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은 영혼의 도둑, 나태의 어머니다(색도塞饕)

식탐, 입만 있고 목구멍은 없는 괴물

「칠극」 제5권은 ‘색도’(塞饕, 막힐 색 / 탐할 도)이다. ‘도’(饕)는 인간의 탐욕 중에서 특별히 음식에 관한 탐욕을 말한다. 원래 도철饕餮은 전설 속에 나오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괴물의 이름이었다. 고대인은 각종 청동기에 이 도철이란 괴물의 형상을 조각하여 장식으로 삼았다.

‘소서’(小序)에서 최창은, 도철이란 괴물이 입만 있고 목구멍은 없어서 마치 따르는 족족 줄줄 새는 술잔과 같아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식탐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주나라 때 청동기에 도철을 새겼는데, 머리만 있고 몸뚱이는 없다.”고 썼다. 도철이란 괴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한정 없는 탐욕, 특히 식탐의 상징이 되었다.

권5는 “식탐이란 무엇인가? 먹고 마시는데 절제가 없이 즐기는 것을 말한다.”로 시작한다. 음식만이 아니라, 다변과 발끈 성내는 것, 음욕에 빠지거나 탐욕이 넘치는 것도 포함된다. 식탐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적이다. 이를 이겨 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실체도 없는 정신의 적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덕을 닦는 공부는 바로 색도, 즉 식탐을 막아 절제의 덕을 기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진한 맛은 온갖 병을 일으킨다.” 책에 인용된 속담이다. 판토하는 음식이 절제를 바탕으로 몸을 기르고 편안하게 우리를 지켜 주는데, 정도에 넘치면 반드시 몸에 해를 끼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의서의 한 구절을 더 인용했다. “먼저 먹은 음식이 소화되지 않았는데 또 밥을 더 먹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세네카는 충고한다. “식탐은 이를 따르는 자를 눈멀게 하고, 귀머거리가 되게 하며, 벙어리로 만들고, 약해지게 하고, 늙게 해서 끝내는 죽게 만든다. 하찮은 몸뚱이의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가지고 온몸에 죽을 때까지의 근심을 남긴다. 한 가지 안주의 묘한 단맛을 가지고, 여러 해 동안 쓴 약을 먹어야 하는 괴로움을 자주 불러들인다. 이 때문에 ‘식탐은 도둑과 같아서 나와 친하다가 나를 죽인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이렇다. “육신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영혼은 병이 들고, 육신이 괴로우면 정신의 병이 낫는다.”

그러니 보양식만 먹고 ‘맛집’만 찾아다니면서 육신을 두터이 기르는 데만 힘을 쏟는 것은 사실 나의 내부에 적을 기르고 독을 퍼뜨리는 것과 같다.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고, 괴로움은 즐거움의 씨앗이다. 지금 괴로움을 기르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찌 즐거움을 거둘 수가 있겠는가?”도 다 한가지 의미로 한 말이다.

또 “늦은 식사는 고기 반찬에 해당한다.”는 중국 속담을 소개하면서 “음식의 달콤함은 풍성하게 많이 차린 것에서 생기지 않고, 배고프고 목마른 데서 생겨난다.”고 충고했다. 또 “먹는 것과 배고픈 것은 둘 다 괴롭고 서로 맞물려 있다. 앞의 괴로움이 끝나면 뒤의 괴로움이 시작된다.”고도 했다.

이런 말도 경청할 만하다. “청렴한 선비는 먹고 마실 때, 자신이 입과 배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음식의 맛이 그 절도를 손상시키지 못한다. 식탐이 있는 사람은 먹고 마실 때 내가 입과 배의 종이 된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이 거칠어도 또한 절도를 손상하고 만다.”

