [12] 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돈보스코미디어, 2020년, 229-230쪽
<한국 살레시오 가족지 20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