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 신심이 계속되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이 축일을 지내왔는데, 이 축일로부터 9개월 전인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잉태 대축일’과 연결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과도 관련이 있다. 성모님의 부모님으로 알려지는 요아킴과 안나에 관해서 성경에서는 기록을 남겨주지 않으나, 기원 후 145년의 고대 문서 중 하나인 외경 ‘야고보 복음(혹은 야고보 원原 복음, The Protoevangelium of James)’에서 성모님의 부모 이름들과 함께 성모님의 기적적인 탄생 과정에 관한 서술을 상세하게 전해준다.
이날 전례 복음으로는 교회의 자상한 배려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16.18-23)를 듣는다. 그 족보에는 ‘낳다’라는 동사가 능동태로 무려 39회 반복되는데, 마지막 40번째에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라고 기록하면서 계속 이어져 오던 족보가 완성되었으므로 이제 더는 필요 없다는 듯이 수동태 동사로 “태어나셨다” 하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모든 역사가 완성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 역사의 완성이 “마리아에게서” 이루어진다. 마리아의 탄생은 이제 이렇게 새로운 역사와 창조를 위한 시작점이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루카 1,48)라고 노래하신다.
묵시록이 전해주는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묵시 12,1)라는 구절에 따라 우리는 성모님의 모습을 기리고 칭송한다. 성모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곧 하느님의 온 백성을 상징하는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쓰신 분, 태양을 입으신 분, 발밑에는 달, 곧 죽음과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두신 분이시다. 성모님께서는 죽음의 운명을 떨치시고 하늘의 영광과 승리를 입으신 분이지만, 고통을 받으셨던 분, 피신하셔야 했던 분, 산고의 고통으로 생명을 낳으신 분, 아직도 세세 대대로 모든 세대에 그리스도를 낳으시는 분이시며, 미움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온갖 이념에 맞서 하느님 사랑의 보증이 되시는 분이시다.(*이미지-구글)
성모님의 안내와 지도로 살레시오회를 설립할 수 있었고, 성모님의 도우심 안에서 아이들과 평생을 살았던 돈 보스코의 삶에서도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빼면 성인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축이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성모님 없이는 돈 보스코를 이해할 수 없다. 1868년 어느 날 돈 보스코는 성모님 탄생 9일 기도 중 꿈에서 만난 ‘공책을 든 부인’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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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을 든 부인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9일 기도에 들어가게 되면 항상 도망치려고 하거나 빠지려고 하는 애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의 어떤 신비스러운 힘에 밀려나다시피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못된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얘기로 넘어갑시다. 돈 보스코가 입구를 통해 집에 들어와 여기 현관까지 왔는데, 어떤 위대한 여인 한 분을 보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돈 보스코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는데 그분은 공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그 공책을 건네며 ‘들어서 읽어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공책을 받아들고 표지를 보니 ‘성모 탄생 9일 기도’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첫 장을 펼쳤는데 거기에는 금색 글자로 아주 적은 몇 명의 애들 이름만이 적혀 있었습니다. 장을 넘겨보니 조금 더 많은 숫자의 이름이 일반 잉크로 적혀 있었습니다. 한 장을 더 넘기니 그 공책은 거기서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비어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 중 일부에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물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돈 보스코는 한 젊은이에게 설명해 보라고 물었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도록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책에는 9일 기도를 하는 젊은이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금색 글자로 쓰인 몇몇 소수의 이름은 기도를 열심히 잘하는 아이들입니다. 다음 장의 이름들은 9일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덜 열심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다른 애들 이름은 왜 쓰여있지 않은 거죠? 이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누가 알아요? 나는 이것이 젊은이들이 너무 많이 싸돌아다닌 나머지 산만하게 되어서 이제는 그들이 자신을 더는 추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사비오 도메니코나 베수코, 마고네, 사카르디가 잠깐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도 ‘오라토리오가 왜 이렇게 변한 거야!’라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지극히 거룩한 성사들에 참여한다든가 나나 프란체시아 신부님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꽃다발 실천을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 우리가 실천할 꽃송이는 ‘모든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1868년, MB IX, 337)
금색 글자로 제 이름이 새겨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 해야겠습니다.
성모님의 탄생 축일을 기뻐하며…. 사랑과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성모님께 작은 선물로 바칩니다.