‘대식가’, 게오르크 에마누엘 오피츠, 1804년

술은 부드러운 마귀이고 음란을 지펴 주는 땔감

식탐 중에 가장 절제가 어려운 것은 술이다. 권5의 중간 부분부터는 술에 대한 경계가 이어진다. “취한 사람은 착한 마음이 모두 떠나가고, 악한 생각은 점점 더 생겨난다. 아름다운 말과 훌륭한 행실은 다 없어지고, 망령된 말과 잘못된 행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온다. 말짱할 때는 절대로 감히 하지 못하던 짓을 술에 취하면 전부 한다.” 그 결과 “술에 취한 사람은 모든 선에 대해 문을 닫아걸고, 모든 악에 대해 문을 열어젖힌다.”고까지 말했다.

“술은 부드러운 마귀이고, 맛 좋은 독이며, 달콤한 죄악이다. 여기에 복종하는 자는 다만 죄를 범할 뿐 아니라, 전체가 온통 다 죄이다. 스스로는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술에게 먹히고 있다.” 술의 유혹에 걸려들면 여기에 음란한 생각이 함께 끼어든다. “술이란 음란을 지펴 주는 땔감이다. 술을 마음대로 마시면서 함부로 음란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나는 지혜에 내 마음을 옮길 생각이다. 그래서 술을 끊기로 맹세한다.”고 말했다. “술 먹는 사람은 마음이 언제나 어두워서, 비록 큰 지혜를 쌓았더라도 또한 능히 그 지혜를 쓸 수가 없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지혜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술이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보인다.

하지만 이 탐욕을 걷어 내지 못하고 취생몽사(醉生夢死,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이 또한 식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식탐이란 것은 또한 게으름과 나태의 어머니라고도 한다. 식탐을 마구 부리는 자는 먹기 전부터 먹고 마시는데 너무 정신이 팔려, 도덕에 대한 생각이 들어올 길이 없다. 먹고 마신 뒤에는 배와 머리가 온통 무겁고, 눈은 침침하고 정신은 몽롱해서 그저 잠잘 생각뿐이다. 도를 향한 생각과 덕에 대한 바람은 푹 가라앉아 떨치지 못하고, 유익한 사업은 아예 할 힘조차 없다. 왜 그럴까? 정신이 잔뜩 부른 배에 파묻혀 버린 것이 몸이 진흙 속에 빠진 것과 같아서, 누가 당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식탐을 절제하는 방법

이제까지 식탐의 폐해를 말했으니, 처방이 없을 수 없다. “식탐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차츰차츰 헤아려서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많아야 할지 적어야 할지를 상세히 살피고 연구해 보아야 한다. 많을 것 같으면 줄이고, 적다고 여겨지면 더해서, 딱 알맞게 해서 멈춘다.” 균형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첫째는 규칙적인 시간을 정해서 먹는 것이다. 둘째는 맛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절제 있는 선비는 먹고 마실 만한 물건을 얻었을 때 만족스럽게 여길 뿐 고르지는 않는다. 어쩌다 맛난 음식을 만나더라도 버리지는 않고, 다만 식탐에 빠질까 염려하여 뜻을 더해 이를 아껴 절약하니, 아름다움은 더 늘어나고, 헤아림은 자꾸 줄어든다.” 셋째는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다. “음식을 절제해서 육신은 육신의 맛에 배부르고, 정신은 정신의 맛에 배가 불러, 저마다 그 기름을 얻는다면, 모두 편안하고 고요해서 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넷째는 점잖은 태도를 꼽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음식의 유혹에 끌려 예의나 법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손과 눈이 바쁘고, 욕심 사납게 곁을 흘깃대는 행동은 모두 식탐으로 인한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혀와 목구멍 사이의 몇 센티를 지나는 동안만 의미가 있다.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모두 똑같아진다. 그래서 육체는 밑바닥이 없는 자루여서, 채워 담는 것마다 문득 변하여 썩고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채운다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런 말도 나온다. “대저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란 하잘것없는 육신의 잠깐 사이의 즐거움이다. 지금 사람들이 특별히 중시하는 것은 단맛인데 목구멍과 혀의 두 치 사이일 뿐이다. 이것을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이 뜻을 받아서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나 속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의 입이다. 아무리 하찮은 먹거리로 속이더라도 그때만 넘기면 되니 이는 괜찮은 방법이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변소를 위해 정력과 지혜를 다하여 애쓸 필요가 없다”(「여유당전서」 중에서), 목구멍만 넘어가면 모두 더러운 똥이 되어 나온다. 먹다가 뱉은 음식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은 입을 속이기 위해 상추로 쌈을 싸서 먹는다고 했다.

식탐은 있지도 않은 배고픔을 만들어 내는 욕망인지라 멈추기가 어렵다. 새나 짐승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고 나면 편안히 배부른 즐거움을 누리므로 먹다가 몸이 상해 병드는 일이 없다. 음식을 앞에 대해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뿐이다. 칠극의 다른 죄악이 추상적 개념인 데 비해 식탐만은 유일하게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데서 오는 탐욕을 다룬 점도 특별하다.(정민, 경향잡지, 2023년 7월호, 제115권, 통권 18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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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塞饕(막힐 색, 탐할 도)

…옛날에 정鼎(솥 정)을 주조할 때 도饕라는 짐승을 그렸는데, 그것이 입은 있어도 목구멍은 없다고 한다.…새는 술잔은 당할 수가 없으니, 그것을 강과 바다에 던지더라도 끄떡없을 것이다. 입과 배는 새는 술잔인 셈이니, 대단하다! 술과 밥에 시달리고 취하고 배부름에 헤매면서도, 온 세상에 욕심을 내지 않는 자는 드물다.…(색도塞饕 편, 색도소서塞饕小序, 강동江東 최창崔淐 *최창-생몰 불명: 명나라 말기의 문인으로, 장사長寺 사람이다. 자는 진수震水, 호가 학정鶴汀이다. 1601년 진사에 급제했다. 벼슬은 이부낭중吏部郎中에 이르렀다. 관리로서는 청렴강직했고, 생활은 빈한했다. 문예에 특출해 저서로 <지환초知幻草>와 <구문衢問>, <남악南岳> 등이 있다. 초기 천주교와 관련한 글을 여러 편 남겼다. <칠극七克> 각 권 앞에 실린 최창의 ‘소서小序’는 초기 <칠극> 판본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이후 축약본인 <칠극진훈七克眞訓> 등에 수록되었고, <칠극> 후대 판본에도 실렸다.)

5.1 식탐이란 무엇인가? 먹고 마시는 데 절제가 없이 즐기는 것을 말한다. 말이 많거나, 성을 내거나, 시끄럽게 떠들고, 음욕에 빠지며, 탐욕이 끓어 넘치고, 착한 일에 게으른 것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모두 그 부류다. 식탐이라는 것은 내 몸 가운데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적이다. 덕을 닦는 인사라면 마땅히 먼저 공격해서 먼저 이겨야만 한다. 몸 가운데 형상 있는 적을 먼저 이겨내지 못하고서, 한갓 몸 바깥에 있는 정신의 적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기지 못할 것이다. (饗者何? 食飮無節之嗜也. 多言, 忿怒, 譁囂, 淫慾, 沓貪, 懈怠于善, 諸情皆其流耳, 夫饕者, 我身中最密邇之敵, 脩士所當先攻先勝也. 身中形敵不先勝, 徒攻身外神敵, 必不勝矣.)

5.2 …사람은 뜻이 향하는 것을 하기를 원하니, 아름답고 좋은 것이 그것일 뿐이다. 아름답고 좋은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① 이로움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고, 하나는 ② 의로움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하나는 ③ 즐거움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다. 네가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면 이로움과 의로움, 즐거움 세 가지를 모두 누릴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모두 잃을 것이다. 이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에서 즐거움을 꾀하는 자는 홀로 몸을 상하고 덕을 손상할 뿐 아니라, 꾀하는 즐거움마저도 함께 잃어버릴 것이다. (…夫人願欲所趣向者, 美好而已. 美好有三, 一曰利美好, 一曰義美好, 一日樂美好. 爾食飮以節, 利義樂三咸享也, 否則咸亡焉. 故食飲圖樂者, 微獨傷身損德, 所圖樂並消亡矣.)

5.3 …식탐은 이를 따르는 자를 눈멀게 하고, 귀머거리가되게 하며, 벙어리로 만들고, 약해지게 하며, 늙게 해서 끝내는 죽게만든다. 하찮은 몸뚱이의 잠깐의 즐거움을 가지고 온몸에 죽을 때까지 근심을 남긴다. 한 가지 안주의 묘한 단맛을 가지고 여러 해 동안쓴 약을 먹어야 하는 괴로움을 자주 불러들인다. 이 때문에 ‘식탐은 도둑과 같아서 나와 친하다가 나를 죽인다’고 하는 것이다.(세네카)… (…饕於從之者, 盲之聵之瘖之弱之老之, 終而殺之. 以微體頃刻之樂, 遺全體終年之憂. 以一肴之妙甘, 屢致數年辛藥之苦. 故曰: ‘饕情如盜, 親我以殺我.’-色搦加…)

5.4 …속담에 ‘부른 배는 맑은 생각을 품지 못한다.’고 했다.… (…語曰: ‘饜腹不抱淸念.’…)

5.5 …삿된 마귀는 바로 풍성한 음식과 안일과 즐거움 가운데 깃들어 있다.…옛 현인이 이렇게 말했다. ‘입이란 마음의 문이다.…식탐은 삿된 마귀가 사람의 입에 씌운 재갈이다.’… (…邪魔正寓於豊食逸樂之中…古賢有言: 口者心門.…邪魔所加於人口之銜也.…)

5.11 …소와 코끼리는 비록 몸뚱이가 크지만 몇 이랑의 땅이면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천하의 큼과 만물의 많음으로도 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몸뚱이를 기르기에 부족한 것은 어째서인가?…먹어서 배부르고 싶거든 밥을 더 먹지 말고, 다만 욕심을 줄여라. (…牛與象, 雖大身, 數畝之地, 足生之. 而天下之大, 萬物之衆, 不足養一人之微軀, 何哉?…欲食而得飽, 勿加飡, 惟减嗜.)

5.12 …양식이 부족하지 않으면 자루가 부족하고, 배가 밥보다 크지 않으면 굶주림이 배보다 커진다. 먹고 마시는 것이 배에 충분치 않음을 한탄하지 않으면, 배가 먹고 마시기에 족하지 않음을 한탄한다. 그래서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일컫는 즐거움이라는 것은 조금만 절도를 넘어서면 문득 괴로움이 되기 시작한다.”… (…非乏糧, 即乏囊, 非腹大於食, 即綏大於腹. 非恨食飮不足腹, 即恨腹不足食飲. 故曰: “世人所稱樂者, 稍踰節度, 輒始爲苦.”…)

5.14 곡식을 저장해둔 창고에는 쥐가 많고, 식탐을 제멋대로 부리는 마음에는 죄가 많으며, 식탐을 마음껏 부리면 틀림없이 탐욕과 음란함을 함부로 하게 된다. 옛 현인이 이런 말을 했다. “식탐을 버려야 탐욕과 음란함이 절로 멈춘다.”… (夫藏粟之宫多鼠, 恣饕之心多罪, 恣饕必恣貪淫. 古賢有言: “去饕而貪淫自已.”…)

5.15 식탐이라는 것은 또한 게으름과 나태의 어머니라고 한다. 식탐을 마구 부리는 자는 먹기 전부터 먹고 마시는 데 너무 정신이 팔려, 도덕에 대한 생각이 들어올 길이 없다 보니, 쓸모 있는 사업은 할 겨를이 전혀 없다. 먹고 마신 뒤에는 배와 머리가 온통 무겁고, 눈은 침침하고 정신은 몽롱해서 그저 잠잘 생각뿐이다. 도를 향한 생각과 덕에 대한 바람은 푹 가라앉아 떨치지 못하고, 유익한 사업은 아예 할힘조차 없다. 왜 그럴까? 잔뜩 부른 배에 정신이 파묻힌 것이 몸이 진흙 속에 빠진 것과 같아서, 누가 당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夫饕者, 亦謂之怠惰之母也. 恣饕者, 未食之前, 食飲之最繁, 道德之慮, 無由自入, 有益之業, 悉不暇爲, 食飮之後, 腹首俱重, 目冥神昏, 惟思寢寐, 道慮德願, 沈淪不振, 有益之業, 盡無力爲之. 何者? 神瘗於果然之腹, 猶身陷泥中, 莫之或援矣.)

5.17 …육체는 밑바닥이 없는 자루여서, 채워 담는 것마다 문득 변하여 썩고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채운다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성 그레고리오)… (…“況斯身形, 正爲無底之橐, 且凡所盛貯, 遽變爲朽汚, 以貴美物實之, 何益哉?”-聖厄勒卧略…)

식탐, , 먹고 마심, 살펴야 할 네 가지

5.20 식탐의 근심 중 절도에 지나친 것으로는 술이 가장 크다. 술은 비유하자면 비와 같다. 서서히 내리면 흙 속 깊이 들어가 능히 흙을 기름지게 할 수가 있다. 만약 세차게 소나기로 내리면 땅을 윤택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못 되고 땅 위를 쓸어가 버리고 만다. 절제해서 마시는 술은 능히 조화를 길러주고 근심을 녹이며 힘을 보태주어, 육신과 정신에 모두 유익하다. 절도에 지나친 자는 이와 반대로 한다. 육신과 정신이 모두 술의 물결 속에 빠져서 고꾸라지고 흐리멍덩해져서 눈은 살피지를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며, 몸은 느낌이 없고, 마음은 밝게 판단할 수가 없다. 온갖 뼈마디가 따로 놀아서 육신과 정신이 모두 술에 속박되는 것이 차꼬나 족쇄보다 단단해서 그 사람됨을 완전히 잃게 만든다.

그래서 말한다. “음란함을 범하는 자는 살아도 죽은 것과 같고, 술에 취한 자는 죽어서 이미 염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整患過節, 酒最大. 酒臂之雨焉, 徐徐零, 故入土深, 能增土膏․ 若猛而驟, 無益于澤, 土脉蕩盡矣. 節飮之酒, 能養和, 消憂增力, 外形與內靈, 咸益焉. 過節者 反是. 形與靈, 皆溺於酒濤, 顚倒迷瞀, 目無視, 耳無聽, 體無覺, 心無明, 百骸亂營, 形與靈, 皆束縛於酒, 固於極楷, 盡失其所爲人矣. 故曰: “犯淫者, 生而猶死, 酒醉者, 猶死而已殮也.”)

…또 말했다. “지혜로운 자를 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여자와 술만 한 것이 없다.”(참조. 집회 19,2)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했다. “술이 정도에 지나치면 마음을 빼앗아 가버려 오관을 둔하게 하고 심령을 어둡게 한다. 음란한 욕망을 부채질하고, 혀를 어지럽히고, 피를 썩게 하며, 몸을 약하게 하고, 정신을 녹이고, 수명이 줄어들게 만든다.” 또 말했다. “술은 부드러운 마귀고, 맛 좋은 독이며, 달콤한 죄악이다. 여기에 복종하는 자는 죄를 범할 뿐 아니라 온통 죄 그 자체가 된다. 스스로는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술에 먹히고 있다.” (…又云: “離智者於道, 莫女與酒若也.” 聖亞吾斯丁云: “酒過節, 則奪心, 純五官, 昏靈神, 煸淫慾, 淆舌, 朽血, 弱體, 銷精神, 減壽命.” 又云: “酒, 柔魔也, 甘毒也, 飴罪也, 服之者, 非特犯罪, 全是罪也, 自以爲飲酒, 而實飲於酒也.”)

…어떤 사람은 술을 마셔 취하여 근심을 풀려 들고, 혹 취할 것을 권하는 것으로 손님을 공경한다고 여기니 경계해야 한다. (…有人焉, 飮醉以解憂, 或勸醉以敬客乎, 戒之哉.)

5.21 …풍성하고 후하게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음란의 뿌리를 그 뱃속에 던지는 격이다.… (…以豐厚待客者, 以淫根投其腹中矣.…)

5.22 취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기뻐서 잠깐 미치는 것이다.… (醉者, 人所自喜之蹔狂也.…)

5.23 술을 두고 세속에서는 키가 없는 물건이라고들 한다. 바다 위의 배가 키가 없다면 바람에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나서 능히 똑바로 가 위험을 피하게 할 수가 없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의 키에 해당한다. 다스려진 마음이 술 때문에 가려지면 사람은 마침내 그 키를 잃고 만다. 이 때문에 말과 용모가 모두 술에 따라 문란해지고, 행동거지가 모두 위엄과 무게를 잃는다. 마구 웃거나 헛소리를 하고, 더러운 말과 욕하는 말이 되는대로 튀어나오며, 비방하는 말이 더욱 많아진다. 이것은 장차 새와 짐승의 고기를 먹을 뿐 아니라 또 사람의 고기를 먹고, 술만 마시지 않고 또 사람의 피까지 마셔서 큰 재앙을 쉬 불러들인다.

무릇 사람으로 하여금 속마음에 비밀스레 감춘 것을 누설하게 하는 것은 술만 한 것이 없다. 바닷바람이 물에 불어오면 파도가 솟구쳐 일어나 바다 밑이 모두 드러난다. 술의 바람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하는 말에서 물결이 또한 일어나 마음속이 죄다 드러난다. (夫酒者, 俗謂之無舵之物也. 海舟失舵, 隨風進退, 莫能使之正行避險也, 理心者, 人之舵也. 理心以酒蔽蒙, 人遂失其舵矣, 故口舌容貌, 皆隨酒紊亂, 而動靜俱失其威重, 浪笑戱言, 汚言詈言群出, 誹言尤多 是且不獨食禽獸之肉, 又食人肉, 不徒飮酒, 又飲人血, 易致大禍焉,

凡令人漏泄中心之秘藏, 莫酒若也, 海風入水, 波浪湧起, 海底盡露, 酒風入人, 談言之波浪亦起, 心底盡露矣.)

5.24 술이란 음란을 지펴주는 땔감이다. 술을 마음대로 마시면서 함부로 음란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성경>에 말했다. “삼가 술에 취하지 말라. 음란함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참조. 에페 5,18)… (酒, 淫薪也 恣酒不恣淫, 鮮矣. 經云: “愼勿酒醉. 淫在其中故也.”…)

5.25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기쁨과 성냄, 음란과 욕망, 잔혹함과 사나움, 교만과 질투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모두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 마음을 다스려도 술과 담배에 가려져 그 힘을 다 써서 이를 막을 수가 없다. 죄는 더욱 늘어나고, 덕은 자꾸만 줄어든다. 술은 모든 덕의 적이요 온갖 악의 매개가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절제해 쓸 줄을 알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以酒盛者, 喜怒淫慾酷虐傲妬, 諸情皆縱, 理心爲酒烟蒙蔽, 不能盡用其力以防之, 罪益增, 德益消矣, 夫酒爲諸德之敵, 諸惡之媒, 而人 不知以節用之哉, 哀哉!)

5.26 술은 능히 기억력을 손상시킨다. 그래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건망증이 심하고, 또 지혜가 줄어들어 사람이 어리석게 되고 만다. … (酒能傷心記, 故健酒者健忘, 又損神智, 令人昏愚.…)

5.34 …천주께서 너를 내신 것은 네가 선을 행하는 데 부지런하여 천주를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너의 생각과 너의 공업을 온통 입에다가 바치고, 해와 달의 시각을 전부 배를 즐겁게 하는 데에만 쓴다. 네가 배를 받들기를 천주를 받들 듯이 하니, 배가 너의 천주라도 된단 말이냐? (…天主生爾, 欲爾勤於爲善以事之, 爾念慮, 爾功業, 悉在供口, 年月時刻, 盡用樂腹, 爾奉腹如奉天主, 腹爲爾天主乎?)

5.37 ① …절제 있는 선비는 먹고 마실 때 마땅히 살피는 것이 네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시간’이다. 절제 있는 선비의 식사는 정해진 때가 있어야 한다. 큰일이 아니고는 이를 어겨서는 안 된다.… (…節士於食飲際, 所宜視有四, 一曰時 節士之食, 有定候, 非大故弗違之.…)

② 또 하나는 ‘맛’이다. 절제 있는 선비는 먹고 마실 만한 물건을 얻었을 때 만족스럽게 여길 뿐 고르지 않는다.… (一曰味. 節士得可食飮之物, 以爲足, 弗選也.…)

③ 다른 하나는 ‘조금만’이다. 절제 있는 선비는 음식을 먹을 때 마땅히 두 사람의 손님을 나란히 받는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육신이 하나고 정신이 하나다. 각자 그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보잘것없는 거칠고 담백한 음식으로 육신의 맛을 기르고, 절제하는 덕으로 정신의 맛을 길러야 한다. 음식을 절제해서 육신은 육신의 맛에 배부르고 정신은 정신의 맛에 배가 불러 저마다 그 기름을 얻는다면, 모두 편안하고 고요해서 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음식에 절제함이 없는 사람은 육신은 남아도는 근심이 있고 정신은 부족한 근심이 있어, 모두 손해를 받게 된다. (一曰幾何, 節士就食, 宜思並設兩客也, 肉身一, 靈神一, 各食其味, 芻豢蔬素, 養肉身之味也, 節德, 養靈神之味也. 食飲以節, 形飽於形味, 神鮑於神味, 各得其養, 皆安靖受益焉, 食飮無節者, 肉身有有餘之患, 靈神有不足之患, 皆受損焉.)

④ 마지막 하나는 ‘모습’이다. 절제 있는 선비는 먹고 마실 때 입과 배腹의 주인처럼 행동한다. 비록 굶주려 배고프더라도 음식에 이끌려 유혹을 받아 예의를 잃거나 법도를 잃는 법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절제가 없는 사람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위엄스러운 모습을 흩뜨리고, 턱을 늘이고 목을 길게 빼며 소매를 걷고 팔뚝을 떨쳐, 차린 음식과 술잔과 밥상을 한꺼번에 삼켜버릴 듯이 군다. 몸은 한 자리를 차지해놓고, 그 손과 눈은 여러 방향을 돌아다니며 욕심 사납게 곁을 흘깃대니, 마치 장수가 성을 공격하려 할 때 쳐들어갈 곳을 살피듯이 한다. 이는 모두 식탐 때문에 드러나는 행동이니, 절제 있는 선비는 마땅히 피해야만 한다. (一曰狀貌, 節士食飮, 如口腹之主. 雖飢餒, 不使牽誘於食飮, 而喪儀失度. 無節之人, 食飲至前, 威容則紊, 朶頥延頸, 攘袂振臂, 看差杯案, 欲并吞之. 身居一席, 其手與目, 旋行諸方, 耽耽旁睨, 如將攻城, 而揣所從入也. 此皆著饕之跡, 節士所當避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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